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합장> 77기 졸업 강의

by Admin posted Nov 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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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장> 77기 졸업 강의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할 때 여러분은, 그 말을 별로 힘이 없는 말로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한 참가자가 쓰신 이 편지 속에, 진짜 하나님이 곧 사랑이라는 그 말이 나와 실제로 상관이 있고 또 그래야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다른 간증하신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참 많아서 제 마음이 기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갈 때 사랑이 없어지면 유전자가 반응할 게 없어집니다. 우리 인간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으로 반응을 일으키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반응을 생명 현상이라고 합니다. 생명이라는 것이 생명체인 내 몸으로 들어와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니까 거기에 생명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 생명 현상은 반응이기 때문에 반드시 반응이 있기 위해서는 자극이 있어야 됩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에게는 자극이라는 말이 너무도 시시하니까 자극이라는 말을 좀 더 유식하게 만들어가지고 신호(signal)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신호 전달 체계라는 게 있습니다. 외부에서 어떤 자극인 신호가 들어오면 뇌가 반응하면서 전기를 일으킵니다. 뇌는 전기를 일으키는 성질이 있습니다. 전기가 일어나기 때문에 뇌파라는 게 생성됩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우리의 뇌는 뇌세포 속에서 발전합니다. 전기를 생성해서 뇌파를 형성합니다. 뇌에 어떤 신호가 들어 왔느냐에 따라서 파장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즉 신호가 들어오면 전기적 반응이 일어나고 뇌에서 뇌파라는 게 생깁니다. 아주 분위기 있는 신호가 들어오면 뇌파의 모양도 분위기가 있습니다. 뇌파의 모양의 분위기가 좋으면 우리의 몸 움직임도 좋습니다.


저녁 강의 때 제가 좋으신 하나님 노래를 같이 부르게 하면 이 노래가 좋은 뇌파를 생성하기 때문에 좋은 치유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끄럽고 신경을 자극하는 극력한 음향을 들게 되면 벌써 표정이나 근육이 균형 잡히지 않는 불협화음적인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 반응은 뇌파의 모양 때문에 나옵니다. 이렇듯이 뜻이 달라지면 파장도 달라집니다. 파동의 모양이나 형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저는 김진호씨가 나와서 자신이 붙었다고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럴 것이라고 이미 제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는 영화감독입니다.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예술적 기질들이 있어서 무언가 확신이 생기면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일이 잘 안 되려면 중구난방 쪽으로 잘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까 방향이 잡혀 있습니다. 예술을 하는 분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는 깊이 추구합니다. 그러면 전파가 좋은 것을 느끼고 좋은 파장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것을 느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밖에서는 살짝 살짝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길에 쌓이지는 않고 있지만 여러분, 길에서나 차에서 잘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곳을 지나면 눈이 안 올 것 같습니다. 이곳의 고도가 약 700은 되니까 눈발이 살짝 살짝 뿌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눈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도 우리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나옵니다. 이게 바로 자극입求? 좋은 신호가 들어가면 좋은 뇌파가 형성되어서 곧 엔돌핀 유전자가 생성됩니다. 엔돌핀이 생성되면 곧 T 임파구가 더 활성화 됩니다. 이런 체계를 신호 전달 체계라고 합니다. 이 신호 전달 체계를 통하여 나쁜 신호가 전달되면 나쁜 반응이 일어나고 그 반응이 계속되다보면 세포가 나빠집니다. 나빠져야만 그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여 좋은 세포가 나쁜 세포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자꾸만 좋은 신호를 보내야 됩니다. 병이 치유된다는 것은 이렇듯 간단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병을 낫게 하신다라는 말이 있는데 신호 중에서 최고의 신호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진선미이고 사랑 중에서 최고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셔서 “하나님이 내게 의미가 되었다”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치유를 위한 굉장한 발전인 것입니다. 그게 그저 “내가 종교적인 사람이다라고 그 가치를 격하시키면 안 됩니다.”나는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느낄 때 나쁜 신호들이 없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쁜 신호들을 통틀어서 스트레스라고 부릅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는 말은 나쁜 신호들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나쁜 신호들을 빨리 제거해서 스트레스를 빨리 해소해야 됩니다. 결국 투병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는 것이 지금 이 세상에 많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숱한 스트레스 전문가들이 스트레스에 대해서 강의들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가 하고 이런 저런 많은 방법들을 내놓습니다. 각종 학설들이 많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 학설들이 너무 복잡합니다.


여러분, 스트레스 해소는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매우 간단합니다. 진리는 항상 그렇게 단순합니다. 여러분, 스트레스를 원천적으로 아주 간단하게 한번 생각해봅시다. 스트레스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무엇이 스트레스를 만들어 냅니까?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망적 자아입니다. 내가 하나로만 되어 있다면, 생명적 자아로만 내가 구성이 되어 있다면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생명적 자아인 이 진정한 진아(眞我)로부터 변질된 거짓된 나가 바로 또 다른 가짜 나입니다. 그런 가짜 나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 생명적인 자아와 사망적인 자아인 이 두 존재가 내 속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가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이 살아있다는 스트레스를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 생명적 자아와 사망적 자아가 악수를 하면 됩니다.


저는 이 악수를 합장이라고 부릅니다. 오른 쪽은 나의 옳은 진아이고 왼쪽은 나의 사망적 자아입니다. 이 두 자아가 다시 함께 만나서 합의하여 뜻을 같이 할 때 바로 이때가 합장의 상태입니다. 불교에서는 합장이라고 부르고 기독교에서는 기도의 상태라고 부릅니다. 사망적 자아도 “그래 이게 맞다”라고 하고, 생명적 자아도 이게 맞다라고 하는 이 합장의 상태, 이 기도의 상태는 진선미인 사랑의 극치를 깨달을 때입니다.


우리가 그제 소금강에 갔었을 때 “와아!”라는 감탄사가 깊숙한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왔습니다. 이때 누구까지 그렇게 합니까? 사망적 자아도 그 아름다움에 찬성을 합니다. 너무 아름다우면 사망적 자아도 “맞다, 맞다!”라고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둘로 나뉘어져 있던 우리는 드디어 하나로 합장 상태가 됩니다. 이럴 때 스트레스는 순간적으로 싹 소멸되고 해소됩니다. 그 순간에는 스트레스 받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제일 많이 받는 때는 남을 미워할 때입니다. 사랑하게 되어 있는데 조그마한 감정으로 미워할 때, 사랑해야 되는 나의 진아 즉 나의 생명적 자아와 미워하고 있는 사망적 자아와 대립 상태에 있을 때, 즉 합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바로 그때가 가장 힘든 상태입니다. 그게 스트레스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기도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은 합장하라는 말씀입니다. 합장이라는 말은 용서하라는 말이고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 속에서 스트레스는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간단합니까! 어린 아이들은 합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합장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스트레스 중에서 최고의 스트레스라고 볼 수 있지요. 다섯 살 짜리 한 사내아이가, 혹은 여자 아이가 아버지가 스위스로 출장 갔다 오면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왔습니다. 이게 얼마나 먹고 싶던 것이었는지! 그런데 초콜릿 중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스위스제입니다. 저는 초콜릿을 안 먹는 사람이지만 스위스에 가면 먹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안 먹고 올 수가 없습니다.


스위스에 가면 뉴스타트 사람들이 건강식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닥터리, 너는 스위스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해줍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스위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스위스를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이것을 준다.”라고 하면서 작은 선물을 줍니다. 제가 열어보면 그 속에는 스위스 초콜릿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초콜릿은 건강식품이 아니지만 그런 의미로 받은 초콜릿은 건강식품입니다. 뜻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뜻이 이 음식이 건강식이냐 아니냐를 결정합니다.


아빠가 스위스로 갔다 오면서 아이에게 초콜릿을 사왔습니다. 예전에 한번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도 맛있습니다. 이것을 들고 골목 혹은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우리 아빠가 스위스에서 이것 사다주었져~~”라고 폼을 잡고 있었을 때 어떤 심상 궂은 힘센 나쁜 녀석이 와서 잽싸게 채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이거 스트레스입니다. 이것처럼 큰 스트레스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아파트 700채가 부도로 넘어간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스위스제 초콜릿 뺏긴 스트레스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어린 애더러 참으라고 말할 수도 없고 용서하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게 어떻게 용서가 되겠습니까? 용서가 안 되면 어떻게 풀어주어야 됩니까?


우리가 철이 들었을 때는 합장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애들은 합장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풀어야 됩니까? 도저히 풀길이 없습니까? 지금 아빠가 스위스에 다시 갔다 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일이 생길 것을 예상하고 아빠가 두 개 사와야 되었을까요?


여러분, 그 스트레스를 풀 길은 단 한길 밖에 없습니다. 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은 엄마의 품속 밖에 없습니다. 결국 스트레스의 해소는 사랑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앙앙...하고 아이가 숨이 막히도록 지금 울고 있다고 할 때 그 애는 울면서 누구를 찾아와야 됩니까?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아옵니다. 지금 사망의 신호인 극도의 증오심과 억울함과 분노가 몰려와서 그 애를 죽이고 있습니다. 살러 가야 합니다. 어디에가 생명이 있습니까? 엄마 품에 생명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엄마 품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내가 병이 생겼기 때문에 병 고쳐 주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기복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자아와 진아 즉 사망적 자아와 생명적 자아 이렇게 분리되어서 할 수 없이 이 사망적 자아를 체험하며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살고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엄마 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어머니 보셨지요? 지금 87세이십니다. 그 엄마가 내 품에 안겨야지 이제 제가 그 엄마 품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엄마 품에 안길 수 없습니다. 엄마는 나를 낳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철이 없을 때는 엄마 품에 안겨서 엄마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사랑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빠가 또 초콜릿 사올 거야?” “아빠가 다음 달에 또 미국에 갔다 올 거야” “미제는 맛없어!” “그래도 미국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스위스제보다 더 맛있단다” “그래, 진짜지?!” 이렇게 엄마 품에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희망을 받아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엄마 말을 믿고 아빠가 미제 중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사온다는 것을 희망하고 그 사랑으로 스트레스는 해소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엄마 품은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품이 없습니다. 품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품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 공부를 꼭 하십시오. 저는 “예수 믿어서 천국 가라”는 식으로 말하기는 싫습니다. 엄마 품이 바로 우리의 천국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힘들게 하더라도, 스트레스가 아무리 많더라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의 품인 하나님의 말씀 속에 꼭 안기시기 바랍니다.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드뭅니다. 말로만 사랑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 그 자체가 상당히 의미 없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 사명이 하나님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지금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가르쳐야만 병이 낫기 때문입니다. 유전자는 그 사랑에 생명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유전자를 공부해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성경 공부 자료실이라는 게 있습니다. 공부할 자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글, 자료, 동영상, mP3들이 있습니다. 공부하여 하나님의 품인 그 말씀에 안기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병들고 상한 유전자, 속상해서 상한 유전자를 부드럽게 어루만지셔서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꼭 스트레스를 엄마 품인 하나님의 품속에서 해소하셔서 꼭 승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