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은 가고 없지만 열매 속에 남아 있다. 며칠 째 남겨진 노오란 가을을 따다 지루해지면 나무 그늘에 앉아 소리 없이 왔다 바람에 쓸려간 시절들을 생각해 본다.
저기 쓸려 간 자취, 한달음 달려가 잡고 싶은데 잡을 수 없다. 우수에 잠겨 하늘을 쳐다보다 찌거기 처럼 남아 있는 우울을 집어 하늘로 날린다. 벽에 붙은 껌을 잡아당긴 것 처럼 잔영 길게 붙어 나온다.
낫겠다는 일념 하나로 숨가쁘게 달려 왔는데 오년이란 시간은 익숙함이란 또 하나의 낮선 길로 안내한다. 떠나온 세계와 낮선 길 사이, 또 그 사이에 갖힌 것만 같아 답답해져 온다.
빈 텃밭엔 지줏대만 기웃이 서 있고 여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텅 빈 저 들녘 처럼 이런 저런 인연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또 다른 인연들에 에워 쌓이고
비속한 유행가 가사처럼 멀어지면 그립고 만나보면 시들한게 인간사 인데 가끔은 떠나온 인연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모를게 마음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무엇은 남기고 또 무엇은 들고 저 문으로 들어 갈까.
겨울이 오면 따스한 것들이 좋아진다. 장작이 타 드는 온기를 내 뿜는 난로, 온돌방의 아랫목, 누군가와의 따스했던 기억.
그래 누구나 따스한 것들에 손을 내밀고 몸을 기대지.
차겁고 아프던 기억일랑 과거가 될 오늘에 남겨두고 따스한 사람과 마주앉아 이야기 나눌 의자 두 개만 들고 내일로 가야지.
오늘은 눈이 내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