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아니하고....
아니였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게 아니라 가만 있어도 그 분 안에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보면 무언가 하려 애쓰며 살았습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 예배 참석하려 헌금드리려 ....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으면, 보내신 이의 생명이 내 안에 있으면 그냥 자라나는 것을.
생명이 없었기에 허전했고 채우려했고 시기했고 욕심을 부렸던거였습니다.
왜 몰랐을까, 수없이 읽고 배웠고 들었건만.
좁은길, 그래서 좁다고 한 것이었군요.
걷고있다 해서 모두가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을.
우린 그 분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모르겠습니다. 그 분을 내안에 초청하는 방법을.
사영리 책자를 따라 고백하면 그 분이 내 안에 있는걸까요.
문득 내게로 옵니다.
다메섹을 향하던 바울에게,
고기잡던 베드로에게,
길가에서 소리치는 바디메오에게,
하염없이 기다리는 베데스다 연못 그 병자에게,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 누군가에게.
어느날 문득 그 분이 계심을 느꼈습니다. 단지 그 것 뿐.
그 때 마치 맹인이 눈을 뜨는 것처럼 귀머거리 귀가 열리 듯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자연은 자연에게 말하고 손짓하고 웃고 찬양하고 있었던 것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는데, 단지 그 분이 계신 것이 믿어지던 것 뿐.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있다면 그 분처럼 사는 것,
그 것 조차도 무엇을 하는게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살게 하시는 것일뿐. 그래서 난 무익한 자인가 봅니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인가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정죄함이 없나봅니다.
그게 가난한 마음인가 봅니다.
그래서 은혜라 부르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