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강원도 삼척에서 왔습니다. 지난 98년도에 처음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먼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병이 왜 생겼는지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분처럼 저도 아버지 밑에서 너무 억울하게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원래 약주를 좋아하셔서 주정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 하겠다 결심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4남 1녀를 슬하에 두고 글을 가르치고 키우면서 한차례도 때린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아이들과는 좋은 관계로 살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요. 그런데 아내가 무속을 믿으며 생활해서 그 부분에 갈등이 많았어요. 그것 때문에 사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술도 마시고 했지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유학들을 보내고 하면서 글 가르치는데만 초점을 맞추고 살았어요. 그렇게 살다보니 아이들도 성장하고 다 잘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옆구리가 따끔따끔 해서 병원을 가보니 검사를 하라고 해서 검사를 했어요. 그랬는데 신장에 암이 생겼고 쓸개에 담석이 생겨 수술을 하고 두 달 동안 병원에 있게 되었어요. 그 후 바로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몸이 너무 힘들고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고 앉아있기도 힘들고 하니 이상구 박사님의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렇게 8박 9일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일년 넘게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는데 뭔가 좀 힘들어 지는 거예요. 그래서 병원엘 갔더니 재발이 되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제 마음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셋째 아들이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첫째, 둘째아들은 그래도 현대의학을 의존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제가 결심을 했습니다. 이미 병원에서는 할만큼 했다. 그러니 이제는 뉴스타트를 해봐야겠다고 말이죠. 제 경험으로 봐서는 이곳에서 건강식을 하고 운동을 하고 뉴스타트를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가정환경이 바뀌고 내 마음이 바뀌면 낫는 것은 확실합니다. 또 제가 그렇게 살아오려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치유의 길을 가지 않겠는가 생각하는데 제가 가정적으로는 아이들과 며느리들과는 관계가 참 좋은데 아직까지는 아내와의 관계가 잘 안됩니다. 자녀들도 뭘 물어도 아내는 다른 곳에 물어보고 “이건 안된단다. 저건 안된다” 그렇게 대답을 하니 말이 잘 안 통하는 거지요. 이것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에는 그럴 때마다 핏대를 올리며 흥분하며 살아왔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다 유전자를 파괴하는 것이니 그러면 안되겠다 생각을 하고 가급적이면 조용하게 말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직도 한편으로는 핏대가 올라오고 화가 나는데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찌지직이 ‘니가 참아라’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옛말에 ‘한날이 편하면 백날이 편하다’는 말이 있으니 내가 자존심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내가 죽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니 집사람도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말에 순순히 따라하게 되더군요. 그 마음이 기분 좋으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서울 같은 환경에서 이런 곳에 오게 되면 공기도 맑고 물도 맑으니 살맛이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몸 속에 있는 암세포도 살맛 나는 환경에서는 살지 못하고 도망가게 됩니다. 아직까지는 내 몸에 암세포가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암 너도 살고 나도 살고 한번 살아보자. 살다가 니가 곪으면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거고 내가 이기면 너는 물러 가야하지 않느냐’ 이런 생각으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 나셔야 하고 환경조건이 좋아야 하고 모든 것에서 내가 살 수 있구나 하는 의지를 갖고 사신다면 여러분도 꼭 건강을 회복하시리라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