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 대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배경에는 그 당시 율법을 지키느라고 무거운 짐에 눌려있는 사람들의 고난이 있었다. 사실 그 당시 각종 종교적인 규례를 지키게 하는 것은 지도자들이 교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안식일 법과 성전 규례, 제사법 등은 예루살렘 성전을 유지하고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를 지켜주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율법의 지킴의 기준은 보여지는 행위의 결과로 기준을 삼았기에 그래서 율법사나 바리새인들은 행동을 항상 살피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율법을 행동으로 아무리 완벽하게 지켜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교만과 죄의 가득함이 있었고 그래서 주님은 당시의 지도자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다, ‘독사의 자식들’이다고 꾸짖었다. 성전을 방문하셨을 때에는 채찍으로 상을 엎으시며 이곳은 강도의 소굴이 아니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고 화를 내셨고 특별히 교만함에 대해 노하셨다. 행함과 그속의 마음의 본질이 다른 위선자. 외식하는자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시대의 언약궤를 연구해보면 그 언약궤가 그리스도의 모형임을 알게 된다. 놀라운것은 인간의 반역을 상징하는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 만나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언약궤 속으로 보관하게 하고 언약궤의 위에 공의와 심판을 상징하는 두 천사가 바라보며 날개를 펴고 있고 그 언약궤의 위에 피를 뿌려지게 하였다. 즉 은혜의 피가 언약궤 위에 있고 율법은 그 언약궤 안에 위치한다. 묵상을 통해 확신한것은 율법은 완전한것이다. 율법자체가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을 페하려 왔느냐? 완성하러 오셨다 하신다. 그런데 율법은 폐하여 졌다고 사도바울은 설명한다. 이게 무슨말인지?
언약궤안에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을 넣은 의미가 무엇일까?
번쩍 마음에 주시는 성령의 깨달음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과 계명을 새겨 주셨지만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백성들의 우상제작과 죄를 보며 분노하여 돌판을 던져 깨뜨렸고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십계명을 만들라 하시지만 이번엔 돌판은 모세가 직접 만들게 하시고 그 속의 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다.
아하!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게 하심은 모세자신이 유대인이며 죄인의 노력으로 만든 돌. 성경에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것인데 처음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것은 깨지고 둘째것은 인간이 만든다.
그것을 율법의 주인이신 산돌 예수를 죄악에 가득찬 이세상에 던져져 버려졌고 사람은 그들의 의지대로 십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둘째 돌판을 하나님께서는 언약궤 속으로 넣게하시고 보지 않으시겠다는것으로 의미함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가 실체인 이 언약궤의 언약의 핵심은 위에 뿌려지는 피. 공의의 하나님은 이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를 보시고 더이상 인간의 죄를 보지 않으시는 놀라운 은혜의 구속의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분으로 인해 십자가에서 달리신 그 보혈로 인간의 반역을 다 끌어안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완벽하게 (죄의 삮은 사망이라는 공의의 진리를 이루심)이루시면서 구원하셨다.
그러면 율법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이 문제를 알아야한다. 성경은 예수께서 모세의 십계명을 지킴에 대해서 마음의 죄까지 지적하셨기에 십계명을 우리가 지킬수 없는것으로 알려주신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은 다 하실수 있다고 하신다. 이 말씀을 우리가 믿으면 이 계명을 지킬수있게 해주신다고 받아드려서 계명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이 무거우지고 죄를 스스로 깨달을 수 밖에 없게 된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지속적으로 율법은 폐하여 졌다.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럼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말은 무엇일까? 구약의 언약궤와 실체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율법에 대하여 말씀하심 그리고 초대교회의 가르침들을 살피고 묵상해보면
인간의 위선으로 노력해서 지키던 십계명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이 보지않으시는 폐하여짐이 분명하다. 그래서 새 계명으로 사랑을 가르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것과 인간을 사랑하는것을 계명을 지키는 근본이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닌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의 에너지, 살리시는 영은 바로 사랑인 것이다.
참 사랑이 인간의 마음속에 거하면 진정한 율법의 행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겨도 육체는 죄를 좇는다는 사도바울의 고뇌는 그가 이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는 성령을 선물로 받은자라도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죄의 육체를 가지는 동안 항상 갈등이 올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로 구원을 얻고 칭의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았어도 자신이 살아가면서 고뇌하는 죄의 문제는 완전히 극복할수 없는것을 인정해야하는것이다. 그래서 성화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는 것이 성화인데 이 성화가 완벽해져야 성령이 오시는게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죄 앞에서 더 이상 위선자가 아닌 죄인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칭의로 더이상 죄아래에 있지 않은 자신의 신분을 확신하여 죄에 눌리기 보단 죄에 해방된 하나님의 자녀로 매일매일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야 하는것이다. 이것이 성화의 삶인것이다.
율법은 행하는 것이아니라 죄를 알게해서 우리자신이 낮아지도록 이끄는 지도교사인것이다. 그러면 율법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할수 없는것이다. 우리의 죄는 오직 은혜로 죄값을 치루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만이 가능한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는자로 성령에 이끌려 삶을 사는것이 율법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인것이 아닐까?
로마서(롬) 10장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者)에게 의(義)를 이루기 위(爲)하여 율법(律法)의 마침이 되시니라
4. Christ is the end of the law so that there may be righteousness for everyone who belie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