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유전자에 달려 있다?
GEOFFREY COWLEY 기자
2002-11-14
순탄한 운명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사는 재클린 개버건(36)은 행복과 거리가 먼지도 모른다. 지난해 9월 11일 아침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THE SCIENCE OF HAPPINESS
순탄한 운명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사는 재클린 개버건(36)은 행복과 거리가 먼지도 모른다. 지난해 9월 11일 아침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그녀에게는 다정다감한 남편과 언어치료사라는 만족스런 직업이 있었다. 두 아이도 잘 자라줬고 몇주 후면 셋째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9·11 테러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세계무역센터에서 채권중개인으로 근무하던 남편 도널드는 수백만t의 건물 잔해 속에 묻혀버렸다.
그녀는 아직 슬픔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그녀는 삶의 의미와 얼마간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녀의 노력은 남편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녀는 조문객들에게 남편을 추모하는 뜻을 모아 어린 생명을 구하자며 기부를 부탁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부 덕에 그녀는 올해 4월 뉴욕大 대학병원에 입원한 코소보 출신 어린이의 심장수술비를 후원할 수 있었다. 그 아이의 심장병을 낫게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개버건의 세살짜리 꼬마는 활짝 웃으며 “아빠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심리학자들은 심리적 충격과 상실감이 만성 공포·불안·죄책감·분노·절망감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병을 이해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슬픔을 이겨내는 정신력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개버건처럼 슬픔과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을 이끈 힘은 무엇인가. 정신건강은 병이 없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오랫동안 종교인과 철학자들의 고유영역이었지만 이제는 과학자들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제 ‘낙천성’·‘만족감’ 같은 단어들이 여느 때보다 자주 주요 학술지들에 등장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大 심리학자 마틴 E.P. 셀리그먼은 신저 ‘진정한 행복’(Authentic Happiness·Free Press 刊)에서 “행복감의 본질을 이해하고 정신력을 기르며 인생의 길잡이를 모색하는 데 과학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썼다.
이미 그 노력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통점에 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해왔다. 그들이 밝혀낸 한가지 사실은 기분과 기질은 유전적 요인이 크다는 것. 크게 주목받은 1996년도 연구논문에서 미네소타大 심리학자 데이비드 리켄과 오크 텔레건은 7백32쌍의 일란성쌍둥이를 조사한 결과 그들이 함께 자랐든 따로 살았든 성인이 된 후 거의 비슷한 행복도를 보여준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인간의 감정은 각자가 타고난 기본수준 혹은 ‘고정점’(Set Point)을 중심으로 상승·하락을 반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두번째 사실은 환경은 만족감과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 교회를 다니는 기혼자는 독신의 비신자보다 더 큰 행복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건강·재산·외모·신분 등은 ‘주관적인 행복감’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반신 마비환자와 복권 당첨자도 갑작스런 운명의 변화를 겪고 난 6개월 뒤에는 대부분 원래의 기본상태로 돌아간다. 극빈자들은 대개 기본욕구가 충족된 사람들보다 행복도가 낮지만, 일단 기본 욕구가 충족된 상태에서는 많은 재산도 그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지는 못한다.
예컨대 일본인은 중국인의 9배나 되는 구매력을 갖고 있지만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는 중국인보다 낮은 점수를 보인다. 호프大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미국인의 실질 소득이 1960년대 이후 배증한 반면 이혼율이 두배 늘었고 10대 자살률이 3배 늘었으며 우울증은 10배 늘었음을 지적했다. 富가 가져다주는 안락이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유전자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만 환경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면 화학물질이 만족감의 열쇠일까. 이제 제약회사 실험실에서 신경약리학자들은 긍정적인 감정을 북돋우고 불쾌한 감정을 억제하는 합성물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진정한 행복’에서 셀리그먼은 좀더 분별있는 목표와, 기술에 덜 의존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는 인지심리학과 자신의 ‘학습된 낙천성’ 이론을 바탕으로 누구나 부정적 사고를 반성하고 긍정적인 경험들을 음미하는 한편 더 많이 갖고 싶은 자연스런 욕망을 다스림으로써 각자의 범위 내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찍이 부처가 간파했듯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능력은 유한하다.
욕망을 충족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대상이 줄어들 뿐이다. 따라서 절제가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셀리그먼의 ‘진정한 행복’은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도,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감정에 대한 강박적인 걱정을 넘어서는 것이다. 즐거운 감정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것일까. 즐겁다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통적인 심리학 영역을 넘어서는 이런 질문들에 그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바로 쾌락보다 한차원 높은 ‘희열’(gratification)이다. 자신의 정신력을 계발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속적인 성취감이다. 우리의 절반은 명랑한 기질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정신력이 없거나 그것을 계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지난해 개버건이 성취한 것은 완벽에 가까운 베풂의 실현이었다. 그리고 베푸는 마음은 셀리그먼 같은 심리학자들이 나열하는 20여가지 행복의 열쇠 가운데 하나다. 개버건은 이제 매년 9월 어린이 심장 수술을 후원하려 한다. 그 베풂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With ANNE UNDERWOOD
GEOFFREY COWLEY 기자
2002-11-14
순탄한 운명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사는 재클린 개버건(36)은 행복과 거리가 먼지도 모른다. 지난해 9월 11일 아침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THE SCIENCE OF HAPPINESS
순탄한 운명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사는 재클린 개버건(36)은 행복과 거리가 먼지도 모른다. 지난해 9월 11일 아침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그녀에게는 다정다감한 남편과 언어치료사라는 만족스런 직업이 있었다. 두 아이도 잘 자라줬고 몇주 후면 셋째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9·11 테러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세계무역센터에서 채권중개인으로 근무하던 남편 도널드는 수백만t의 건물 잔해 속에 묻혀버렸다.
그녀는 아직 슬픔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그녀는 삶의 의미와 얼마간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녀의 노력은 남편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녀는 조문객들에게 남편을 추모하는 뜻을 모아 어린 생명을 구하자며 기부를 부탁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부 덕에 그녀는 올해 4월 뉴욕大 대학병원에 입원한 코소보 출신 어린이의 심장수술비를 후원할 수 있었다. 그 아이의 심장병을 낫게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개버건의 세살짜리 꼬마는 활짝 웃으며 “아빠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심리학자들은 심리적 충격과 상실감이 만성 공포·불안·죄책감·분노·절망감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병을 이해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슬픔을 이겨내는 정신력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개버건처럼 슬픔과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을 이끈 힘은 무엇인가. 정신건강은 병이 없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오랫동안 종교인과 철학자들의 고유영역이었지만 이제는 과학자들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제 ‘낙천성’·‘만족감’ 같은 단어들이 여느 때보다 자주 주요 학술지들에 등장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大 심리학자 마틴 E.P. 셀리그먼은 신저 ‘진정한 행복’(Authentic Happiness·Free Press 刊)에서 “행복감의 본질을 이해하고 정신력을 기르며 인생의 길잡이를 모색하는 데 과학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썼다.
이미 그 노력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통점에 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해왔다. 그들이 밝혀낸 한가지 사실은 기분과 기질은 유전적 요인이 크다는 것. 크게 주목받은 1996년도 연구논문에서 미네소타大 심리학자 데이비드 리켄과 오크 텔레건은 7백32쌍의 일란성쌍둥이를 조사한 결과 그들이 함께 자랐든 따로 살았든 성인이 된 후 거의 비슷한 행복도를 보여준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인간의 감정은 각자가 타고난 기본수준 혹은 ‘고정점’(Set Point)을 중심으로 상승·하락을 반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두번째 사실은 환경은 만족감과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 교회를 다니는 기혼자는 독신의 비신자보다 더 큰 행복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건강·재산·외모·신분 등은 ‘주관적인 행복감’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반신 마비환자와 복권 당첨자도 갑작스런 운명의 변화를 겪고 난 6개월 뒤에는 대부분 원래의 기본상태로 돌아간다. 극빈자들은 대개 기본욕구가 충족된 사람들보다 행복도가 낮지만, 일단 기본 욕구가 충족된 상태에서는 많은 재산도 그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지는 못한다.
예컨대 일본인은 중국인의 9배나 되는 구매력을 갖고 있지만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는 중국인보다 낮은 점수를 보인다. 호프大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미국인의 실질 소득이 1960년대 이후 배증한 반면 이혼율이 두배 늘었고 10대 자살률이 3배 늘었으며 우울증은 10배 늘었음을 지적했다. 富가 가져다주는 안락이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유전자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만 환경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면 화학물질이 만족감의 열쇠일까. 이제 제약회사 실험실에서 신경약리학자들은 긍정적인 감정을 북돋우고 불쾌한 감정을 억제하는 합성물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진정한 행복’에서 셀리그먼은 좀더 분별있는 목표와, 기술에 덜 의존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는 인지심리학과 자신의 ‘학습된 낙천성’ 이론을 바탕으로 누구나 부정적 사고를 반성하고 긍정적인 경험들을 음미하는 한편 더 많이 갖고 싶은 자연스런 욕망을 다스림으로써 각자의 범위 내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찍이 부처가 간파했듯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능력은 유한하다.
욕망을 충족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대상이 줄어들 뿐이다. 따라서 절제가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셀리그먼의 ‘진정한 행복’은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도,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감정에 대한 강박적인 걱정을 넘어서는 것이다. 즐거운 감정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것일까. 즐겁다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통적인 심리학 영역을 넘어서는 이런 질문들에 그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바로 쾌락보다 한차원 높은 ‘희열’(gratification)이다. 자신의 정신력을 계발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속적인 성취감이다. 우리의 절반은 명랑한 기질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정신력이 없거나 그것을 계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지난해 개버건이 성취한 것은 완벽에 가까운 베풂의 실현이었다. 그리고 베푸는 마음은 셀리그먼 같은 심리학자들이 나열하는 20여가지 행복의 열쇠 가운데 하나다. 개버건은 이제 매년 9월 어린이 심장 수술을 후원하려 한다. 그 베풂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With ANNE UNDERW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