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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님께 드리는 답변

(사랑의 논리, 불일치의 일치)


청송님, 

진리를 추구하시는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첫 번째 질문을 올리셨으나 응답을 받지 못 하셔서 두 번째, 또 반복하여 이 게시판에 다시 올리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우시다고 느꼈습니다. 목회자도 아닌 저 자신 너무 부족합니다만, 기도로 얻은 소견을 청송님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청송님께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습니다.

질문 1, <시68:18>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
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

*이 말씀에서 "선물"은 무엇을 뜻합니까?

*인간과 패역자는 모두 "악인" 동격으로 구분하는가요?

*의인들한테는 받은 선물이 없으신가요?

*************************************************************************************
 

질문 1.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받으심으로 주시는 선물

놀라운 것은 개역한글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으시는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에는 그와는 정반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과 거역하는 자들에게 까지도 주실 선물(은사)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오시기 위하여 승천하신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Ps.68:18 Thou hast ascended on high, thou hast led captivity captive: thou hast received gifts for men; yea, [for] the rebellious also, that the LORD God might dwell [among them].


시68: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고, 주께서 사로잡힌 자들을 잡아가셨으며, 주께서는 사람들을 위해서 은사들을 받으셨고, 정녕, 거역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은사들을 받으셨으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려 하심이니이다.(한글 KJV)


여러 다른 영어번역본을 검토해보았는데 킹제임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개역한글성경과 동일하게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으신 것처럼 번역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금은 혼란스러웠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이해를 통하여 해결을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시편 68:18절을 그가 이해한대로 에베소서 4장 7절과 8절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여 인용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아예 7절부터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신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편 68:18절을 해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습니다.


엡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엡4: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사도 바울은“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에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한 사람들에게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신 것으로 이해하신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청송님께서도 의문을 가지셨듯이 주님께서 선물을 사람들로부터 받으신다는 것이 저 자신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께서도 예수께서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신 것으로 말씀하신 것을 발견하고 참으로 기뻤습니다. 

역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주시는 분으로 알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8절을 말씀하시기 전에 벌써 7절에서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들은 확실히 하나님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행17: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

[눅11: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여기서 “사로잡힌 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 사로잡힌 자들을 뜻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구원에 대한 완전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성령께서 확고한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뜻이 바로 “사로잡으셨다”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면서 주신 선물은 무엇일까요? 그 답은 사도 바울이 이미 에베소서 4장 7절과 11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품성으로 나타난 성령의 은사를 뜻한다고 생각됩니다. 다음의 성경말씀에서 그 답은 명확히 나타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그분이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요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엡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이렇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다른 은사들이나 달란트들이 선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 선물을 주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시68:18)


그리고 역시 동일한 답을 사도 바울께서 에베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셨습니다.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죄가 더한 곳에 더 큰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

이 선물을 누구에게 주시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엡4:8절을 통하여 의인과 악인(패역 자)을 통 털어서 사람들이라고 해석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의인도 속해있는 것은 분명하지요.

패역자, 반역자, 거역하는 자들에게도 그 귀중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 곧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이 되는 군요.


주신 것인가, 받으신 것인가?

그렇다면 킹제임스본을 제외한 다른 모든 번역본들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선물을

받았다’고 기록된 것이 모두 다 잘못 기록된 것일까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을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68:18절의 본문에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으신 것으로 기록

이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히브리말의 선물을‘받다’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받는다’는 뜻 이외

선물을 “가지고 온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본의 번역자들과 사도 바울도 ‘받다’ 와는 정반대의 뜻인 선물을 사람들

에게 주기 위하여 ‘가지고 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히브리말에서는 ‘받다’ 와 주기위하여 ‘가지고 오다’라는 뜻이 동일한 단어일

수가 있다는 그 자체가 참으로 하나님다우시며 은혜로운 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인들의 땅의 개념으로는 서로 불일치하며 정반대인 ‘받다’와 ‘주다’의 의미가 하나님

안에서는 일치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하늘의 개념이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받으시는 것’이 결국 ‘주시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 가장 기쁜 것이기 때문이지

요. 그러나 죄에 빠져서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들에게는 주는 것이 더 큰 기쁨이

라는 개념은 익숙지도 않고 합리적인 말이 아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는 것’이 기쁨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죄인들에게는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는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서로 상반 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문맥상으로 시68:18절을 보면 주님께서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는다고 읽으면, 그 다음 말씀인, “주께서 그들 중에 함께 계시려 함이니이다.”라는 말씀과는 죄인들의 개념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는 선물을 받으시는 것이나 주시는 것이 불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일치하는 것입니다.


땅에서는 불일치, 하늘에서는 일치(불일치의 일치성)

그러나 ‘주는 것’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다르지 않고 일치함을 알고 읽으면 모순이 없어지고 마침내 진리의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곧 인간들도 하나님께 드릴 때에 느끼는 기쁨이 받을 때의 기쁨보다 더 크지 않습니까?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께 선물을 드리고 느끼는 그 기쁨을 알게 될 때에 인간은 하나님을 더 기뻐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인간과 함께 하실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십일조의 목적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결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지요. 인간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기쁨을 느끼는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아 알게 하시고, 그리하여 더 많이 받게 하시려는 계획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일 수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로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신비로운 “불일치의 일치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일치하게 하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만 할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모순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서로 불일치하는 상반된 표현들이 사용된 곳이 자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서로 일치하는 “불일치의 일치성”을 마침내 이해하게 되면 성경의 모순은 사라지고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불일치의 일치성”의 예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신 동일한 말씀을 이사야, 마태, 요한은 각각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렇게 세분의 선지자들이 동일한 말씀을 서로 각각 다르게 불일치하게 표현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고 일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적능력을 성령의 역사로 받아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이사야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백성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여 깨닫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처럼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이상합니다. 도저히 하나님답지 않으신 말씀이 아닙니까?


[사6:10]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에서 역시 거의 같은 뜻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요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

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위의 두 말씀은 서로 모순이 되지 않고 일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패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시면서 하시는 말씀치고는 너무나 황당한 말씀이 아닙니까? 그 타락한 백성들이 돌아와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께서, 마치 그들이 구원 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시는 것처럼 어떻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막아버려서 선지자의 말을 깨달아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라고 선지자에게 명령하시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지 않습니까? 그 리고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과는 또 다르지요,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받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눈을 멀게 하 시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마치 출애급기에서 하나님께서 바로 를 멸망시키시기 위하여 바로의 마음을 직접 강팍케 하신 것처럼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 이지 않습니까?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실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동일한 사실을 마태는 이사야와 요한이 기록한 것과는 전혀 반대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음의 이 말씀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13: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여기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감기시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눈을 감아버렸고, 또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고, 그 이유는 그들이 구원을 받기를 싫어하였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도 12정 37절에서 마태가 말한 것과 동일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여기서, 분명히 믿기를 거부한 것은 백성들 자산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토록 믿게하시기 위하여 많은 표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고는 요한은 이 요12장 37절은 이사야 6장 10절을 이루려는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요12:40절을 기록함으로서 사6:10절을 다음과 같이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12: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요12: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요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결론적으로 사도 요한은 우리들이 보기에는 불일치하며 전혀 상반되는 요12장 37절과 40절을 서로 일치하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이해입니까?

그리고 마태도 마13장 15절과 사6장 10절을 일치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지자들은 성경말씀의 불일치의 일치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계속 후편을 일어주십시요, 중요한 결론이 나옵니다.)


위의 3 말씀을 종합하여 판단해보면, 사실은 백성들이 사단의 유혹을 선택하여 마음이 강팍하여지고 눈이 멀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왜 이사야와 요한은 하나님이 그 백성들의 <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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