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14~22)
1. 기간: 19세기 중엽 이후~ 예수 재림까지(마지막 교회, 현대 기독교회)
2. 이름의 의미: 라오디게아의 뜻은 “백성을 심판하심”이다. 이 교회는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교회를 말한다. 그 이름이 의미하듯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심판하는 시대의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이다.
3. 칭찬의 말씀: 두려운 사실은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칭찬의 말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세속적인 자기 만족의 정신에 빠져 있으며, 영적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당신의 책망을 표현하셨다.“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15절.
4. 책망의 말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7절. 이 마지막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는 너무나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데, 라오디게아 교인들 자신은 너무나 부요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교회는 뜨뜻미지근한데, 그 상태는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은(믿는 것도 아니고 불신하는 것도 아닌) 상태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하는 교회의 시대, 곧 마지막 시대인 현재 교회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실 때,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이다. 가장 비참한 형편인 것이다. 제일 무서운 영적인 형편은 자기 자신들은 부족한 것이 없다고 느끼는 상태, 곧 가장 잘못되어 있으면서, 가장 옳바르다고 느끼고 있는 상태이다. 이 교회는 자기의 영적인 참 모습과 상태를 모르는 교회로서, 자기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고침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교회는 자신들이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는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이미 구원받았다는 생각에 도취되어 있다.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에 대해서는 눈이 멀어 있으며, 신앙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인 현대 기독교회의 신앙을 보시면서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경고하고 계신다(16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두고 가장 뜨거워야 할 이 마지막 교회가 가장 미지근한 상태 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말씀하시는데, 라오디게아 교인들인 우리는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과 필요를 느껴야 구조의 도움을 요청할텐데, 거의 완전한 자기 만족과 자기 기만 속에서 종교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위험한 비극이 있을까?
5. 권면의 말씀: 마지막 교회에 속한 교인들의 이러한 치명적 상태를 치료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처방을 내려 주셨다.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8절.
불로 연단한 금: 용광로에서 연단되어 나온 금은 시련을 통하여 연단된 순결한 믿음을 의미한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베드로전서 1:7.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흰 옷: 성도들의 의를 나타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요한계시록 19:8.
안약: 양심을 민감하게 하고, 진리를 식별하고 깨닫게 하는 성령을 의미한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1:18~19.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요한복음 16:13.
"안약을 발라 보게 하라"는 뜻은 양심을 민감하게 하고 진리를 식별케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비참한 상태를 먼저 볼 수 있게 되어야 고침을 받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족한 상태에서 깨어나서 우리의 참된 영적 형편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의의 옷이 없이 벌거벗은 형편을 보아야 한다.
결국, 이 세 가지 처방을 종합하여 보면, 순결한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깨끗한 의를 옷입어서 성품이 변화되고, 의로운 생활을 살며,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진리를 분별하는 영적 눈을 뜨며, 양심이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치료의 말씀인데, 바로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는 예수께서 문 밖에서 두드리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이 문에 서계시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임박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을 마음 문 밖에 세워두고 있는 교회,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관계를 말한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강요하지 않으신다. 구원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주님의 말씀인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남이 나를 대신해서 먹어 줄 수가 없다. 독자의 마음에는 예수께서 살아 계시는가?
6. 약속의 말씀: 구원은 언제나 개인적인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각 개인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문을 두드리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의 책망과 권면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그리스도께 대하여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20절. 예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 시대에도 오직 이기는 자들에게만 구원의 특권이 주어진다.“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1~22절.
* 일곱 교회에 대한 예언은 기독교회가 세상 역사의 일곱 시대를 거쳐 나가는 영적 형편과 상태를 미리 보여준 예언이다. 요한이 계시를 받을 당시의 그 도시의 형편과 각 시대의 교회들의 형편이 얼마나 잘 들어 맞는가! 하나님의 놀라우신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교회는 순결하던 초대교회 시대부터 시작하여, 핍박을 당하던 고난의 시대와, 타협하기 시작하며 연약해지던 시기와, 또한 배도하여 이교의 많은 오류의 가르침들을 교회에 불러 들여 왔던 대 타협의 시대를 거쳐, 종교 개혁과 선교 부흥의시대를 지나서,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시대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속히 오실 바로 이 마지막 교회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