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이상구박사 뉴스타트 센타에서 진행하는 제114기 정규프로그램에 봉사자로 망상그랜드호텔에 와 있다. 망상그랜드호텔 5층, 강의실에서 끝없이 밀려와 해변에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푸른 파도를 바라보며 지난 일을 회고해 본다.
2005년 9월에 간암선고를 받았다. 그때 난 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초음파 모니터를 보던 검사자가 간에 무엇이 보인다며 자료를 들고 담당의사의 사무실로 데려가는데 나의 마음은 매우 초조하였다. 의사 선생님이 악성종양이라며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게 빙빙 돌며 다리는 부들부들 떨렸다. ‘아~ 올 이 왔구나. 내가 너무 바쁘고 무리한 생활을 하면서 늘 이러한 날이 올 것 같아 염려가 되었는데, 드디어 선고를 받고 말았구나.’ 남편에게 전화할 힘도 없었다. ‘뭐라 말해야 하나?’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멍한 상태에서 집집으로 다니며 내가 맡은 학생들 방문을 마치고 늦은 밤에 귀가하여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순간 남편의 맥이 탁 풀려버린 듯 한 모습을 보면서 어찌나 미안하던지.... 넋이 나간 듯 있던 남편이 행동을 재빨리 취하기 시작했다. 삼성의료원에 진료신청을 하고 기다렸다. 10년간 몸담고 일주일에 한 번 씩 만나며 수년간 정들었던 나의 아이들과 이제 만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내 몸의 병보다 그것이 더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입원을 하고 종양제거 수술을 받았다. 암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나는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해서 푹 쉬니 몸이 서서히 회복되었다. 다시 정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었고 6개월 만에 다시 옛 직장으로 복귀했다. 학생 수를 이전의 절반 정도로만 관리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재발이 되었다.
재발이 되자 나의 충격은 첫 번 보다 훨씬 더 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서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고, 회복이 순조로워 난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재발이라니.... 난 암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었다. 현대의학의 한계를 깨닫고 나니 '이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병원만 믿고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지만 대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주파라는 시술을 해서 재발된 암을 제거했으나 3개월 후 다시 작은 암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의사는 재발이 너무 단기간에 반복된다며 간이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심각하게 말했고 남편은 간이식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난 항상 불안했고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사람 만나는 것도 싫었고 아무 것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뇌출혈로 쓰러져 계신 친정어머니, 결혼하지 않은 두 동생, 아직 어린 나의 아이들, 암의 공포 등이 나를 숨 막히게 했으나 의지할 것이 없었다. 그 어디에서도 이 깜깜한 동굴에서 내가 나가야 할 길을 안내할 빛은 비춰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이었다. “아!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에서 내게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당신만이 나를 도울 수가 있습니다. 깜깜한 동굴에서 갈 길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저에게 조그마한 빛이라도 비춰주세요.” 집에 혼자 있을 때 통곡하며 기도하면서 답답한 가슴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그야 말로 기적적으로 ‘한국생명운동본부’라는 8글자가 나의 귀에 들려왔다. 그곳을 통하여 ‘이상구박사뉴스타트센타’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까지 난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이 땅에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이상구 박사에 대해서도 이름 석자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 분이 어떤 일을 하는 지는 전혀 몰랐다. 센타에 전화를 해서는 도대체 시원스런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답답하게 집에만 있을 수가 없어서, 일단 등록을 하고 ‘나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니 일단 가 보자. 작은 정보라도 있겠지.’하면서 가방을 쌌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지상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그것도 이 작은 한국 땅에, 내 집에서 몇 시간의 거리에,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런 천국을 예비하셔서 천국의 맛을 보여주시는 군요.” 가슴이 뻥~ 뚤리면서 그 답답하던 것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이 박사의 강의는 점점 무르익어 갔고 목마른 사슴이 샘물을 마시듯 난 생명수를 마시고 또 마셨다. 감사의 눈물이 볼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쉼도, 안식도 없이 세상 줄다리기에 매달려 마치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쳐지면 죽는 것처럼 아웅다웅 치열하게 앞만 보며 달려왔던 나의 삶을. 나에게 왜 이런 병이 찾아오게 되었는지 너무나 뚜렷이 알게 되었고 병의 치유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이 박사는 진지하고도 은혜롭게, 뼈 속까지 깨달을 수 있게 생명수를 마시게 했다. 행복과 감사의 눈물 속에서 아쉬운 시간은 더욱 빨리 지나갔다. 마지막 날 아침 일찍 눈을 떠서 복도 쇼파에 혼자 앉아 여명으로 희미한 창 밖 산야를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겼다. “오~ 아버지,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셔서 영과 육의 양식을 먹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저도 건강이 회복되어 값도 없이 주신 이 은혜를 조금이나마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게 저의 삶을 인도해 주세요.”
이렇게 8박9일의 정규프로그램 기간이 다 지났고 강의 테이프를 소중히 챙겨서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전 것은 지나고 새 것이 되었도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망의 세력을 몰아내려고 강의 테이프를 친구삼아 늘 곁에 두고 들으면서 뉴스타트 8개 항목을 꾸준히 실천해 가면서 건강을 위한 인프라(Infra)를 튼튼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새 기별을 주신 이상구 박사의 하나님이 만나고 싶어 재림교회에 노크를 했다. 이곳에 내가 몰랐던 무엇인가 있는 것이기에... 그랬더니 문이 계속, 계속 열리기 시작했다.
정규프로그램에서 아주 귀하게 만난 김금숙 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이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구석구석을 찾아가 보았다. 김 봉사자는 나와 같은 경험을 10년 이상이나 먼저 겪고 나와 같이 회복한 뉴스타트 대선배이다. 경남 하동의 벧엘수양원, 강원 원주의 재림연수원, 여러 말씀집회들, 재림성도들의 가정, 시골생활 하시는 장로님
몸과 마음의 난치병으로 희망을 잃고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많은 귀중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도와주는 이 뉴스타트센타는 나의 제 2의 고향이다. 저 푸른 바다로 힘차게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에 다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아버지, 저 지금까지 잘해 왔지요? 앞으로도 이 마음 변치 않고 하나님 뵈올 때 까지 저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며 아버지의 귀한 도구로 사용해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