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구 박사님,
이박사님의 강의에서, 생명나무와 지식나무가 있었는데, 아담과 이브가 생명나무를 선택을 하지 않고 지식나무를 선택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인간의 의사를 물어봐야 하는데 창조 전에는 물어볼 수가 없어서, 만들고 나서 사후 결재(!)를 받기 위해서 선택을 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울러, 아담과 이브가 생명나무를 선택하지 않고 지식의 나무를 선택한 것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지식에 의지하여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요? 지하철에서 들었는데, 소리내어서 펑펑 울고 싶었지만, 그놈의 쑥(!)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창가로 얼굴을 돌려서 눈물만 주루룩 흘렸습니다. 한 10 분 정도는 울었나 봅니다. 한 시간 쯤 후에 감정을 추스리고, 내가 왜 울었을까?라고 자문을 하니, 이박사님의 강의로 깨달은 진리가 한꺼번에 폭발을 한 것 같습니다.
자유의지,바로의 강퍅, 탕자의 귀향,코메디 하나님, 사마리아 여인 등 정말 이박사님의 깨달음의 극치 말씀에 진리를 깨우쳐 가다가 이 부분에서 폭발을 한 것이지요. 사마리아 여인에서 예수님은 항상 긍정적으로 말씀을 한다는 대목도 정말 대단한 깨달음입니다.
이박사님,
하나님이 사탄도 사랑하신다는 대목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씀하실때 피부 세포 하나하나에 전율이!!..., 욥기에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중에,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넘기면서 욥의 목숨은 해하지 말라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그동안 하나님이 왜 사탄이랑 저런 대화를 하시나? 전혀 이해를 못했는데, 이 강의를 들으면서 깨달았읍니다.
정말 진실이란게 이런 거군요. 평소 먹고 사는게 바빠서 진실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는데, 아! 정말, 이래서 진실을 깨달으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말을 어느 현인이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박사님 강의로 정말 내일 죽어도 별 여한이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시드니는 이제 봄이라 출퇴근길에 보는 야생화에 엔돌핀, 도파민은 물론이고 모든 DNA 쫙쫙 켜지면서, 하루에 2-3천개 생기는 암세포를 T세포가 죽이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메틸기가 DNA를 줄였다 늘렸다 하는 것을 오감으로 느끼면서 삶고 있읍니다.
창세기에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더라"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생명나무가 한 번 언급이 되고서 그 다음엔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이 압축적인 성경에서 분명이 언급된 이유가 있을텐데 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는지는 꿈에도, 속된 말로,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생각은 못했을 겁니다.
고신대 이상규 교수를 통해서 성경 전체의 흐름을 파악함으로서 성경의 지식을 얻었고, 김명현 교수를 통해서 성경의 과학적인 근거를 얻었고, 이박사님의 강의를 통해서 성경 지식, 성경 과학은 물론이려니와 성경의 진리를 깨달았읍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이 진리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늘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제가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AIDS보다 더 무서운..., ASDS, Acquired Stress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 스트레스결핍증), 이 불치병 걸린 것에 이박사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
이박사님,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이 있읍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님이 쌩뚱맞게 이 버렸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게 무슨 말씀인지 저의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무슨 말씀인지요?
시드니에서 이박사님의 강의에 감탄뿐인 팬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 예수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죄인들, 생명을 주었지만 사단에게 속아 생명을 거부해버린 자녀들에게 다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스스로 내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보시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요10:17 이로 인하여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내가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해 나의 생명을 내어 놓기 때문이니라.
요10:18 아무도 생명을 내게서 빼앗을 자가 없으나 내 스스로 그것을 내어 놓느니라. 나에게는 생명을 내어 놓을 권세도 있고, 또 그것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노라. 이 계명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니라."고 하시니라.
그러나 아무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생명을 스스로 버려 죽으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당신 자신이 생명이신 분이 죽는다는 것은 생명이 아닌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겁니다. 엄마가 아이를 아부리 사랑한다고 하여도 실제로 죽어야 할 순간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예수님이 인류를 위하여죽으시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며, 동시에 당신의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으시지 않고 그 구원의 목적이 이룰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특히 죄인과 같은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주님, 사단의 영과 투쟁하시어 실제로 승리하시어 당신의 뜻과 아버지의 뜻을 함께 이루셔야 합니다. 사단은 주님께서 아버지가 주신 사명을 포기하라는 강력한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피땀 나는 투쟁의 기도를 다음과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눅22:42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시여, 원하시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더라.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께 천사가 함께 하며 도우십니다. 참으로 힘드신 투쟁입니다.
눅22:43 그때 한 천사가 하늘에서 주께 나타나 힘을 돋우어 주더라.
눅22:44 주께서 고뇌 속에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그의 땀이 큰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지더라.
마침내 하나님의 영, 아버지의 생명이 떠나셔야 할 순간이 왔습니다. 하늘에서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셨겠습니까? 아버지는 온 인류를 위하여 마침내 당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어린 양으로부터 거두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었지만 그 순간은 아버지께도 너무나 고통스러우셨습니다. 아들의 몸과 마음은 죽어갈수록 생명을 더 갈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아들은 자기의 기도대로 “내 뜻대로 마옴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다시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래 이제 너의 생명을 거두어버리겠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아들도 아버지가 자기를 버리시는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요, 마침내 아들로부터 당신의 영을 거두시기 시작했습니다. 사망이 아들을 엄습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둘째 사망을 체험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들은 마치 아버지가 자기를 버리시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극심한 고통 때문이었지요!, 이때,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 순간에도 또 다시 아들은 기도했습니다. ”내 뜻대로 마음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아들도 마침내 그 영을 포기하시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들은 ”다 이루었다!“라고 승리의 함성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물론 하늘 보죄의 아버지께서도 아들과 함께, 그리고 천사들도 ”다 이루었다“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John19:30 When he had received the drink, Jesus said, "It is finished." With that, he bowed his head and gave up his spirit.
성경은 기록된 글자만 보시면 한 없이 혼란스럽습니다.
그 글자 속에 숨어 있는 마음, 뜻, 곧 영을 읽어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분별하여 깨닫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고전2: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