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눈이 오름을 오르다 가을 산행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눈길 주지 않는 작은 오름으로 발길을 돌렸다.
능선엔 젊은 두 여성이 억새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산은 온통 억새꽃이다.
산꼭대기에 오르니 멀리 억새꽃을 흔들며 정상의 주인이 달려온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길 끝엔 무덤이 있다. 사람 발길 뜸한 그 곳에도 민둥 무덤이 누워 있다.
죽은 자 위에 누웠다. 억새꽃 같은 구름 무심히 지난다.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눈을 감았다.
가을은 모든 것을 놓고 가라 한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이기적인데, 그 것을 벗어나는데는 우주선의 몸부림 같은 힘이 필요하다. 예수도 죽음 앞에서 ''하나님이여, 왜 나를 버리시 나이까'' 물었지 않은가.
일어섰다.
왠지 가볍다
용눈이 오름 정상을 밟진 못하였지만 그 어떤 높은 정상에 오른 것 보다 기분이 좋았다.
죽은 자 에서 산 자 되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