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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기 정규프로그램 참석 후
(본 내용은 한국생명운동본부에서 발간하는 뉴스타트 잡지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이진숙02.jpg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하나의 생명이 죽음으로부터 구하여져 다시 태어난 이야기를 하려 함에 어찌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렇다. 나는 정확히 말해서 죽음에서 삶으로 옮기어 진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 다시 한 번 기도로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모든 아픈 분들을 위하여, 내가 다시 태어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근원! ‘생명의 근원’  내가 처음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은 것은 2001년 3월이었다. 평소에 좀체로 병원에 가지 않던 나였는데 그때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며 “혹시 내가 아이들을 두고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그 길로 병원엘 갔었다. 동네 병원에서 난소에 종양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친 김에 큰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역시 같은 말을 듣고 아주 서울대학병원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도 같은 이야기라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수술 도중에 직장 쪽에서 또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직장내시경을 찍어 본 결과 악성종양이었으며 난소 적출 수술 후 2주만에 다시 장(腸) 수술을 하게 되었다. 장(腸) 수술은 먼저 번 수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으며 온 몸을 결박당한 상태로 20일 가까이 금식하였다.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참담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는 참으로 먼지 같은 존재였구나. 나는 참으로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헛되고 헛된 관념의 무더기였구나.’  그 동안 살면서 내가 가졌던 모든 생각들. 소위 생각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헛된 관념이었으며 그 관념들은 철저하게 죽은 찌꺼기, 아무 것도 아닌 죽은 쓰레기들일 뿐이었다는 것을 나는 통렬하게 통렬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랬었다. 아무 것도 그 어떤 것도 그때까지 내가 살면서 생각하고 애쓰고 느끼고 알았던 모든 것들은 아무 것도 다 실체가 아니었으며 하나의 헛된 망상, 힘없이 부유하는 관념의 먼지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실체가 아니었으며 나와는, 진정한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즉 ‘나의 생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헛된 구름 같은, 꿈 같은 것들이었음을 나는 확실하게 깨달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다만 하나의 수동태였을 뿐 그 어떤 것도 내가 나를 위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 나는 하나의 수동태, 철저하게 완전하게 하나의 수동태에 불과하였다. 죽으라면 죽고 살려 주면 살 수 있는…그렇게 누워있는 중에 조직검사 결과를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우선 그 종양들이 악성이라는 것이었으며 문제는 그 종양이 어디에서 먼저 발생한 것인지 또 그 진행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최종 판단이 어려운 데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올 말 한 마디에 내 앞으로의 운명은 달려 있었다. 그야말로 죽음이냐 삶이냐가 내가 아니고 다른 타자(他者)의 손에 달려 있었다.

완벽하게.나는 그때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도하고 싶었다. 그때까지 나는 오랜 동안 불법(佛法)을 공부하던 불자였으므로 불보살(佛菩薩)께 기도하여야 마땅하였으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이, 내가 간절히 떠올리던 모든 구절들이 한결같이 생사(生死)를 초월하라는 기별이었는데 나는 한사코 그럴 수 없는, 아니 정확히 그 반대편 끝에 서 있는 하나의 벌레 같은, 죽음 앞에서 떨고 있는 불쌍하고 불쌍한 가장 작고 낮은 존재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나같이 철저하게 무력(無力)한 한 인간(人間)이 그 높고도 어려운 초월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 그 자체이었다. 나는 다만 매달리고 싶은, 목숨을 구걸하는 한 존재였다. 그러나 매달릴 곳이 없었다.

드디어 최종결과가 나왔는데, 혹시나 양쪽의 종양이 동시에 발생한 것이라서 초기일지도 모른다는 그 하나의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직장에서 난소로 전이된 것으로 결정이 내려졌다.사십 일만에 나는 내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제는 죽을 사람이 되어서, 그전의 내가 아닌, 이 세상에서 곧 쫓겨나기로 예약된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말하는 암 환자가 되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내 옆에는 여전히 내 사랑하는 아들아이와 딸아이가 있는데, 그대로 내 옆에 있는데, 내 집도 내가 살림 살던 그 모습 그대로, 내가 그리던 그림들도 다 그대로 있었다. 아이들은 참으로 귀하고 사랑스러웠으며 집안의 가재 도구들은 차라리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든 것은 다 ‘잘’ 있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이 내 아이들과 이 내 집에서, 아, 나도 이들과 같이 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랬다. 참으로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그 속에서 빠져 나와 있었다. 나는 그 대열에서 빠진 존재가 되었다. 호수공원으로 몰려가는 사람들,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남자, 여자, 아이, 어른, 노인, 강아지. 모두 다 있었다. 늘 있던 그대로. 그런데 나는 이제 아니게 되었다. 아니라고 한다. 나는 아니라고. 나는 울지 못했다. ‘아 -------’ 하는 긴 신음을 가끔 토해 낼 뿐 나는 울지 못했다. 운다는 것은 이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기에 나는 울지 않았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아이들을 두고, 아이들이 이렇게 있는데, 어떻게 내가 엄마인 내가 어떻게 그 옆에서 없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결코, 허락할 수 없었다.기도하고 싶었다. 내 아이들 옆에 나를 있게 해 달라고. 어디를 향해 기도하여야 할지 나는 그 기도할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간절함으로 기도하였다. 어디를 향할지 알 수 없으나 다만 간절함으로.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생각이 찾아왔다. ‘나는 하나의 생명이 아닌가.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 모든 사람들, 그 모두가 다 생명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실제로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어찌 이것이 무의미하고 무작위하게 그냥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생명이 존재하는 데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근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근원이 있을 것이다. 근원! ‘생명의 근원!’ 나는 그 근원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 근원과 연결되어 그곳으로부터 직접 힘을 받아야 나는 살 수 있다. 그러면 살 수 있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나는 살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면 살 수 있다. 반드시 살 수 있다.

나는 그때 강력한 어떤 확증 같은 것을 갖게 되었는데 정말로 그때 생명의 근원인 그 구심점과 내가 직접 똑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는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생명의 근원인 그 곳을 향하여. 간절히 간절히 그야말로 간절히 기도하였다. 집안에서 운동하느라고 한 발씩 한 발씩 걸을 때도, 밥을 조금씩 조금씩 한숟갈씩 넘길 때에도, 숨 한 번 쉴 때도, 잠 속에서도 나는 기도하였다.그런데 엄마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알고, 또 전적으로 믿고 있었던 것은 내 딸아이뿐이었다.

다른 식구들은 걱정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항암치료라는 것을 받기를 원했다. 나는 특히 내 아들아이에게 실망을 줄 수 없어서 우선 잠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과연 듣고 보던 대로 그 항암치료라는 것은 끔찍하였다. 그 치료를 받으면서 곧 그것은 나를 살게 하는 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주사를 일주일 맞는 동안 얼굴은 순식간에 새카맣게 얼룩강아지가 되었고 손발까지 새카매지고 입속과 콧속, 눈가까지 다 헐어서 물 한 모금 넘기는 일도 힘들게 되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서 집안에서도 한 발짝 걷기도 힘이 들었다. 나는 머지않아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아이와 딸아이가 양쪽에서 부축하여 거실에서 걸으려는데 다리가 꺾여 주저앉았다. 무서운 절망이 찾아 왔다.

오색에서 시작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출발’  

그랬다. 나는 기도와 이 세상의 치료를 병행하였던 것이다. 기도만으로는 자신이 온전히 없었기 때문에. 깨어있는 낮 시간 동안에는 기도하면서 그야말로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으나 밤에 잠잘 때 갑자기 깨어나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죽음이었다. 그 두려움까지 쫓아낼 힘은 내게 없었다. 말 그대로 그렇게 고독한 사투를 하고 있을 즈음 미국에 사는 사촌언니가 내가 아픈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언니가 이상구 박사의 뉴스타트를 권하였다. ‘이상구 박사가 나를 살려준대?’ 나는 힘없이 웃었다. 그 언니는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내 친정 식구를 통해 뉴스타트 잡지와 강의 테잎을 보내주었으며 참가비까지 인편에 보내주었다. 나는 그 언니가 하도 고마와서 뉴스타트 잡지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대 여섯 권 되었는데 몇 번씩 행간까지 읽어보았다. 그때 여러분들이 쓰신 수기를 참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보고 나는 드디어 ‘오색’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 나도 이 글을 열심히 쓰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나처럼 그곳에 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나는 그곳에 갈 때 버스를 탈 체력도 되지 못해(항암치료를 두 달째 받았으므로) 비행기로 갔었다. 첫 강의를 들으러 강당에 들어서니 우선 ‘생명을 위하여’라고 쓴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생명을 위하여’ 그 여섯 글자를 조용히 바라보는데 마음 속에 벌써 큰 위로와 신뢰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상구 박사님이 “환영합니다. 여러분.” 하시는데 그 첫 일성에서 나는 살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아, 나는 살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날인가 이박사님이 강의 중에 슬라이드를 보여주셨는데 방울뱀과 다람쥐의 사진이었다. 1999년 10월 9일자 Science News 표지 (첨단의학정보 참고)방울뱀에 물렸던 다람쥐가 죽지 않고 살아 더구나 도리어 그 방울뱀을 물려고 쫓아가서 그 방울뱀이 오히려 도망치는 사진이었다. 다람쥐의 똥그랗게 뜬 그 불켜진 것 같은 눈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 다람쥐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필연적인 이유가. 그 다람쥐는 며칠 전에 새끼를 낳은 ‘엄마’였다. 아.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니 온몸에 감사함으로 소름 같은 것이 돋음을 느낀다. 그것은 나를 위한 사진이었다. 바로 나를 위한. 그 엄마는, 그 엄마 다람쥐는 바로 나였다. 나였다. 아이들 옆에서 한사코 떠날 수 없는, 그야말로 죽어도 떠날 수 없는, 죽을 수 없는 엄마. 바로 나였다.

나는 박사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진 한 장으로 완전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래 살려주시는구나, 정말로 살려주시는구나,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생명은 살게 하시는구나. 어떠한 경우에도. ’이제 나는 되었다. 구원되었다. 나는 살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그 순간부터 나는 확실하게 살 수 있다는 그 확신으로 모든 강의에 임하였으며 쑥스러웠던 율동과 노래를 따라했으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온전히 다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내 마음은 환해졌으며 어린아이 같이 되었다. 집에서는 아파트 발코니도 어지러워서 못나가던 내가 주전계곡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강의 시간은 진지했으며 식사시간과 오락시간은 참으로 즐겁고 화목하였다. 딸아이와 나는 둘이서 꼭 붙어 다녔는데 내가 더 어린아이 같이 천진하게 굴었으며 우리 딸아이는 그런 엄마를 보며 마냥 행복해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진을 보았는데 새끼 거북이들 사진이었다. 알에서 갓 깨어 구덩이에서 막 나온 새끼 거북이들이 그야말로 아무 인솔자도 없는 그 바닷가 모래밭에서 하나같이 맹렬한 기세로 바다를 향해 기어가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 참으로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이었는지 …  나는 요즘 하얗고 푸른 달밤에 그 모래밭을 기어가는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새끼 거북이들의 행렬을 내 캔버스에 그림으로 그려놓고 매일 보면서 지낸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도 않은 그 길을,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한결같이 ‘생명(生命)의 길’을 가고 있는 그 생명(生命)들! 그것은 하나의 경이였으며 정말 생명(生命)에는 이유가 있으며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무의미가 아니며 오히려 너무나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의미의 세계라는 것을 나는 그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절감하였다.

나는 그렇게 하여 그곳에서 참으로 내가 찾던 그 생명(生命)의 근원이 계시다는 것을, 그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의 창조주며 우리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주인 있는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을, 눈물로, 눈물로 알게 되었다. 나는 고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무의미하게 내던져진 휴지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참으로 알게 되었다. 인생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으며 맹목이 아니었으며, 축복받은, 하나 하나마다 모두 똑같이, 그러면서 개별적으로 축복받은 모두 다 똑같이 소중한, 하나님의, 창조주의 피조물이었다는 것을 나는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自然)이 아니었으며 섭리였고 사랑이었으며 하나님의 법(法)이었다.  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는 그 섭리 안에 있는 하나였으며 그 법(法)안에 들어있는 하나였으며 축복받은 하나이었다. 더 이상 밖에 있는 자(者)가 아니었으며 안에 있는, 그분의 안에 있는 그분의 사랑하는 하나이었다.

며칠쯤 되었을 저녁, 강의가 끝나고 박사님께서 기도하셨다. 그리고 찬송. 나는 그 저녁, 기도하실 때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여 ‘좋으신 하나님’을 부를 때는 목이 메어 전혀 따라할 수가 없더니 울음이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찬양소리에 섞이어 나는 드디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는데 찬미가 끝날 무렵부터는 정말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왜 몰랐을까, 왜 몰랐을까. 왜 이런 걸 몰랐을까. 왜 모르고 그토록 외로워 하였을까.” 나는 정말 오래오래 마음놓고 울었다. 하나님은 나를 꼭 안아주셨다. 나는 그 품안에 안기어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랬다. 나는 그렇게 하여 다시 태어났다. 하나님 안에서. 다시는 외롭지 않을 사람으로, 다시는 아프지 않을 사람으로, 다시는 죽지 않을 사람으로.

오색에 갔다와서 나는 모든 것이 내가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생명의 근원이 있을 것이라는 그 강력한 생각을 내 안에 넣어주신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리고 그후의 모든 일들. 옆의 사람 다 놔두고 미국에 있는 사촌언니를 통해서까지 나를 오색에 가게 하신 일,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 그리고 그후에 지금까지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변화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그분의 역사이심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나는 이제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무엇을 걱정하랴. 나를 죽음에서 살려 내신 분이 계신데 무엇을 더 내가 걱정한단 말인가. 모든 것은 그분께서 다 하실 것이며 나는 다만 맡기면 되는 것임을, 온전히, 온전히 다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임을.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힘들고 어려웠던 일이 모두 다 내가 나 혼자서 나를 감당하려 했었기 때문임을 이제 알게 되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그분께 맡기고 나는 그분만 바라보고 따라가니 마음에는 평안과 감사가 있을 뿐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을. 병을 통해서 참생명을 만나게 해주시는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며, 어떠한 시련이라도 피할 길을 예비하신다는 그 말씀을 온전히 믿으며 담대하게 나아가 넉넉히 이기는 사람으로 살게 해주십사 늘 기도할 뿐이다. 이제는 내가 내 주인 아니요, 헛된 나는 매일 죽고 내 안에 주님께서만 사시는 매일매일이 되도록 기도할 뿐이다. 이제 나는 내 몸의 병을 고쳐주신, 이 세상의 죽음에서 구해주신 그 일을 감사하는 것을 넘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마음의 병을 고쳐주신 그분께, 이 세상의 죽음이 아닌 영원한 죽음에서 구해주신 그분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살고 있다.   

이진숙03.jpg놀랍고도 놀라운 이야기 ‘사망에서 생명(生命)으로’  아, 이제 나는 다시금 조용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렇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내가 ‘사망에서 생명(生命)으로 옮기어 진’ 이야기이다. 내가 한 것이 아니고 그분께서 하신 놀랍고도 놀라운 이야기이다.

나는 2001년 7月에 오색에 다녀온 이래로 지금까지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봉사자로 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암환자들은 5년을 두고 보아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5년 이상 살아 있어야 완치되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초월하였다. 원래 숫자나 통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데다가 나는 아예 내가 내 생애에서 얻을 수 있기를 포기하였던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이며, 인간(人間)은 무엇이며, 생명(生命)은 무엇이며 이 세계(世界)는 무엇인지 그것들만이 관심사였고 그 중에 어느 하나도 답을 얻을 수 없어 그야말로 치명적인 절망 속에서 반생(半生)을 살았던, 가사(假死)상태에서 연명하였던 내가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다 얻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초월하고 싶었던 생사(生死)를, 그러나 불가능하였던 그 절대명제를 안고 바로 죽음 직전까지 끌려간 나를 그렇게 강력하게 일시에 돌려세워 주신 그 분, 하나님 안에서 나는 진정으로 기쁜 초월을 얻어내었다. 그 초월은 사랑이었으며 영원한 생명(生命)이었다.

이 기쁜 이야기를 다 하자면 내 평생 끝날까지 하여도 다 못할 것이기에 여기서 부득불 줄여야 하겠다. 나는 이제 이렇게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그분의 용서와 사랑을 배우고 배워 이 세상의 삶 속에서 그 일상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을 구현하며 살아야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감사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이상구 박사님과 유제명 박사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그곳에 계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하며 그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린다. 이제 내 앞에는 끝없는 초월의 노정이 펼쳐져 있다. 나는 그 길을 한없는 감사와 순종으로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