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 누렇게 든 뽕나무 가지를 손으로 한 줌 쑤욱 훑어 물에 대충 행구고 주전자에 달이고 나면 노랑 물감 같은 구수하고도 색깔이 고운 차 한 잔이 그윽합니다.
무언가 끓여 요리할 때에도 이 물을 씁니다.
뽕나무는 조천 정찬익 선생님이 삼년 전 봄순이나 따 밥지어 먹으라고 주신 것인데 지금은 제 키의 두곱이나 자랐습니다. 나무를 볼 때 마다 정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120세까지 살고야 말겠다시는데 꼭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긍정적이요 팔십 넘으셨는데도 힘이 장사라
집에 가끔 들러보면 닭이며 뽕이며 온갖 채소며 심지 않은게 없답니다.
작년인가 잡아 먹으라고 준 숫닭을 불쌍해서 차마 잡지를 못하고 허술하게 지은 닭장에 가뒀더니 도망가 버리기도 했었지만.
아내를 암으로 보내며 뉴스타트를 배우고 이박사님 바라기로 사시고 계시지요.
수돗가엔 미나리 밭 위로 작은 벌새가 미동도 없이 공중에서 날개짓을 하고 있습니다. 수억 광년 너머의 우주가 아름다운들 이같을까
아름다움이란 모르는 것들 속에 있습니다.
눈물 속에 아픔 속에 기다림 속에
쉼이란게 수고로움이 있어야 그 것이 주는 기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듯
암을 앓고 나서야 건강한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나는 봄이 좋습니다. 이제 한참을 기다려야지 봄은 오겠지만 마음엔 저장해 둔 것들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아끼며 쓰다보면 우리 마을 앞에 펼쳐진 태평양 같은 푸른 봄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밀물처럼 밀려 오겠지요.
이 봄은 끝없이 서울과 저 북으로 밀려 올라가겠지요
바다건너 먼 곳, 제주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 이어도 그리고 우리 동네 냄세가 배어있는 걸 육지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엔 내 마음도 바람부는 날 공중에 띄워보렵니다.
밤열차를 타고 서울을 향하는 꿈을 꾸던 소년은 노인이 되어가고 가도가도 저 끝엔 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여기 이 작은 곳이 우주의 중심
모든 치유는 내 안에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