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써 놓았던 글인데 이곳을 찾아오신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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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골프계의 여왕인 애니카 소렌스탐이 처음으로 남자들의 PGA 투어에 참석해서 말이 많았다. 많은 남자 선수들이 여자와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로도 수치스럽다고 했고 어떤 선수는 경기에 불참하겠다고 했다. 대부분은 보나 마나 컷오프도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몹시 좋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 몇 여자 골퍼들이 도전했었는데 남자 선수들은 언급조차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약 10여년 전 박찬호는 한국인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의 선발투수로 승승장구하며 몸값을 올려 갔다.
처음엔 마운드에 한국인이 서 본다는 것조차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잘 해내자 많은 국민들이 힘을 얻었다. 한참 경제가 엉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선전은 한국인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서 그는 자꾸만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상 때문에 예전의 솜씨를 발휘하기가 무척 힘들 것이라는 예상대로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다. 턱없이 많은 실점을 하면 거듭거듭 패전투수가 되어 가고 있지만 그는 국내 리그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 같으면 그만 하면 국내로 돌아와 대접받으면서 운동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몇 백만 달러짜리 메이저리그 선수인 그에게 귀국해서 국내 리그에서 뛰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생이 나에게 와서 자꾸만 시비를 걸고 싸우자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맞상대를 해 주어야 하나? 보통의 어른이라면 절대로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놈...’ 하고 비웃고 말겠지... 상대를 해 준다는 것은 그 사람과 수준을 맞춘다는 뜻이다. 눈높이를 맞춘다는 뜻이다. 운동경기에서 너무 랭킹이 낮은 상대와 싸우고 나면 이겨야 본전이다. 잘못해서 지는 날엔 x망신이 된다.
예수님께선 세상 임금인 사단과도 싸우려고 하지 않으신다. 이미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요14:30
한 때는 피조물 중에 최고의 존재였던 루스벨 조차 하나님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맞붙어 준다면 그건 영광이겠지... 오래 전 아주 옛날 루스벨은 영광스럽게도 하나님과 한 판 승부를 벌였었지만 예상대로 참패 했다고 한다. 그런데 창세기 32장에는 말도 안 되는 한판 승부가 나온다.
창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여기서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보게 된다. 비리가 있음에 틀림없어...
결과는 딱 한 방 맞고 환도뼈가 탈골된 야곱의 승...
야곱이 싸우던 상대는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이었다. 하나님께선 상처하나 없이 당신이 지셨다고 항복하고 가셨다. 그리고는 ‘어쭈, 네가 나를 이겼네! 제법인데...’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32:28 그게 ‘이스라엘’이라는 말의 뜻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긴 건지 잘 모르겠다
분명히 객관적인 평가에서 한 수 위, 또는 두 세수 위인 사람이 지는 것을 이변이라고 하는데 창세기의 싸움에선 이변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져 준 것이다. 져 주는 사람은 항상 이긴 사람보다 강하다. 이런 싸움을 우리는 싫어한다. 일부러 져 주는 싸움에선 이겨도 기분이 별로 안 좋다. 기분 진짜 나쁘다. 내가 정말 강해서 정정당당하게 이기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마음이다. 하나님을 이겼던 야곱은 기분이 어땠을까?
싸움에 이긴 야곱은 결코 신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32:30
그는 오히려 두려워했다. 감히 하나님과 겨룬 것에 대하여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 뒤로는 결코 하나님께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먼 훗날에도 하나님께선 이스라엘을 이렇게 부르신다. “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하나님껜 대단한 믿음의 조상 야곱도 지렁이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자주 하나님과 싸우려고 한다. 이런 거 저런 게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당신이 진짜 하나님이면 증거를 대보라고...’ ‘내 앞에 나타나면 내가 믿어주지...’ ‘당신이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이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아무리 욕하고 덤벼도 하나님은 거의 대부분 가만히 계신다. 그리고 그냥 온갖 누명을 다 뒤집어쓰신다. 하나님은 아무래도 불완전한 분인 것 같다는 둥... 흠이 있는 것을 드디어 발견했다는 둥... 하면서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도 그냥 가만히 계신다. ‘가만히 있으면 지는 건데... 요즘엔 목소리가 커야 이기는데... 말을 해 보라고... 뭔가 캥기니깐 가만히 있지... 맞아, 하나님께선 캥기는 게 많은 게야... 유구무언이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실걸...’
나는 하나님이 나와 상대해 주시는 것 감당할 수 없다. 우리랑 상대하지 않으시는 쪽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온 우주를 만드신 엄청난 분을 먼지만도 못한 인간인 우리는 상대할 수 없다. 한 뼘 밖에 안 되는 작은 머리로 창조주인 그 분에 대하여 생각한다는 것조차 무척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해야...
시103:13-15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분은 애초부터 우리가 진흙덩어리임을 잘 알고 계신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애초부터 하나님의 관심사는 그런 우리랑 말싸움해서 이기는 게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땡깡을 부려도 그분은 가만히 계신다. 그분은 그런 건 그냥 져 주신다. 아들과 장난치면서 싸우는 아빠는 항상 진다. 총싸움이든 칼싸움이든... 아빠가 이기면 아들이 화내거든... 비록 비참하게 지지만 아빠는 신나 하는 아들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아들의 기쁨, 아들의 승리가 곧 아버지의 승리이자 기쁨이다.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사는 우리 인간 아들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건강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진정한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워낼 수만 있다면 우리 눈에 흠이 많은 하나님으로 보이더라도 상관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그분은 지저분한 인간의 살덩이를 뒤집어쓰고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시면서 세상에 오셨다. 말이 먹다 남은 여물 때문에 쉰내 나는 말구유에서 말똥 소똥 염소 똥 냄새 진하게 맡으면서 태어나셨다. 도무지 학벌도 없고 내세울 만한 것이라곤 목수의 아들이라는 타이틀 밖에 없는 채로... 모든 사람들이 아주 만만하게 생각할 만큼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흠투성이를 다 뒤집어쓰고, 그리곤 지렁이 같은 인간들에게 실컷 맞고 말 없이 돌아가셨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53:2-7
“야~ 아빠가 졌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 이제 네가 이겼다. 아빠가 틀렸다. 네 말이 다 맞으니깐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나는 이제 흠 많아 보이는 하나님이 너무 좋다. 가슴 찐하게... 그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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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골프계의 여왕인 애니카 소렌스탐이 처음으로 남자들의 PGA 투어에 참석해서 말이 많았다. 많은 남자 선수들이 여자와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로도 수치스럽다고 했고 어떤 선수는 경기에 불참하겠다고 했다. 대부분은 보나 마나 컷오프도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몹시 좋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 몇 여자 골퍼들이 도전했었는데 남자 선수들은 언급조차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약 10여년 전 박찬호는 한국인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의 선발투수로 승승장구하며 몸값을 올려 갔다.
처음엔 마운드에 한국인이 서 본다는 것조차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잘 해내자 많은 국민들이 힘을 얻었다. 한참 경제가 엉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선전은 한국인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서 그는 자꾸만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상 때문에 예전의 솜씨를 발휘하기가 무척 힘들 것이라는 예상대로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다. 턱없이 많은 실점을 하면 거듭거듭 패전투수가 되어 가고 있지만 그는 국내 리그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 같으면 그만 하면 국내로 돌아와 대접받으면서 운동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몇 백만 달러짜리 메이저리그 선수인 그에게 귀국해서 국내 리그에서 뛰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생이 나에게 와서 자꾸만 시비를 걸고 싸우자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맞상대를 해 주어야 하나? 보통의 어른이라면 절대로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놈...’ 하고 비웃고 말겠지... 상대를 해 준다는 것은 그 사람과 수준을 맞춘다는 뜻이다. 눈높이를 맞춘다는 뜻이다. 운동경기에서 너무 랭킹이 낮은 상대와 싸우고 나면 이겨야 본전이다. 잘못해서 지는 날엔 x망신이 된다.
예수님께선 세상 임금인 사단과도 싸우려고 하지 않으신다. 이미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요14:30
한 때는 피조물 중에 최고의 존재였던 루스벨 조차 하나님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맞붙어 준다면 그건 영광이겠지... 오래 전 아주 옛날 루스벨은 영광스럽게도 하나님과 한 판 승부를 벌였었지만 예상대로 참패 했다고 한다. 그런데 창세기 32장에는 말도 안 되는 한판 승부가 나온다.
창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여기서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보게 된다. 비리가 있음에 틀림없어...
결과는 딱 한 방 맞고 환도뼈가 탈골된 야곱의 승...
야곱이 싸우던 상대는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이었다. 하나님께선 상처하나 없이 당신이 지셨다고 항복하고 가셨다. 그리고는 ‘어쭈, 네가 나를 이겼네! 제법인데...’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32:28 그게 ‘이스라엘’이라는 말의 뜻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긴 건지 잘 모르겠다
분명히 객관적인 평가에서 한 수 위, 또는 두 세수 위인 사람이 지는 것을 이변이라고 하는데 창세기의 싸움에선 이변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져 준 것이다. 져 주는 사람은 항상 이긴 사람보다 강하다. 이런 싸움을 우리는 싫어한다. 일부러 져 주는 싸움에선 이겨도 기분이 별로 안 좋다. 기분 진짜 나쁘다. 내가 정말 강해서 정정당당하게 이기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마음이다. 하나님을 이겼던 야곱은 기분이 어땠을까?
싸움에 이긴 야곱은 결코 신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32:30
그는 오히려 두려워했다. 감히 하나님과 겨룬 것에 대하여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 뒤로는 결코 하나님께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먼 훗날에도 하나님께선 이스라엘을 이렇게 부르신다. “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하나님껜 대단한 믿음의 조상 야곱도 지렁이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자주 하나님과 싸우려고 한다. 이런 거 저런 게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당신이 진짜 하나님이면 증거를 대보라고...’ ‘내 앞에 나타나면 내가 믿어주지...’ ‘당신이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이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아무리 욕하고 덤벼도 하나님은 거의 대부분 가만히 계신다. 그리고 그냥 온갖 누명을 다 뒤집어쓰신다. 하나님은 아무래도 불완전한 분인 것 같다는 둥... 흠이 있는 것을 드디어 발견했다는 둥... 하면서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도 그냥 가만히 계신다. ‘가만히 있으면 지는 건데... 요즘엔 목소리가 커야 이기는데... 말을 해 보라고... 뭔가 캥기니깐 가만히 있지... 맞아, 하나님께선 캥기는 게 많은 게야... 유구무언이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실걸...’
나는 하나님이 나와 상대해 주시는 것 감당할 수 없다. 우리랑 상대하지 않으시는 쪽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온 우주를 만드신 엄청난 분을 먼지만도 못한 인간인 우리는 상대할 수 없다. 한 뼘 밖에 안 되는 작은 머리로 창조주인 그 분에 대하여 생각한다는 것조차 무척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해야...
시103:13-15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분은 애초부터 우리가 진흙덩어리임을 잘 알고 계신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애초부터 하나님의 관심사는 그런 우리랑 말싸움해서 이기는 게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땡깡을 부려도 그분은 가만히 계신다. 그분은 그런 건 그냥 져 주신다. 아들과 장난치면서 싸우는 아빠는 항상 진다. 총싸움이든 칼싸움이든... 아빠가 이기면 아들이 화내거든... 비록 비참하게 지지만 아빠는 신나 하는 아들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아들의 기쁨, 아들의 승리가 곧 아버지의 승리이자 기쁨이다.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사는 우리 인간 아들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건강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진정한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워낼 수만 있다면 우리 눈에 흠이 많은 하나님으로 보이더라도 상관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그분은 지저분한 인간의 살덩이를 뒤집어쓰고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시면서 세상에 오셨다. 말이 먹다 남은 여물 때문에 쉰내 나는 말구유에서 말똥 소똥 염소 똥 냄새 진하게 맡으면서 태어나셨다. 도무지 학벌도 없고 내세울 만한 것이라곤 목수의 아들이라는 타이틀 밖에 없는 채로... 모든 사람들이 아주 만만하게 생각할 만큼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흠투성이를 다 뒤집어쓰고, 그리곤 지렁이 같은 인간들에게 실컷 맞고 말 없이 돌아가셨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53:2-7
“야~ 아빠가 졌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 이제 네가 이겼다. 아빠가 틀렸다. 네 말이 다 맞으니깐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나는 이제 흠 많아 보이는 하나님이 너무 좋다. 가슴 찐하게... 그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이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