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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질문에 대한 답 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의 자유를 준다는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근데 내 아이들에게 이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기가 쉽질 않아요.

요즈음 방학이어서 날마다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학교 울을 벗어나니 온통 제 멋대로 하라고 부추기는 문화들로
꽉 차있는 환경에서 이것을 허락하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방학이 끝 나갈 때 쯤 되니 난 이미 아이만 보면 웃음이 사라지고
윽박지르는 모양새만 보여주고 있네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속 썩입니다. 머리는 봉두남발에 다가 옷은 명품이다 뭐다
매주 한 벌 씩 사드립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이런 청소년 문화에 젖어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

박사님 이번 목회자 세미나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아이와 서로 극단으로 치우친 때문이란 것을 ....

늘 반복되는 나의 나약한 인내가 부끄러워집니다.
감동적인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시는 박사님 강의 너무나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           ********************************

 

자녀들에게 하늘의 징계를 주자!

(징계의 성경적 의미)


선택의 자유와 징계

렘2:17절을 보면 위에서 하나님이 잘못된 선택을 한 죄인을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그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당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렘2:17] 주 너의 하나님께서 그 길로 너를 인도하셨을 때 네가 그를 버림으로써 이것을 네 자신에게 자초하지 않았더냐?(렘2:13, 19절도 보자)


[렘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죄인이 하나님을 버리기로 선택한 것이 악이다. 즉 생명(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악이라는 말이다. 생명을 거부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악은 인간이 관념적으로나 현실적인 행동으로 자기가 피조물임을 부인하는 행위가 악이다. 관념적으로는 창조주를 믿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을지라도 생활 속에서 어떤 문제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창조주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증거들이 나타나는 행위가 악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악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것이 바로 징계를 받는다는 말이다. 죄인은 자기가 선택한 악, 곧 창조주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마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독립적 행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고통이 바로 스스로 징계를 자초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직접 징계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딤전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1:20]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는 그들 스스로 양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사단에게로 가기를 선택하였다. 바울은 그들이 그들의 선택한 사단의 길로 가면 그 결과 고통이 올 것을 알았지만, 그들이 자기들이 선택한 사단으로부터 고통을 받아본 결과 잘못을 깨달아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아픈 마음으로 그들이 선택한 길로 가도록 허락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허락한 것이다. 하늘의 징계는 선택의 자유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을 징계하였다는 의미는 그들이 잘못 선택한 사단의 길, 사망의 길, 고통의 길, 거짓의 길로 가는 것을 더 이상 간곡히 만류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들의 선택의 결과를 맛보아 아는 길만이 그들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하게 남은 길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마침내 만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그들의 길을 갈 것을 허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징계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바울이 마치 자기가 그 두 제자들을 직접 사단에게 내어준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한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사단에게 내어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이라고, 이렇게 바울이 마치 자기가 직접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준 것처럼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표현은 성경전체를 통하여 무수히 나타나 있다. 애급의 왕 바로가 자기 스스로 사단의 편에 가서 사단이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산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한 표현인 것이다. 창조주의 사랑은 피조물의 모든 잘못을 책임지시는 조건 없는 사랑, 곧 절대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발로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바로의 죄도 당신의 죄인 것처럼 표현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창조주만이 피조물에게 하실 수 있는 사랑인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시라면 이런 사랑을 하실 리가 없다. 이러한 모든 “책임지시는 사랑의 표현”의 극치가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기를, 그리스도를 떠나가는 사랑하는 제자들인 후메네오와 알렉산더의 죄(악)를 자기가 책임지고 싶어 하는 그리스도의 품성, 곧 십자가의 사랑의 발로를 나타내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바울이, 기록된 대로 그 두 사람을 직접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결코 아니다.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딤후2:25]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모든 하나님의 징계는 온유하게 하는 것이며 회개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징계는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불순종한 것에 대한 형벌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온유하게 하기보다는 분을 내면서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는 죄인의 회개를 위하여 온유하게 하는 것이다. 절대로 죄인들에게 허락하신 선택의 자유가 박탈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징계는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셨다면 그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택의 자유를 잘못 행사하여 불순종했을 때에 그 불순종을 분노로 징벌하기 위한 징계를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으로서 합리적으로 행하시는 것이 아닌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분노하시며 그 죄인의 선택의 자유를 박탈해버리시며 그들에게 직접 고통을 주신다면 공의롭게 행하시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 아닌 것이다. 공의롭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답지 않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금하심과 선택의 자유

하나님은 금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금하심은 먼저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신 후에 금하십니다. 만약 선택의 자유를 주시지 않으시고 금하신다면 그것은 독제이며 강제입니다. 그 독제와 강제는 무례히 행하시는 것이며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러한 강제적 사랑은 공의도 아닙니다.


그러나 먼저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시고 그냥 방임만 하시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그리고 상대방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시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시며, 강제하시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모든 것을 견디시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시며 인간의 잘못된 선택을 사랑으로 만류하시며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분이 율법으로 금하시는 것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그 금하심의 실상, 곧 율법의 실상은 당신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망을 금하시며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는 우리가 그분의 생명을 받아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며 사는 것을 바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망을 금하신다는 참 뜻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에 나타난 금하심은 사망을 선택하는 죄인을 향하신 간곡한 사랑의 만류이며, 생명을 받아드리라는 간곡하신 호소인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율법은 죽이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망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여 살리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겔18:23]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18:31]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겔33:11]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금하신 것을 마치 하나님이 우리들의 자유를 구속하시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도 옳지 않으며, 또 그와는 정반대로 처음에는 금하셨던 것을 나중에 허락하시는 것을 마치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본래는 이혼하지 않게 된 것을 백성들이 완악해졌기 때문에 이혼을 허락하신 것, 본래는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일이었지만 홍수 후에 육식을 허락하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혼하고 육식할 자유를 주시거나 그런 것들을 합법화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를 사망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약1:25]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십계명의 율법은 금제(禁制)의 면에서보다도 자비의 면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율법의 금제

성(禁制性)은 순종에 따르는 행복의 확실한 보장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일 때에 율법

은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우리에게 기쁨을 줄 품성의 순결성을 이루도록 역사할 것이다. 순

종하는 이들에게 율법은 보호의 장벽이 된다. 우리는 이 율법 안에서 인간에게 의의 불변의

원칙을 나타내시고 범죄의 열매인 악에서 인간을 보호하시려고 노력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

을 바라보게 된다. (1SM, 235)


하나님은 금하신 것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금하신 것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인간이 완악하거나 미성숙 할 경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허락하신 것도 사양할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를 인간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인간이 잘못 선택을 해도 허락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허락의 배경에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 인간에게 주신 선택의 자유 때문에 하나님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죄인들을 향하여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경우에도 오래 참으시고, 견딜 수 없는 모든 것을 견디시며,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성내지 아니하시며, 호통을 치시고 싶으셔도 온유하시며, 원하지 않는 완악한 인간들을 강제로 순종하게 하시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시는 고통스러운 사랑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사랑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고통을 기쁨으로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사랑, 선택의 자유를 주는 사랑은 우리 죄인들에게는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한 사랑이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아니하는 사랑은 강제적인 사랑이며 더 이상 진실한 사랑은 아닌 것이다.


자녀교육과 징계, 하늘의 징계, 땅의 징계

자녀교육에서 징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징계는 사랑의 징계, 곧 하나님의 징계로 자녀들을 징계하여야 한다. 현재 자녀들에게 행하여지고 있는 징계는 대부분 세상의 징계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징계는 자녀들의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런 징계를 하는 이유는 부모들이 고린도전서 13장의 고통스러운 사랑을 피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노 속에서 징계한다.


결국 하늘의 징계는 당신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돌아오기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더 이상 사랑으로 만류하시고 싶으신 마음을 억제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잘못의 결과를 그들 스스로 맛보지 않을 수가 없도록 그들의 잘못된 선택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러한 허락이 그들을 사단이 주게 되는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을 아시면서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견디며, 성내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않으시는 것이다.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인내의 사랑을 기쁨으로 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녀를 사단에게 내어 주는 징계는 하나님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징계를 하시기로 결심하셔서 실행에 옮기시게 되면 죄인은 마침내 그 자신의 선택의 결과로 사단의 권한 하에 있게 되고 사단은 그에게 고통을 주어 결국 죄인에게  재앙이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앙은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의 대가로 하나님께서 직접 죄인에게 고통을 주시는 세상적 형벌이 아니다. 그러나 사단은 자기가 준 고통을 하나님이 죄의 대가로 주시는 것이라고 죄인을 속여서 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리 떠나가게 오해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땅의 징계와 하늘의 징계가 하늘과 땅이 다르듯이 그 만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이 징계의 결과로 인간이 받는 재앙은 하나님께는 슬프고 고통스러우신 애가와 애곡의 재앙이지만 그러나 그 징계를 내리시는 분의 사랑을 알게 되면 그 재앙은 꿀처럼 달콤한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징계와 재앙 속에 꿀같이 달콤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된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겔2: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겔3:1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겔3: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겔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징계로 인한 재앙 속에 나타난 사랑)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그러나 자녀교육상의 징계에서는 자녀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단의 역할을 부모가 대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을 주고 고통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하나님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자녀에게 고통을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 부모의 품성을 오해하게 하는 중대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를 징계하여야만 하는 부모는 그 징계를 받는 자녀에게 죄인을 끝까지 변치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증오심이나 분노를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그리고 징계를 받아 고통스러워하는 자녀에게 사랑과 동정을 표시함으로서 부모의 사랑의 보호를 거부한 결과로 사단으로부터 고통 받는 죄에 빠진 자녀에게 “무례히 행치 아니하시며” “성 내시지 않으시는(고전 13:5)”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이렇게 죄에 빠진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의 품성을 확실하게 보여서 그 사랑의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징계의 근본 목적인 것이다.


[잠19:18]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하늘의 징계는 소망을 품고, 온유하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죄인을 죽이실 마음은 없으신 것이다. 징계는 하나님께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진실로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꿀같이 달콤한 것이다.(겔3:3)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기에는 너무 답답하다. 자유가 없다’라고 느끼지 않도록 하나님은 인간에게 철저히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그러시는 하나님이므로 죄인들이 잘못 선택했다고 벌주지 않으신다. 벌이란 징계의 결과로 죄인이 자초하여 얻은 고통을 뜻하는 것이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5살 난 아들이 누나의 책을 찢고 누나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엄마도 온유하게 그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요놈은 심통이 났다. 아침밥을 안 먹겠다고 데모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가 사랑으로 달랜다. 안아주고, 뽀뽀도 해주고, 나중에는 밥 먹고 엄마랑 같이 시장에도 데리고 가겠다고 까지 꼬셨다. 그러나 요놈은 막무가내다. 오히려 투정이 더 늘어간다. 나중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꽝 닫아버리고 만다.

엄마의 마음은 아프다. 저 녀석이 배가 무지 고플 텐데---

엄마는 기도한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하늘의 징계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그래, 고 녀석 제 하고 싶은 대로 가만 좀 두자, 그런데 배가 무척 고플 텐데” “하나님 제 너무 배고플 거 에요, 어떡하죠” “그래, 너와 나랑 같이 참아보자! 그리고 난 고놈 방에 들어가서 한 번 더 달래 볼께!” “빨리 아침밥 먹어야 할 텐데, 너는 기도하고 나는 달래고, 열심히 해보자!” “예수님 부탁해요, 빨리요!” “내게 마껴 둬” “근데 잘 안 마껴져요” “그러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랬쟎아” “부탁해요 주님” “고 녀석 참 고집도 세네, 너 닮은 것 같아” “빨리 하세요” “그래, 그래, 고놈 참, 힘드네.”


우리가 이런 창조주의 사랑에 감동하여, ‘하나님 당신이 원하는 선택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서 나의 선택을 버리자. 그리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 되자. 이렇게 될 때 참 순종이 나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시키지 아니하신다. 멸망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스스로 멸망을 자

초한 것이 될 것이다. 양심의 경고를 무시하는 자는 불신(不信)의 씨를 심는 자이다. 그 씨

는 정확하게 불신을 수확하게 될 것이다. (실물 64)


우리는 하나님을 죄인을 벌하려고 기다리고 계시는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죄인이 자

기 스스로 벌을 자초(自招)하는 것이다. 죄인 자신의 행동들이 분명한 결과를 가져오는 연

속적인 사건들을 돌발시킨다. 범죄의 모든 행위는 죄인 자신에게 반응을 보이며 품성의 변

화를 일으키고 그가 더욱 쉽게 또다시 죄를 짓게 만든다. 죄를 짓기로 선택함으로 인간은

저들 스스로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며 축복의 통로에서 저들 자신을 차단시키며, 그 분명한

결과는 패망과 사망이다. (1SM, 235)


하나님의 율법의 각 교훈은 그분의 사랑이 기초가 되어 있기 때문에, 계명을 떠나는 자는

불행과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산상보훈 52)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신 것을 부인하거나 모르고 있을 때, 그리고 선택의 자유가 없다고 믿으면서 하는 순종은 거짓 순종이다. 이렇게 선택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채 열심히 순종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나의 완전한 자유의지대로 선택하는 참 순종을 원하신다.

이러한 선택의 자유를 누려본 일은 없이 행하는 거짓 순종은 율법주의를 탄생시킨다. 결국 율법주의는 선택의 자유를 모르는 것이고, 선택의 자유를 모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품성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율법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품성의 사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율법주의로부터 땅의 징계(세상의 징계)가 나오는 것이다. 결국 땅의 징계는 분노의 징계이요, 하늘의 징계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징계는 그리스도의 품성, 그리고 그 품성 속에 있는 선택의 자유를 모르면서 율법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오해는 그리스도의 ‘품성의 오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마22:29]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그리스도의 품성)도, 하나님의 능력(그리스도의 사랑)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지난 8월 15일부터 있었던 ‘목회자를 위한 뉴스타트’ 동영상 강의를 www.leesangku.org 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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