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란 감옥에서 탈출하기
저는 삼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암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존재에서 생길 수 없는 존재로 바뀌었지요.
같은 뜻인진 모르지만 보는 관점과 틀이 바뀐 것입니다. 누군 유식하게 보일려고 프레임이란 단어를 쓰기도 합디다만.
사물은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창밖 풍경은 창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보이지요. 인생도 종교도 그리고 암도 어떻게 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암을 만나면서 이상구박사님을 만났고 종교관과 병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그리고 조건적이 분이 아닌 한없이 자애로운 분으로 그리고 암은 언제든지 생겼다 없어질 수 있는 것으로.
그 것은 성경의 기적과 수많은 사람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엔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고 우리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관점과 틀이 바뀐 사람들, 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합니다. 그것은 나의 확신을 강화해 주기 때문이죠.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더 행복해집니다. 긍정적인 사람과함께 하면 그렇게 되고 나은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됩니다.
가수 윤복희는 젊은 시절 후두암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후두를 제거해야 하고 더는 말을 할 수 없을 거라했습니다. 팬들과의 작별 여행이라 생각하고 전국 순회공연의 마지막 공연장으로 가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믿음이 전혀 없었던 그녀에게 음성이 들려오며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기쁨이 넘쳐 암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동안 암은 저절로 사라져 버립니다. 어느날 뮤지컬 피터팬 공연을 하던 도중 줄에서 떨어져 척추 세 개가 붙어버렸습니다. 몸에 약간의 마비증상이 있었지만 그런줄도 모르고 뮤지컬 개척기라 자신을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불편한 몸으로 4년을 버티지만 마침내 하반신 마비가 오며 더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다달아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사지 마비가 올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밤 속옷 바람으로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드는 생각,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인데 이까짓 척추인들 못고칠까.
기도도 아닌 생각만 했답니다. 그 순간 피부가 아니라 살 속이 가려워 견딜 수 없더랍니다. 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날 그녀의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를 다시 찾았을 때 달라붙었던 척추는 모두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가려움은 눌렸던 신경이 깨어나며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미국 부시 정부에서 장애인 담당 차관보를 지냈던 고 강영우박사 아내의 간증을 듣던 중 한마디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말씀에 붙들려 살았다고,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성경의 말처럼 진리를 깨달을 때 관점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때 우린 암환자란 방에서 걸어 나올 수 있습니다.
어느 설암 밴드에 백 여명있고 아무나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해놓아서 가끔 들여다 보면 삶의 변화를 말하는 사람은 없고 단지 어느 의사가 최고며 수술 항암 방사선 얘기 뿐 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병원 다니면서도 술 담배하는 사람이 있었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고 마시며 또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져 있어서 가입하고 저에 대해 얘기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했더니 방장이 저를 쫒아냈습니다. 혼란을 준다며. ^^ 들을 귀가 없으니 그 틀을 벗어날 수 없겠지요.
틀을 바꾸려면 근거있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저들은 현대의학이란 틀에 갖혀 있습니다. 저를 수술한 현대의학도 고맙게 생각하지만 저는 더 큰 틀에서 병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 확신은 성경의 말하는 것을 믿는데서 오며 이박사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에 반응하는 유전자의 실체를 알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제 사월이면 수술한지 삼 년이 되어갑니다. 설암의 재발은 90%가 일년 안에 일어난다는데 짧지만 먼 길을 왔다는 생각이듭니다. 근데 최근 목이 아파오고 삼킬 때 뭔가 목결림이 계속되었습니다. 흔히 그러지 않습니까 전이된게 아닐까하고.
이 느낌하고 누구나 싸우게 됩니다. 저도 싸웠습니다. 다운과 업을 반복하며, 어느 순간 잡았다 놓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네가 믿느냐,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나는 이 말씀을 어느 순간 놓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고친 하나님이 나를 못 고치실 이유가 없다는 확신이 다시 들며 몸에 전률이 흐르고 감사의 마음으로 평안해졌습니다. 물론 몸도 깨끗해지고.
온 오프라인에서 우리들의 만남은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며 자신을 오픈하는 행위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마치 배설하듯 글을 쓰고 글을 쓰는 동안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을 다잡게 됩니다.
그 동안 나의 뇌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게되고 유전자는 그 뜻에 반응하게 되는 것이지요.
백페센트 확신하며 꽂히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근거 없는 확신은 구멍난 풍선 처럼 시간이 지나면 곧 물렁물렁해지고 말지요.
또한 진정한 치유는 암에서 벗어나는 것을 너머
자신을 더 큰 뜻 앞에 세우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예수에 붙잡혀 산다는 바울 처럼 타인을 위해 서른 넷 예수의 삶으로 바꾸는 것으로.
이 길에 살아 있다는 것과 죽음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