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28절)”
저는 이 성경구절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 구절을 음미하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됩니다.
제가 루푸스 진단 받은 지도 이제15년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전 아주 건강하게 기쁘게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저는 91년도에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병원에서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4년을 근무했습니다.
잦은 밤 근무와 일의 스트레스로 저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느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몸에 이상반응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주증상이 뼈 마디 마디가 아프기 시작했고 부딪히지 않았는데 신체 군데군데에 멍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얼굴 주위에 홍반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짓물이 나기 시작했고 가려움 증세까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단지 피부병인줄(그 당시 피부과 진단명: 접촉성 피부염 지루성 피부염) 알고 피부과에 다니면서 치료를 시작했는데 낫질 않고 증세가 더욱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근무하는 도중에 기절을 해서 응급실로 갔더니 내과 선생님께서 루프스인 것 같다고 정밀 검사를 위해 서울 성모 가톨릭 병원을 추천해주셨습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단순한 피부병이야 이 피부병만 나으면 다른 치료 받을 필요가 없어’ 하면서 정밀 검사를 받지 않고 나름대로의 민간요법을 찾아서 치료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냐 하면 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병원에서 완치를 해서 퇴원해서 가는 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병원치료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남편과 1995년 5월 5일에 결혼을 했습니다.
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저를 낫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시누이께서 부산 동래 교회 황 집사님을 소개해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이상구 박사님의 뉴스타트를 소개해주시면서 본인도 있던 질병이 싹 나았다고 광릉 수목원에 이상구 박사님께서 오시니 가서 배워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따리를 싸서 부산에서 광릉수목원에 가는데 어찌 그리도 먼지..‘그래도 나을려면 가야돼’하면서 도착했더니..
오신다던 이상구 박사님은 오시지 않고 다니엘서 공부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천주교신자였는데 천주교에 관한 이상한 말 만 하셔서 꼭 이방인 같았습니다.
비교인이 10명 정도 있었는데 거의 다 떠나고 저를 포한해서 2~3명 정도 남아서 10일 프로그램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저는 성경말씀을 제외한 모든 식이요법과 수치료, 생활습관에 관한 내용을 꼼꼼히 적어서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돌아와서 이상구 박사님의 강의를 듣지 못해 아쉬워 황집사님께 부탁을 드려 비디오 테입 10개를 빌려 남편과 함께 뉴스타트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 듣고 나니 ‘아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어 이렇게 하면 모든 질병이 다 낫겠네.. ”
남편과 전 뉴스타트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제외한 채...
그때 수목원에 다녀온 후 저의 건강상태가 조금 좋아졌습니다.
얼굴의 진물이 조금씩 가라앉았지만 뼈아픔과 자반증은 그대로였습니다.
남편은 바닷바람과 산바람이 교차하는 곳이 환자한테 좋다며 삼천포로 발령을 받아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건강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자 임신을 했는데 그때부터 몸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낭창이 생기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문둥병에 걸렸다고 피해 다녔습니다.
심지어 얼굴의 형체는 고사하고 뼈마디가 쑤시고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으며 혈관이 지나가는 곳곳마다 송곳으로 찌르는 느낌이 들때 마다(그때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기절을 했었습니다.(2시간마다 1번씩)
그때 소원은 폭신한 베개를 베고 편안하게 잠자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저의 몸 상태가 나무나 심했기 때문에 아이를 유산시키고 산모 치료부터 해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저의 상태로 봐서는 입원을 해도 치료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거절을 당한거지요.
저와 남편은 테입으로 들은 이상구 박사님의 말씀만 의지한 채 요양원을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때 삼천포 한빛교회에서 받은 도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씩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이제 못 가질지도 모르는데 내가 죽더라도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매일 하니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저는 죽어도 좋으니 아이만큼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남편은 무신론자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내 아내 살려 달라고...’
고생 끝에 큰 아이가 태어난 던 날 저는 너무 기뻐서 보고 또 보고.. 손가락, 발가락이 5개인지 눈 코 입은 제대로 있는지..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큰아이를 하나님께 제일 먼저 봉헌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에 전 침례를 받았습니다.
분만 후 나의 질병이 다 나을 줄 알았는데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예전에 추천받은 성모 가톨릭병원 류마티스 내과 김호균(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당시 권위자라고 하더군요)박사님을 찾아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진단명은 루프스였습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로 내가 그 못된 병에 걸렸더라구요.
처방은 간단했습니다.
첫째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히 쉴 것.
둘째 처방한 스테로이드제를 증상이 좋을 때가지 복용해야 할 것.
저는 한달 분의 스테로이드제 약봉지를 들고 고민했습니다.
정말 약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는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고 밤에도 편안히 잘 잘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스테로이드의 엄청난 부작용을 알고 있었고 이상구 박사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약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와의 싸움이 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병이 악화 되지 않았지만 조금 씩 조금씩 (병아리 눈물만큼?)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일상생활만 가능했습니다.
남편과 친정어머니의 도움이 없이는 무리한 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가정이 행복할 리가 없었겠지요. 그래도 약은 먹지 않았습니다.
저의 의지력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까지 그렇게 해 왔구요..
그리고 분당으로 1999년에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2007년 11월 뉴스타트 교회에서 최차순 집사님의 전도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동안 참석하면서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던지..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 모든 짐을 예수님께 맡기면 된다는 사실을,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때부터 전 알았습니다.
제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것을, 제 병이 다 나았다는 것을...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 어디 아팠냐고 그러더군요
뉴스타트를 안 것은 15년 전이었는데 진짜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된 것은 3년 전이였습니다.
정말 오래 걸린 것 같아요.
그래도 죄 많고 우매한 이 딸을 붙잡고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희 가정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셔서 사랑하는 남편을 당신의 아들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때까지의 고난과 시련이 저에게는 큰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소원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그 길을 순종하면서 나의 소중한 친구 친척 모든 분들에게 참 하나님을 소개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많은 영혼들을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회복하셔서 기뻐하실 때 하늘에서 기뻐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고 어떤 분은 다른 길을 선택하셔서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을 떠 올립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이렇게 인도하기까지 많은 분들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예전의 저와 같은 처지에 계신 분들께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와서 뉴스타트가 뭔지 보시기 바랍니다. 이 초청을 거절하지 마시고 와서 꼭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