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렬한 열정을 일으키는 옥시토신과 정신의학적 전이

by 안병선 posted Apr 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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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렬한 열정을 일으키는 옥시토신과 정신의학적 전이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이 최고의 행복물질이라고 이상구 박사는 강의했는데 그게 맞다면 오랫동안 내게 흥미로웠던 아래 인용 글에서의 합일과 전이현상도 옥시토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사람간의 융합을 향한 욕망은 가장 강렬한 근본적인 열정이며 이 힘이 가족, 사회, 인류라는 종을 유지시켜주고 이런 융합에 실패하면 정신병-자기 파괴 혹은 다른 사람들의 파괴를 가져온다. 사람간의 융합은 생존의 문제에 대한 해답인데 이 융합이 섹스 오르가즘과 함께 오면 융합의 기쁨이 더 한층 강렬해진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 각자의 개성을 보존하는 조건하에서의 합일이라는 성숙한 사랑이 없는 섹스만의 행위는 사람간의 틈에 일시적으로만 다리를 놓아줄 뿐 결코 오래가는 합일의 느낌을 주지 못한다.”

정신의학자 융은 전이가 아주 중요한 것이기에 일시적으로 다리를 놓아줄 뿐일지라도 섹스가 포함된 전이까지도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부영 정신과의사의 ‘분석심리학’에서)

흔히 정신치료자와의 성적인 결합이라는 환상으로 나타나는 전이현상은 사실 환자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합, 일치감이다. 그것은 ‘대극의 합일’이며 동시에 갈등의 종식이며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의 출현이다........

전이현상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그의 정의에 따르면 환자가 어릴 때 부모나 이에 비길만한 사람들에게 느꼈던 감정을 치료자에게 옮기는 것을 말한다..............

정신치료에 있어서 전이현상이 중요하다는 것과 여기에 이성의 부모와의 감정관계, 즉 아들-어머니, 딸-아버지, 또한 남-매 사이의 감정이 본래의 대상에서 떨어져 치료자에게 옮겨져서 남성의 치료자가 아버지처럼 느껴진다든가 때로는 드물게 어머니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분석심리학에서도 받아들이고 있는 설이다. 또한 전이 현상은 항상 치료자와의 결합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어, 그것이 흔히 성적인 결합과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환자의 유아기로의 퇴행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것을 하나의 병으로 취급하려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벌써 1910년대에서부터 융은 전이가 반드시 성적인 욕구의 표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환자가 치료자에게 느끼는 감정에는 성적인 것 이외에 사회적, 도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치료자에의 기대와 희망, 관심과 신뢰, 우정, 그리고 사랑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성적인 성질이 보이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것은 표면에 나타난 것일 뿐 그 내면에는 보다 높은 공감 능력, 가치에의 희구가 있다. 유아적인 요소가 그 전이되는 감정에 내포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이것은 물론 보다 가치있는 것을 지향하는 감정을 환자가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훼방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전이를 해소시키고자 할 때 우리는 보통 사람으로부터는 거의 또는 전혀 요구하지 않는 것을 환자로부터 요구하게 된다고 융은 말한다. 즉 환자가 그 자신을 극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노이로제 환자는 그도 정상적인 사람처럼 분별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아니 그는 정상인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유아성이라는 커다란 부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며, 이것은 아무도 정상인으로부터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들은 흔히 갓난아기처럼 있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확신을 얻으려고 모험을 한다. 치료자는 이 때 환자가 그렇게 하는 것을 덮어놓고 막아서는 안된다고 융은 지적한다. 이성으로는 대치할 수 없고 그저 행하여져야 할 경험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경험이
환자에게는 결코 과소 평가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것이다.

전이의 해소에 있어서 정신과의사 초보자들은 환자에게 충고를 주거나 암시를 준다. 환자에게는 치료자의 이러한 노력이 편리하므로 또한 해를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있어서는 “환자와 그의 충동에 우선권을 주고 그것이 이끌어가는 대로 맡겨야 한다. 그것이 잘못된 길인 것처럼 보일지라도--잘못은 진실이나 마찬가지로 중요한 삶의 조건이다.

초보자는 전이현상은 전적으로 이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여 이것과 싸워 이겨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라고 융은 말한다. 전이에는 겉으로는 성적인 희화이며 착오처럼 보이나 그 뒤에는 인간사회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이 있다.
“이런 유대감은 가장 가치있는 사회적 조건 중의 하나이다. 환자의 이와 같은 사회적 시도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무자비한 실수다.”...............................................

전이는 하나의 ‘다리’와 같다. 그것을 거쳐서 환자는 그의 가족과의 유대에서 떨어져 나와 가족 밖의 현실로 나갈 수 있다. 환자는 자기의 ‘리비도’-정신적 에너지라는 뜻-를 분석가에게 부착시키고 분석가를 통해서 그것을 체험한다. 바꾸어 말하면 환자는 분석가의 특징을-자기의 특징이기도 한-감득하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현실로 나가는 다리로 삼는다. “분석가는 글자 그대로 환자의 고통을 받아들여 환자와 더불어 이를 나눈다.” 그렇기 때문에 분석가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참고: 전이는 정신과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