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트센터 봉사를 마치고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동안 단절 됐던 세상 소식이 눈이 가장 잘 닿는 곳에 위치한 TV를 통해 쏟아집니다. 알고 싶지도 않은데 세상은 들으라 강요합니다.
설악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부터 멀어질수록 어지러운 인공구조물들로 바뀌어 가는 버스 창 너머 마음의 풍경도 바뀌어 갑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마음 하나 갖고갑니다.
무슨일을 대하든 어디에 있든 선한가 진실한가 아름다운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돼지우리를 전전하다 돌아온 탕자는 더 이상 더러운 그 곳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프고 난 후 본능인 것 처럼 싫어하게 된 것이 인간적인 자랑을 늘어 놓는 것입니다. 제가 추구하던 것이었기에.
암이란 판정을 내리는 의사 앞에서 모든 것을 바꿔야만 산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든 후 이런 것들이 너무도 싫어졌습니다. 교회 또는 세상에서 저들이 주는 어떤 지위도 살면서 더 큰 돈을 벌기위한 어떤 계획도 원하지 않습니다.
땅 얘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저를 만날 때마다 그런 얘기를 꺼내기에 이제 내 앞에서 더 이상 그런 얘기는 하지말라고 했지요. 교회, 동창 또는 여러모임에서 저들이 쏟아내는 한결같은 세상 자랑들이 내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전같은 인간관계를 갖기가 힘들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말만 그런 사랑만 하고 싶습니다.
가지고 간 재물을 다 탕진하기 전까진 결코 돌아오지 않을 자식이란걸 알면서도 아버지는 오늘도 멀리서 기다립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뭔가를 주고 싶어서 오후 다섯시에도 일꾼을 찾으시는 하나님, 죄인을 위해 죄가 없는 분이 죽는 이 말안되는 상황.
아, 하나님은 바보, 새벽 뉴스타트센터를 떠나며 하늘을 향해 외쳤습니다.
'바보 하나님!''
''저도 바보가 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