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1)

by 이명원 posted Oct 0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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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1년이 갓 넘은 평신도이다.(미흡한 글을 이해바랍니다-깨달은 만큼,이해한
                                                       (만큼  이글을 써봅니다)
얼마전 LT모임을 톤해 히브리서를 묵상하던 중 성소에 관해 알아야 히브리서를 제대로 이해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도보고,묻기도하면서 명상해보았지만, 지식적으로는 아는 것이 늘어나지만,모든 것이 나와 떨어져 있는 느낌과 조각 조각 난 듯한  이것들을 내 안에서 정리하는 묵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또 성소에 관한 책은 그 양도 많고  수도 많다. 그것을 하나 하나 다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것을  신학자처럼 연구하는 것도 쉽지않고 또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느낌보다  알기쉬운  내 안의 성소에서 해결보고 싶어 이 글을 시작한다.

고전3:16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성전인데 그 성소제도를 내 안에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보았다.
성소는 내 맘대로 짓는 것이 아니다.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지시하셨다.
모든 것은 본을 쫓아지어야 하는데 그 본은"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신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면 살아 있는 온전한 성전이 '그리스도'라는 말이된다.
우리는 성전으로 지어졌지만 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그리스도 본을 쫓아 재건축되야
하는 그 상태라는 말이된다.
무슨 기능이 상실되었을까?
성소는 죄를 확실히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죄를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도덕적 죄'가 아닌 죄본질)
예수님을 만난 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를 본다는 것은 내가 비로소 성소안에 들어 온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그 본이 되신 예수님안에 들어 온 것을 의미한다.
그 분은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요1:1) 말씀안에 있는 것이 예수안에 있는 것이며
그분의 품성은 사랑이므로 사랑안에 있는 것이며, 성소안에 있는 것이다.
요15:5저가 내 안에, 내가 저안에,..말씀을 통해 내가 예수님 안에 그리고 그 말씀이 또
내 안에 머무르며 하나가 된다.
본래 하나이였던 것이 분리가 되었다.재건축되어야 할 이 성소는 창조시 하나이였던  아버지하나님이 예수님과 하나이셨던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였다.
그러면 어떻게 분리되어 있을까?
그 분의 이름이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인데 분리되었으니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며 따라다니시고 지켜보시는 하나님이실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만을 통해서 오므로  지금 내가 숨쉬고  있는 것이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증거로 생각한다.
그 분은 하늘에 올라가셨지만,그 분은 결코 우리를 두고 가지 않으셨다.
계시록3:20절의 문밖에서 두드리시는 예수님을,..우리의 몸 밖에서 내 안에 들어오고저
두드리신 다고 생각지 않는다.

골1:27절-이 비밀은 너희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는 아담안에서 이미 세상에 나오기 전에 죽은 존재들이다.
'왜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는데 내가 죽어야 하는가'란 생각은 누구나 신앙의 초보자들이 하는 생각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로 창조되었다. 그것은 죄가 들어 올 것을 아시고 창세전에 그의 아들을 주실 것을 예비하셨을 때부터의 계획이라 생각된다.
'깨'씨 한알을 땅에 심으면 그것이 싹을 틔우고 자라'깨'라는 열매를 맺을때 수십만개의 열매가 나오듯이, 아담안에는 6천년간 이 지구상에 살게 될 인간들이 입력되어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으려고 손을 뻗었을때,우리는 아담안에서 각 지체로서 함께 손을 뻗어 따 먹은 존재들이다.

시편 139: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때에~

우리는 어머니의 모태에서 나왔다. 아담만이 땅의 깊은 곳에서 지음을 받았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땅의 깊은 곳에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아담안에서 하나로 지어짐을 알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
            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예전에 솔직히 나는 이 말이 잘 이해되지 못했다.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왔다는 것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느꼈다.예를 들어 설명해주시는 분들은 극단적인 예로 아담의 죄로 백인이였던 사람이 흑인이 되었다치자 그럼 그담부터는 모두 흑인으로 태어난다'라는 설명이였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는데
첫째 부모가 내 본질이라도 자녀에게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과
둘째 죄는 수 많은 사람 각 각 저지르고 수 많은 사람들이 각 각 사망을 받아야하는데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한 사람이 대신 죽어주심으로 값을 다 지불했다는 것이 명확히 이해되지 않았으나 그에 대한 답변으로 하나님이 죽어주신 값이 어마어마 한 것으로 그것을 갚고도 남는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그런가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 사람속에 수 많은 사람이 입력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모든것이 나에게는 명확해졌다.
로마서5장의 두 아담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담안에 우리가 있었듯이, 두번째 아담이신 예수안에 또한 우리 모두가 재입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담의 죄로 인해 사망이 요구된 아담에게(아담안에 우리-내가있음)
두번째 아담이신 예수가 그 값을 지불 하신 것이다.

            1사람"아담"--------------->1사람"예수"

한 사람대신 한 사람이 죽어 주신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대신하여 죽어주셨다고들 한다 . 그 말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 분은 당신안에 우리를 입력하시고 우리를 품고 죽으셨다. 우리는 그 안에 있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가

정말 믿음 좋은 바울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 고백은 나의 고백이 되어야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존재란 것을 모른다면 나는 '자아'상태로도 살아있는 존재라는 말이된다.
대신 죽으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쟁중에)늙은 노모에게 외아들이 있었다.노모의 임종을 앞두고 나라의 명령에 복종하려니 늙은 노모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는 불효를 어찌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는데 가장 절친한 친구가 내가 네 이름으로 출전하겠으니 걱정말고 노모를 지켜라'하고 전챙에 참전했다.그러나 안타깝게 그 친구는 죽었다.
그러면 이 친구는 그 사실을 알고 어떻게 살아야할까?
아니 어떤 이름으로 살아야할까? 그냥 내 이름으로 살 수 있을까?
아니다. 앞으로 그 친구의 이름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내 이름은 이미 전쟁에서 죽은 것이다.  나는 살아있는 것 같지만  나는 죽은 것이다.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이 악한 세대"는 바로 나요, 내 '자아'이다.
이것때문에 자기 몸을 드려,죽어주셨다.
자아'는 사망이다.그것을 지닌체 산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성소에서 중요한 것이 이 '자아'를 죽이는 일이다
왜?  성소얘기를 하다말고 이런 말들을 하나! 하겠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 이름안에서 성소를 본다.
                                                                                               (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