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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 하나님과 복수, 그리고 하나님의 전쟁


전쟁의 상대를 원수라고 부른다.

전쟁은 복수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복수가 하나님의 전쟁이다.


그러나 하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다르다. 너무나 다르다. 하늘과 땅이 다른 것처럼 엄청나게 다르다. 따라서 하늘의 복수와 인간의 복수는 완전히 다르다. 복수의 의미가 달라지면 전쟁의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순교자들은 원수의 칼에 피 흘리며 죽임을 당한 자들이다. 순교자들의 목적은 원수들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순교자들은 그 원수들의 칼에 찔려 쓰러져 죽으면서도 그 원수들의 구원을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죽어갔다. 그들이 흘린 피에는 그러한 간절한 핏 소리가 있다. 아벨의 흘린 핏 소리는 가인을 구원하시라는 호소의 부르짖음이요 기도였다.(창4:10)


스데반이 사울이 던진 돌에 맞아 피 흘리고 숨지면서 그의 원수인 사울의 구원을 호소하며 죽어갔다. 그것이 스데반의 핏 소리였다. 그 순교자들의 핏 소리는 하나님의 복수, 곧 구원의 복수를 호소하는 기도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호소를 받아드리시고 그 순교자들을 피 흘려 죽게 한 원수들을 구원하셔야 한다. 그렇게 하셔야만 순교자들이 그토록 애를 쓰다가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원을 풀어주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호소한 복수를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스데반의 핏 소리를 들으셨다. 그리고 사울울 구원하셔서 바울로 만드셨다. 이 복수를 이루는 과정이 바로 전쟁인 것이다. 그 사울을 하나님께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단과 사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과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 하나님의 전쟁은 사랑으로만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전쟁은 사랑이신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신32:35)라고 말씀하신 것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17:47)이라는 말은 같은 말인 것이다.


[삼상17: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하3:1]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사울이 다윗을 향한 전쟁은 악으로 갚아서 원수를 죽이려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전쟁은 그 사울의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로 힘입어서 악을 선으로 이기는 전쟁이었다.

다윗은, 원수 갚는 것, 그리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철저히 기억했다. 그 때문에 다윗은 자기의 눈앞에 잠들어 있는 자기의 원수 사울을 죽이지 않았고 옷자락만 베었다. 다윗은 그 전쟁에 승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상24:11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 한 일이 없나이다.


삼상24: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여기서 다윗은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다윗이 바라는 하나님의 보복은 사울이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하늘의 복수이다.

이렇게 구약에서 가르치는 복수와 전쟁은 신약의 가르침과 동일한 것이다.


복수에 대하여 구약인 잠언 25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잠25:2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잠25:22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구약성경이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신약의 가르침과 동일하다. 구약은 원수를 죽이는 여호와를 나타내고 신약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것을 간과하였던 사울(바울)은 유대교의 원수인 예수의 제자인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다. 그 원수를 처단하여 죽이는 것이 구약성경의 가르침, 곧 여호와의 가르침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울은 구약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의 증오와 정죄의 돌을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스데반의 얼굴에서 사울은 자기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여 구원하시려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마침내 사울은 구약의 여화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복수에 대하여 새롭게 깨닫는다. 사랑에 감동한 그는 구약의 잠언 25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신약의 로마서 12장에 다음과 같이 감동적인 기록을 하게 된다.


롬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20절에 인용한 ‘숯불’은 잠언 25:22절의 ‘핀 숯’과 동일하다.

원수의 머리 위에 핀 숯을 쌓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를 살펴보자. 원수의 머리에 핀 숯을 올려놓기 위해서는 먼저 원수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원수가 사랑을 느끼도록 감동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숯불은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리고 “머리에 올려놓는다” 는 말은 마음속에 깨닫게 한다는 말이 아닐까?


우선 ‘핀 숯’, ‘숯불’의 의미를 구약성경에서 찾아보자. ‘핀 숯’과 ‘숯불’이라는 단어는 다음의 구약성경 절에서 사용하고 있다.


[사6:6]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삼하22:13]그(하늘보좌) 앞에 있는 광채로 인하여 숯불이 피었도다.


[시18:12]그 앞에 광채로 인하여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시18:13]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고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겔1:13]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겔10:2]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 들어가더라.


위에서 본바와 같이 숯불이나 핀 숯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사야서 6장을 더 잘 살펴보기로 하자.


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6: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6: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을 염려하고 있던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 하늘보좌를 보여주셨다.

자기도 죄인임을 잘 알고 있던 이사야는 너무나 당황했다. 그때 한 스랍이 하늘성전의 제단에서 취한 핀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대어주었다. 성전의 제단은 어린양의 기름을 태우는 곳이다. 곧 죄인의 죄를 태우는 곳이다. 숯불은 그 죄를 태우는 하나님의 불이다. 이사야의 모든 죄는 사하여졌다. 그 숯불은 바로 죄인의 죄를 사하여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사랑의 불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는다는 말은 내가 그 원수를 사랑해줌으로 말미암아 그 원수의 모든 죄를 사하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곧 원수도 사랑하시는 뜨거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의 원수가 깨닫게 한다는 말인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마침내 나의 원수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의 악을 회개하고 용서를 감사하고 나와 함께 구원을 누리게 될 때에 그 아름다운 하늘의 복수는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바울은 스데반의 얼굴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 곧 원수를 사랑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다. 그 사랑의 숯불은 사울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스데반을 보면서 사울은 참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던 것이다. 사울은 자기가 죽인 스데반이 알고 있던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하나님, 진정한 여호와의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구약에 능통한 사울의 마음속에 구약인 잠언 25장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스데반이 돌로 쳐 죽이는 원수인 자기를 사랑하는 저 사랑이 바로 잠언 25장의 의미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사울은 마침내 스데반의 예수와 자기의 여호와가 동일한 하나님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숯불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까지는 사울은 숯불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사울의 마음속에서 마침내 구약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신약)이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바울을 비롯한 모든 신약을 기록한 사도들은 구약의 진실이 바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위대한 발견이 없으면 구약과 신약은 완전히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과거의 유대교의 비극이었고 그 비극은 현재에도 기독교 속에 남아 있어서 오늘 날의 기독교의 비극이 되어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수가, 제자들이, 사도 바울이 자기들이 발견한 그 위대한 발견을 구약에도 그리고 신약성경에 기록하여 그렇게도 애타게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애썼지만 슬프게도 오직 지극히 작은 수의 사람들만이 그 위대한 발견을 깨닫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더 이상 구약을 통하여 신약을 이해하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먼저 신약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약을 보아야만 한다, 그 이유는 구약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가 있었고 그리고 그리스도가 모세에게 구약을 주었다. 바로 이것을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 그가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늘의 율법인 구약을 땅의 율법으로 이해했다. 하늘의 전쟁과 땅의 전쟁, 하늘의 복수와 땅의 복수가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유대인의 구약율법과 그리스도의 구약율법의 해석은 완전히 상반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요한 일례가 바로 다음의 그리스도의 자신이 구약의 복수를 하라는 다음의 말씀, [출21:24]“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복수하라는 율법을 직접 신약에서 인용하시면서 그 율법의 본래의 근본정신인 원수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다시 가르치시는 말씀에 나타나 있다.


마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복수하라는 것은 언뜻 보면 하나님의 율법의 근본정신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뜻은 아닌 것처럼 들린다. 오히려 원수에게 철저히 복수를 하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들린다. 정말 그런 뜻일까?

그 율법이 철저히 복수하라는 그런 뜻이라면, 왜 하나님께서는 본래는 금하셨던 그런 ‘땅의 복수’를 허락하신 것처럼 보이는가?

그리고 잠언 25 장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과 상반되는 율법을 주신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백성들의 완악함이었다. 그 완악해진 백성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그 완악한 품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복수는 정당하며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 복수할 때에는 원수로부터 손해를 본 것보다 몇 배나 더 큰 손해를 원수에게 끼쳐야만 옳은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래야만 속이 후련해진다고 생각할 만큼 완악해져 있었다. 이러한 백성들의 미성숙하고 타락한 영적상태는 그들이 영적으로 하나님께 원수가 되어 있는 한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사는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완악한 당신의 무지하고 미성숙한 백성들일지라도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러한 악할 대로 악해져버린 최저의 사망적 영적상태로부터 마침내 원수를 사랑할 줄을 알게 되는 최고의 영적상태로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 즉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도 미성숙하고 유치하고 악한 백성들에게 본래에는 금하셨던 땅의 복수를 최소한도로만 복수하도록 허락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그러한 율법을 주시었던 것이다.


완악해진 유대인들은 서로 싸우다가 손해를 보거나 상처를 입으면 상대방으로부터 손해를 당한 손해보다 훨씬 더 큰 손해를 끼쳐야만 속이 후련해하는 참으로 유치하고 악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러한 그들에게 손해를 당한 만큼만 복수하고 그 이상은 복수하지 말라는 것도 완악한 그들에게는 참으로 받아드리기 힘든 불만스러운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복수가 복수를 낳고 그 복수는 더 큰 복수를 초래하여 마침내 개인의 싸움이 가족의 싸움이 되고, 가족의 싸움이 동네의 싸움이 되고 마침내 부족간의 싸움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는 수 없이 최소한도의 복수만이라도 허락하시면서 궁극적으로는 서로가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이런 복수의 방법을 허락하시게 된 것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의 율법의 본래의 정신을 쉽게 포현하려면, 다음과 같은 예화로 풀어볼 수 있다.


한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가장이신 아빠는 귀여운 아들과 딸이 서로 용서하며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래서 항상 서로가 손해를 당했을 경우에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 미워하는 원수가 되지 않도록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과 딸은 욕심이 많았다. 하루는 아빠가 초콜렛을 두 개씩 사주었다. 그런데 여동생이 오빠의 초골렛 한 개를 훔쳐서 먹어버렸다. 오빠는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여동생의 초콜렛 두 개 모두를 빼앗아서 먹어버렸다. 여동생은 소리치며 통곡했다. 오빠가 너무나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아빠에게 가서 오빠를 벌주라고 요구했고 초콜렛을 더 사주어야 한다고 떼를 썼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사준 초콜렛은 아이들의 완악함을 인하여 오히려 불행의 씨가 되고 서로가 원수가 되어버리게 한 결과를 초래했다.

아빠는 할 수 없이 규칙을 만들어주어야만 했다. 초콜릿 한 개를 훔쳐갔으면 한 개만 갚으면 된다고.

이 규칙은 원래의 아빠의 가르침인 “원수를 사랑하라” 상충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직도 너무나 어리고 유치한 자녀들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도록 성숙시켜가는 과정에서 마지못해 정하여 허락해줄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복수인 것이다.

참으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죄인의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시는 사랑 때문에 금하신 복수도 최소한 허락하시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약과 구약의 율법은 서로 일치하는 것이지 상반된 것이 아니다.


그 복수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근본 목적은 유대인들이 그 모세의 율법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 곧 원수를 사랑하라는 사랑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결국 그리스께서 다음과 같이 그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의 율법의 본래의 뜻을 다음과 같이 밝혀주시는 것이다.


마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위의 말씀에서 “너희가 들었으나” 라는 말은 “너희들이 그렇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복수하라는 말로 배우고 그렇게 이해하였으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나의 본래의 뜻, 곧 원수를 대적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하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을 깨닫지 못하고 오해했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는 말의 뜻은 “그 율법을 통하여 너희들에게 알리고자한 본래의 나의 참 뜻은”이라는 뜻이다. 이 해석이 옳다는 것은 다음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확실히 나타난다.


구약의 이혼을 허락한 율법에 관한 율법에 관한 바리세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답하시는지를 주의 깊게 보시라.


마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 하시니


마19:7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마19: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즉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는 것을 허락하신 것도 “너희들이 다른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며 완악함 때문에 마지못해 허락한 것이지 이혼을 하는 것이 옳다는 뜻이 아니었다. 너희들은 그 율법 속에 있는 나의 본래의 뜻, 부부는 한 몸이므로 사람이 눌 수 없다. 는 진실을 너희가 알지 못하고 오해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하나님은 금하신 것도 허락하신다.” 라는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원수를 사랑하시는 본래의 품성은 깨닫지 못하고, 그분께서 마지 못하셔서 허락하신 그 복수를 마치 본래 하늘의 복수인 것처럼 오해해버리게 되었다.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위의 말씀을 다시 해석하면, “내가 마치 원수를 미워하라고 말한 것처럼 너희들이 이해했으나”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위의 말씀을 다시 풀어보면, “나의 본래의 뜻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뜻이었다.” 이다.

예수께서는 구약과 신약이 완전히 일치함을 확실히 보여주셨다. 이것을 모르면 구약을 완전히 오해하게 되어 혼란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간음한 여인을 잡아 구약(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려는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 앞에 바로 그 율법의 본래의 뜻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본래의 뜻을 모르는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예수께서 구약을 무시하고 정 반대의 해석을 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여전히 바리세인들과 마찬가지로 계속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의 전쟁은 2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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