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못”,
"불타오르는 사랑과 애통의 눈물의 바다로 변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불 못은 둘째사망이다.
[계20:14]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불못은 어떤 물체나 생명을 거부한 사람들을 태우는 어떤 '장소, 또는 곳'이 아니다. 불못은 사망, 곧 둘째 사망이다. 사망과 음부는 인격체가 아니며 원래부터 창조된 것도 아니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단이 만든 존재하지 않는 거짓에 불과하다. 이러한 거짓과 이 ㄱ거짓을 따르는 인간,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녹아 없어져서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됨을 뜻한다.
[계21: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둘째사망이란 무엇인가?
[애3:48]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애3:49]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둘째 사망이란 하나님의 사랑의 구원을 최후로 거부해버린 악인들과 하나님의 최후의 결별, 곧 죄인의 멸망을 뜻한다. 이 둘째 사망의 순간은 사랑을 주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에게는 참을 수 없는 최악의 고통의 순간이 될 것이다. 그토록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까지 십자가에서 피 흘리게 하였건만 그들은 끝내 그분의 사랑을 거부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비통한 부르짖음은 다음의 성경말씀에 어느 정도 나타나 있습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부르짖는 하나님의 가슴 속에서는 아직도 그분의 사랑을 거부하고 멸망으로 가는 자녀들을 향한 불타오르는 사랑으로 더욱 더 뜨거워져가고 있었으며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어버리는 고통스러운 눈물을 그들의 위에 쏟아 부으실 것입니다.
둘째사망은 불타오르는 사랑과 이별의 눈물이다.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 생명을 최후로 거부해버린 자녀들과의 최후의 이별을 맞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은 불타오르는 피눈물의 못(바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불이란 무엇을 의미 하는가?
하늘보좌에는 불이 함께 있다. 하나님은 불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불기둥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셨다.
하늘성소의 제단에 죄를 사하는 숯불이 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을 거부하는 죄인을 대하는 마음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 차고 넘치는 마음이다. 그러나 긍휼을 더 하여 주심에도 불구하고 죄인은 또 다시 더 거부한다. 하나님의 긍휼은 그분의 마음속에서 더 뜨겁게 불타오르시는 불이 되신다. 속이 타신다. 너무나 답답하다. 마음이 탄다. 속이 탄다. 불같이 탄다. 자기를 떠나 사망으로 향하는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이 불길처럼 일어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불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다음의 성경말씀에서 확인해보자.
[호11:8]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표준새번역)
불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불기둥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는 말은 죄인의 죄를 소멸하시는 사랑의 불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소멸하는 불이란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이다.
다음 성경말씀에 불의 의미가 다시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출24:17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는 주의 영광이, 마치 산꼭대기에서 타오르는 불(consuming fire-소멸하는 불)처럼 보였다.(표준새번역)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빛이다. 하나님의 빛은 하나님의 사랑, 곧 하나님의 품성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에게 생명이 된다.(요1:4) 이 성경 말씀에서 타오르는 불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곧 하나님의 품성이 불처럼 타올랐다는 말이다.
제단의 제물은 주로 우리 죄인들의 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불로 죄인들의 죄를 태우신다. 이 말은 죄인들의 죄를 사랑의 불로 소멸시키시어 용서하신다는 뜻이다.
레6:9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법은 이러하니라. 이것이 번제니 제단 위에서 아침까지 밤새 타기 때문이요, 제단의 불은 그 안에서 탈(consume) 것이라.
유황은 진리이고 불은 성령이다.
요엘서에서 마지막 늦은비 성령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때에 사람들은 예언을 하고 성령이 충만하며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이적이 일어나는 현상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욜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영)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설명: 하나님의 영은 진리이다.[요일5:7]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진리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사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은 유황이다. 이 말씀이 타면 빛이 나나며 곧 사랑의 불이 된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피, 곧 생명이다. 다음 말씀을 보자.
욜2: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설명: 연기는 사랑의 말씀이 성령의 불로서 역사할 때에 나타나는 이적을 뜻한다.
사단의 거짓 불과 연기와 유황
사단은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의 품성을 반대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사단의 생각에는 모든 원수들을 처단해야 하며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 한다는 것은 공의가 아니며 오히려 죄를 더 조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 스스로 죄의 결과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공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죄인의 죄의 값을 하나님이 대신하여 책임지는 것은 공의롭지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사단의 모조품 공의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것에 대한 사단자신의 모조품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하나님의 복수와 사단의 복수가 다르다. 하나님의 복수는 원수를 사랑으로 회개하게 하시어 구원하시는 것이 공의지만 사단의 복수는 원수를 처단하는 것이 공의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유황, 불, 연기도 사단의 불, 연기, 유황과 다르다.)
다음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하나님의 유황 - 하나님의 진리
사단의 유황 - 사단의 거짓(타락한 개신교)
하나님의 불 - 늦은 비 성령
사단의 불 - 악령(거짓 성령운동)
하나님의 연기-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기적.현상
사단의 연기-악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강신 술적 거짓기현상
유리바다와 불못
성경에서는 호수와 바다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갈릴리 호수를 갈릴리 바다로.
계시록에는 유리바다라는 말이 나온다.
[계4:6]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계15:2]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불 못이 생명을 거부하고 사망을 향하여 멸망의 길로 들어선 자녀들에 대한 하나남의 불붙는 사랑의 마음이라면, 과연 유리바다는 무엇일까?
마침내 고통은 지나가고 당신의 사랑하는 구원을 받아드린 자녀들이 설 곳은 보좌 앞이다.
그 보좌 앞에 유리바다가 있다.
유리바다는 너무나 맑은 수정 같은 바다를 뜻하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마음,
곧 가장 정결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낸다.
이제 불타는 안타까움의 고통의 눈물은 지나갔다.
하나님의 마음은 한없이 넓은 바다이다.
사랑의 불, 불의 폭풍은 사라지고, 마침내 잔잔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그것이 유리바다가 아닐까?
구원을 받은, 사랑의 품성을 받아드린 성도들을 눈 앞에 만나시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실 것이다.
둘째 사망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멸망으로 보내셔야만 하시는 하나님,
통곡하시면서 눈물로 이별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모습은 불못이요
그토록 주시고 싶어 하시던 사랑, 그 구원을 마침내 받아드린
당신의 자녀를들을 영접해 맞아드리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과 그 모습은 유리바다가 아닐까?
우리들은 지금 불못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유리바다를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