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은 부모의 지극한 사랑과 매우 비슷한 것 같습니다.
‘주동적’표현도 부모, 자식 간에 충분히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박사님이 설명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은 그래서 너무나 따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양식도 되겠고, 치료의 능력도 될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 부모자식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인것을 생각하면 의문이 자꾸 생깁니다.
부모는 자식이 바른길로 가길 끝없이 권하고, 실수를 용납할 뿐 아니라 부모자신의 잘못이라고 주동적으로 말하며, 돌아오지 않는 자식을 끝까지 기다립니다.
본인의 부족함을 안타까워하며, 더 잘 양육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양육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교육교재는 우리 부모의 교재와 다르고, 그분의 우리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인간 부모의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제하지 않고도 우리를 훈육할 수 있습니다. 마치 설리반 같은 훌륭한 교사가 헬렌켈러같은 불가능할 것 같은 장애인을 키워내며,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으로 패륜아를 돌이키는 것 처럼 말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패륜 자식에게 우리 인간 부모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우리의 부족함이 그 아이를 그렇게 성장시켰고, 바르게 양육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안해 하는 것이고, 한 인간의 부모로서의 자신의 한계 때문에 안타까워 가슴이 아플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다릅니다. 무엇이 불가능하게 합니까? 그분은 탁월한 부모요 교사가 아닙니까?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패륜자식도 그 내면에는 거스를 수없는 자신만의 병적충동이 있을 수 있고, 병적 행동에 대한 뇌의 기질적 감수성 같은 의학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사회적 인간관계의 구조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 부모는 그런 것들을 다 알지도 못하고 고칠 수도 없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의 완고한 고집의 원인을 제거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유의지를 부정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죄인의 멸망을 바라보신다는 박사님의 말씀이 충분이 이해되지 않아 안타까운 심정으로 감사의 말씀과 함께 이렇게 질문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