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에는 추억의 흔적이 깊다
쓸쓸해 보이는 노인, 그는 일주일에 두 번 깨끗하게 옷을 차려입고 그곳에 왔었다. 그러나 그는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지 그곳에 모인 노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눈에는 어울리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평소에 입지 않던 옷을 입고 온 것이 그 증거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가 싶어서인지 홀로 나와 담배를 태운다. 그의 눈은 왁자지껄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
간혹 우리는 잊는다. 청춘의 시절을 겪은 이들만이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마치 그들에게는 청춘의 추억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아니면 그 추억을 떠올려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들의 꿈, 그것은 어쩌면 청년의 꿈보다 더 절실한 꿈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꿈을 꾼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며 웃는다.
먼 곳을 응시하는 노인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기라도 하는듯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노인이 되면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온갖 풍파를 다 겪은 뒤라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고 자신의 한계도 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은 꿈을 꾼다. 그 꿈이 있어 그들은 습관처럼 '이제 죽어야지'하면서도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의 몸은 작았다. 그 작은 몸으로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악다구니를 써야 자신을 지켰을 것만 같은 작은 체구를 가진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는 늘 만나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셨다. 사진 속의 얼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옛 추억
요즘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 되어버렸다.
젊은이들이 다 떠나버린 남도의 농촌, 그곳을 지키고 있는 분들은 노인들이다.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면 농촌을 누가 지킬 것이며, 조상 대대로 눈과 손으로 익혀왔던 땅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어떻게 전수받을까?
나는 잊지 못한다. 어느 겨울 남도의 시골마을을 걸어갈 때에 양지바른 벽에 기대어 서서 해벌죽 웃으며 인사하던 젊은이를. 시골에 가면 어렵지 않게 그런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 그들에게는 좋은 환경이겠지만, 젊은이들의 그림자를 겨우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절망스러웠다.
앞날에 대한 걱정들
기름유출사고가 났던 태안반도의 한 포구에서 담았던 것이다.
그들은 시커멓게 기름이 떠있는 포구를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태안 앞바다를 습격한 검은 기름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그들의 삶을 어떻게 송두리째 빼앗아갈지 그때도 그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런 일이 천형인듯 자신들을 자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남의 아픔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다가도 절실하게 내 아픔으로 느낄 때가 있다. 인간의 두 가지 얼굴 중에서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떤 때는 응당 함께 아파해주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할 뿐 아니라 그들을 향해 비수를 꽂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누구도 이런 양면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합리화라는 병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사진첩에서 아주 오래된 흑백사진을 보면 그 작은 사진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추억에 놀라게 된다. 그럴 줄 알았으면 사진을 좀 더 남길 걸 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디지털시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진도 오래된 사진처럼 바꿔놓으니 그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더 많은 이야기들이 사진 속에 들어있다. 신기한 일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오래된 사진에는 추억의 흔적이 깊다'는 사실을 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