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자꾸만 손이 가는 성경절이 있습니다.
전3:15 입니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창조된 사람들이 과거의 추억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오래된 지나간 것을 찾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시기도 하지만 일단 만들어낸 것을 쉽사리 버리지 않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 속의 오래된 옛날 이야기를 꺼내보면 사람들은 금방 의기 양양하게 마구 질문을 쏟아냅니다.
하나님처럼 완벽하시고 완전한 의를 가지신,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 만드신 세상에 왜 죄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루스벨을 통해서 죄가 들어온 후에도 신속하게 루스벨을 제거하지 않으시고 놔두셔서 결국 그 죄가 사람에게 전염되도록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적어도 사람들을 정말 아끼시고 사랑하셨다면 뱀이 여자를 유혹했을 때 천사를 보내셔서 유혹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셨어야 했는데 왜 그냥 보고만 계셨는가...
그러니 이런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서 지셔야 한다. 우린 정말 억울하지 않는가? 등등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못 믿겠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런 주장을 처음했던 사람이 누구였죠?
아담과 하와가 그랬다고 했습니다. 죄를 짓고 난 다음, 서로 자신들이 죄를 지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 탓이라고 했죠.
그러니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서 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인간들의 요청대로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셨습니다.
사53:6-7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면서도 앞에서 했던 질문들에 대한 시원한 답은 끝까지 안하시고 입을 굳게 다물고 계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렘31:3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안 하실까요?
우리도 질문을 받았을 때 답을 안 하는 경우가 있죠?
언제요? 상대방의 말이 너무나도 옳아서 할 말이 없을 때... 이럴 땐 유구무언이라고 하죠?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유구무언이시네...' 라는 말을 하면서 통쾌해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냥 뭔가를 덮어두고 싶을 때에도 우리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 속 깊이 뭔가를 덮어두고 싶을 때, 우리는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외아들이 있었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버지랑 대판 싸우고는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집 나간 아들은 며칠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몇 주일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추석 때가 되어서 친척들이 다 모였습니다.
친척들이 돌아가면서 묻습니다.
“형님... 아무개가 왜 안보이나요? ”
“응... 일 있어서 못 왔어...”
“아니 이런 명절에 무슨 일이야? 아무리 바빠도 친척들한테 인사는 해야지? 어디 갔대요? 빨리 오라고 해요...”
“...”
“아니 왜 말이 없으슈? 무슨 일 있남?”
이런 사람은 옆에서 꼬집어 줘야 합니다.
루스벨이 왜 죄를 짓게 놔뒀느냐 왜 살려두었느냐 등등의 질문이 바로 그런 종류의 질문입니다.
자꾸만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도무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늘 아버지께선 당신의 자녀들 사이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죄들을 그냥 마구 폭로하면서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입장이 곤란해지더라도 그냥 덮고 가십니다.
왜요? 사랑하니까...
죄 지은 내 자식들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 자식들이 지은 죄에 대한 이야기, 그 상처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말도 안 된다고 도대체 왜 그러셨냐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다그치면, 하나님께서는 ‘얘들아, 난 너희들을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한단다. 내가 다 책임 질 테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똑바로 밝혀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어느 날, 식구들이 이마트에 갔습니다.
왔다 갔다 하다가 나예가 어느 장난감 앞에 딱 서더니 이거 사달라는 겁니다.
집사람이랑 뭔가 봤더니 어린이 화장품이예요.
맘에 안 들어서 다음에 사자고 했더니 나예의 인상이 마구 찌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이거 사주세요...” “안돼”
“아빠 사주세요” “안돼”
졸라도 안 되니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는 내가 미운 거지? 나 안 사랑하는 거지?”
해 달라는 대로 안 해 줬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다른 것은 몰라도 딸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한 대 맞고 상황 종료.
성경에 나온 하나님은 참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루스벨의 타락에 대하여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으시고 다 덮어버리신 것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더 좋아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덮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루스벨이 하나님을 떠나간 지 오래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잊지 않으시고 이미 지나간 것을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
‘그럼 하나님께서 루스벨을 잊지 않고 찾으신다는 성경절이 어디 있나요?’
저도 성경에서 하나님과 루스벨은 선과 악의 대쟁투를 하면서 원수처럼 서로 싸우는 줄로만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내내 별 말씀이 없다가 에스겔에서 갑자기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에스겔 28장 입니다.
에스겔 28장에는 이스라엘에 해를 끼치던 두로 왕이 나옵니다.
2절부터 10절까지는 두로왕의 잘못과 그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했는데 두로왕의 잘못은 다음과 같습니다.
겔28:2,5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여기까지는 분명히 두로왕의 이야기였고 루스벨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내려가 보면 ?
에스겔 28장 12-13절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어... 이상하다... 두로왕 이야기를 하시다가 왜 갑자기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에 있었던 일?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14절 “너는 기름 부음을 받는 덮는 그룹임이여”
이제는 완전히 두로왕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모시던 한 그룹 천사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절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7절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여러분, 이 성경절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전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이 감춰두셨던 루스벨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아쉬움을, 두로왕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가까운 친구였던 에스겔에게 ...
비록 죄를 짓고 하나님의 곁을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자식이지만 하나님께선 여전히 사랑하시고 그리워하시는 것입니다.
루스벨의 뒤를 이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버린 우리들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선동일한 사랑과 그리움을 가슴 속 깊이 품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께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전3:15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아무리 많이 망가졌어도, 아무리 오랫동안 멀리 떠났어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전3:15 입니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창조된 사람들이 과거의 추억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오래된 지나간 것을 찾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시기도 하지만 일단 만들어낸 것을 쉽사리 버리지 않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 속의 오래된 옛날 이야기를 꺼내보면 사람들은 금방 의기 양양하게 마구 질문을 쏟아냅니다.
하나님처럼 완벽하시고 완전한 의를 가지신,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 만드신 세상에 왜 죄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루스벨을 통해서 죄가 들어온 후에도 신속하게 루스벨을 제거하지 않으시고 놔두셔서 결국 그 죄가 사람에게 전염되도록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적어도 사람들을 정말 아끼시고 사랑하셨다면 뱀이 여자를 유혹했을 때 천사를 보내셔서 유혹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셨어야 했는데 왜 그냥 보고만 계셨는가...
그러니 이런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서 지셔야 한다. 우린 정말 억울하지 않는가? 등등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못 믿겠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런 주장을 처음했던 사람이 누구였죠?
아담과 하와가 그랬다고 했습니다. 죄를 짓고 난 다음, 서로 자신들이 죄를 지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 탓이라고 했죠.
그러니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서 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인간들의 요청대로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셨습니다.
사53:6-7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면서도 앞에서 했던 질문들에 대한 시원한 답은 끝까지 안하시고 입을 굳게 다물고 계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렘31:3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안 하실까요?
우리도 질문을 받았을 때 답을 안 하는 경우가 있죠?
언제요? 상대방의 말이 너무나도 옳아서 할 말이 없을 때... 이럴 땐 유구무언이라고 하죠?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유구무언이시네...' 라는 말을 하면서 통쾌해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냥 뭔가를 덮어두고 싶을 때에도 우리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 속 깊이 뭔가를 덮어두고 싶을 때, 우리는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외아들이 있었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버지랑 대판 싸우고는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집 나간 아들은 며칠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몇 주일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추석 때가 되어서 친척들이 다 모였습니다.
친척들이 돌아가면서 묻습니다.
“형님... 아무개가 왜 안보이나요? ”
“응... 일 있어서 못 왔어...”
“아니 이런 명절에 무슨 일이야? 아무리 바빠도 친척들한테 인사는 해야지? 어디 갔대요? 빨리 오라고 해요...”
“...”
“아니 왜 말이 없으슈? 무슨 일 있남?”
이런 사람은 옆에서 꼬집어 줘야 합니다.
루스벨이 왜 죄를 짓게 놔뒀느냐 왜 살려두었느냐 등등의 질문이 바로 그런 종류의 질문입니다.
자꾸만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도무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늘 아버지께선 당신의 자녀들 사이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죄들을 그냥 마구 폭로하면서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입장이 곤란해지더라도 그냥 덮고 가십니다.
왜요? 사랑하니까...
죄 지은 내 자식들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 자식들이 지은 죄에 대한 이야기, 그 상처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말도 안 된다고 도대체 왜 그러셨냐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다그치면, 하나님께서는 ‘얘들아, 난 너희들을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한단다. 내가 다 책임 질 테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똑바로 밝혀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어느 날, 식구들이 이마트에 갔습니다.
왔다 갔다 하다가 나예가 어느 장난감 앞에 딱 서더니 이거 사달라는 겁니다.
집사람이랑 뭔가 봤더니 어린이 화장품이예요.
맘에 안 들어서 다음에 사자고 했더니 나예의 인상이 마구 찌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이거 사주세요...” “안돼”
“아빠 사주세요” “안돼”
졸라도 안 되니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는 내가 미운 거지? 나 안 사랑하는 거지?”
해 달라는 대로 안 해 줬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다른 것은 몰라도 딸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한 대 맞고 상황 종료.
성경에 나온 하나님은 참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루스벨의 타락에 대하여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으시고 다 덮어버리신 것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더 좋아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덮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루스벨이 하나님을 떠나간 지 오래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잊지 않으시고 이미 지나간 것을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
‘그럼 하나님께서 루스벨을 잊지 않고 찾으신다는 성경절이 어디 있나요?’
저도 성경에서 하나님과 루스벨은 선과 악의 대쟁투를 하면서 원수처럼 서로 싸우는 줄로만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내내 별 말씀이 없다가 에스겔에서 갑자기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에스겔 28장 입니다.
에스겔 28장에는 이스라엘에 해를 끼치던 두로 왕이 나옵니다.
2절부터 10절까지는 두로왕의 잘못과 그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했는데 두로왕의 잘못은 다음과 같습니다.
겔28:2,5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여기까지는 분명히 두로왕의 이야기였고 루스벨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내려가 보면 ?
에스겔 28장 12-13절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어... 이상하다... 두로왕 이야기를 하시다가 왜 갑자기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에 있었던 일?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14절 “너는 기름 부음을 받는 덮는 그룹임이여”
이제는 완전히 두로왕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모시던 한 그룹 천사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절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7절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여러분, 이 성경절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전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이 감춰두셨던 루스벨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아쉬움을, 두로왕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가까운 친구였던 에스겔에게 ...
비록 죄를 짓고 하나님의 곁을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자식이지만 하나님께선 여전히 사랑하시고 그리워하시는 것입니다.
루스벨의 뒤를 이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버린 우리들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선동일한 사랑과 그리움을 가슴 속 깊이 품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께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전3:15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아무리 많이 망가졌어도, 아무리 오랫동안 멀리 떠났어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