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거리를 찾아 이른 아침 집을 나와 하루 일이 파하는 오후 5시가 다 되도록 끈질기게 기다리는 바보를 아십니까.
다섯시는 모든 일이 끝나는 시간,
저도 용역일을 몇 번 다닌적이 있지만 새벽 6시쯤 나가 오전 7시 반쯤 기다려도 일이 없으면 다들 돌아갑니다.
오후 다섯시가 되도록 돌아가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제 정신이 아니거나 반드시 하루 일당을 벌어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수술하고 꿰메었던 실밥을 빼자마자 20여일 후 다시 오라는 의사의 말을 거절하고 설악 뉴스타트센터를 찾았고 이 것만이 나를 살릴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채식과 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목이 늘 아프고 뭔가 눌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 이 병은 재발과 전이가 빠를 수 있습니다.'' 라던 주치의의 말이 떠오르고 암흑이 되는 마음 그리고 급 우울 상태로 빠지곤 하던 그 해 12월 경남 어느 수양원을 향하던 중 서울대 병원에서 씨티를 찍고 수양원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결과를 보기위해 병원 복도에서 한 시간 여를 기다리며 불안한 마음이 계속 되던 중 문득 떠 오른 성경 구절이 마태복음 20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짐한 마음, 비록 재발되었다고 의사가 말 할지라도 오후 다섯시까지 기다리던 이 일꾼 처럼 끝까지 이겨내리라 다짐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농장에서 일할 일꾼을 찾는 어떤 이가 있습니다.
농장주는 일꾼을 찾아 새벽에 한 번, 9시에, 또 3시에 일꾼들을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해가 지는 시간 저녁 5시에도 일꾼을 찾으러갑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기에 그 시간에 데려가 삼십분에서 한 시간 일시키고 하루 일당 주는 바보는 없는데 하나님은 그런 바보십니다.
하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5시까지 기다린 사람, 그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사람.
그래야만 하는 절박한 사람.
삼십년이라도 베데스다 연못에서 기다릴 수 있는 사람,
바보와 바보의 만남.
성서가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은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을 만나주겠다는 약속이지요.
간절함이 도를 넘은 사람, 백도를 넘어서 끓기 시작하는 사람
'너는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리라.'
기적은 그 선을 넘을 때 찾아옵니다.
그 해 눈이 내린 추운 하동의 어느 논 길을 걸으며 마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
살고 죽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 아니며 보내신 이가 부르시면 언제든지 떠나야 하지만 아직 태양이 오후의 하늘에 빛나고 있는 지금 다섯시에도 와주시는 바보 주인을 기다려야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