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체제 분석”이라는 미국 사회학자 월러스틴이 쓴 책을 읽었는데 “”로 표시된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읽고 한미FTA로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됐는지 절감할 수 있었으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먼저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해야할 것을 깨닫게 됐다.
“역사적 체제들은 저마다 수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 세계체제, 곧 중도자유주의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현재 체제의 틀 내부에서는 해결 불가능한 어려움에 처해 있으며, 이런 위기에 진입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 위기는 25-50년 정도 지속될 것이다....
가장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은 이 세계체제의 모든 제도적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요동들이 사나워지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우리는 이를 이미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세계체제는 막강한 투기의 압력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투기는 주요 금융기관이나 중앙 은행과 같은 중앙통제기구들의 통제를 피해 자유롭게 활개치고 있다. 또한 그 규모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상대적으로 긴 시기에 걸쳐 높은 수준의 폭력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이러한 분출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전통적으로 도덕적 통제를 담당해 오던 국가와 종교단체 양자 모두 이제 자신들의 실제적 영향력이 상당히 약화되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한미FTA에 대해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교수, 의사 등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한미FTA가 단지 관세를 낮추는 것으로 이해해 찬성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투자자-국가소송제로 멕시코가 유해물질로 지역주민들의 암발생률이 높아지고 기형아 출산율이 높아져 쓰레기장 매립 허가를 취소했다가 사업주인 미국 회사 메탈클래드에 1600만달러를 지불하라는 판정을 받았고 미국 법조계에서도 나중에 이 제도의 위험성을 알게 되어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고 이번 한미FTA에서 미국은 주(州)법을 포괄적으로 유보했기 때문에 법 개정은 물론 할 필요가 없고 한국 기업이 한-미FTA를 들이대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면 자신들의 인식이 잘못됐음을 시인한다. 이런 경험으로 국민들에게 한-미FTA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국은 한-미 FTA의 목적을 명확히 밝혔다 (미 의회조사국 리포트 2006년 5월), 관세 장벽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비관세 장벽을 없애겠다는 것, 결국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바로 미국의 초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다”라고 정태인씨는 말했는데 월러스틴의 표현에 의하면 비자유 체제를 추구하는 이들을 위해서다.
“현존하는 우리의 세계체제를 계승하게 될 다음 체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투쟁에 존재하게 될 깊은 균열은 이 두가지 자유-다수의 자유와 소수의 자유-를 모두 확장하고자 하는 이들과 다수의 자유나 소수의 자유 둘 중 하나를 더 선호하는 것처럼 위장한 채 비자유 체제를 추구하는 이들 사이에 그어질 것이다.”란 월러스틴의 말에 한미FTA를 대입해보면 미국 초국적기업가 내지는 자본가라는 소수의 엄청난 자유를 위해 마치 다수 한국민의 경제적인 자유를 확장한 것처럼 위장하고 한국의 다수 국민을 비자유 체제에 묶어 두기 위해 사기를 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관세인하라는 작은 이득에 눈이 멀어 우리의 법과 제도 즉 우리 정부의 자율성을 팔아넘기는 엄청난 바보짓을 했다.
핵시대평화재단 데이비드 크리거 박사는 미국을 음주운전자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세계인들을 향해 미국의 친구이면 미국이 음주운전을 못 하도록 말리는 우정을 발휘해야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미국이 전 세계 인류의 목숨을 인질로 삼고 있는 핵정책에 있어서 음주운전을 못 하도록 운동하는 양심적인 미국의 평화단체를 후원해오고 있는데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그런 음주운전을 예방하려는 활동가들에게 조금 후원했다.
“현재의 세계체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산비용과 판매가격 간의 마진 폭을 감소시키기 위해 생산자들이 모든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세계적으로 생산비용이 증가하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다시 말해 왜 세계적 수준에서 평균이윤율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임금지출, 투입비용,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혜택(교육.건강.평생수입의 보장)의 재원인 세금이 지난 50년 동안 모두 꾸준하게 증가해왔다.
세계체제의 작동방식에 대해 오랫동안 품어오던 반감에다, 세계를 바꾸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반체제운동에 대한 실망이 덧붙여지면서, 마침내 이것은 1968년의 세계혁명으로 귀결되었다. 이것은 미국헤게모니 패권에 대한 거부였고 동시에 미국에 대한 적대자라고 생각되어 온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불만이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소련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서 실제로는 미국과 공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테마는 전통적인 반체제운동들이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약속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피억압 민중들은 현실은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며 이 작은 변화들이 모여 마침내 자식이나 그후 세대에는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그동안의 믿음을 버리게 되었고, 그 작은 변화들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이들은 더 이상 미래의 영광을 위해 현재의 불만을 감수하라는 목소리에 설득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1968년 세계혁명 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다양한 생산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이 체제를 안정시키는데 공헌해 온 요소, 곧 억압받는 자들의 낙관주의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같은 상실은 물론 최악의 순간, 다시 말해 이윤에 대한 압박을 심각하게 체감하는 시점에서 나타났다.
1968년의 문화적 충격은 지난 1848년 세계혁명 이후 세계체제 내에서 팽배해 온 중도자유주의의 자동적 지배에 심각한 균열을 만들었다. 우파와 좌파 모두 중도자유주의의 아바타 노릇으로부터 해방되어 제각각 보다 급진적인 가치를 천명, 재천명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세계체제는 이행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우파와 좌파 모두 자신들의 가치가 이 위기로부터 탄생하게 될 새로운 체제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증폭하는 혼돈상태를 이용하기로 결심하고 나섰다.
우파의 보수적 공세는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나타났는데, 중도파는 (전지구적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던) 발전주의를 폐기하고 대신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테마를 들고 나왔다. 글로벌리제이션은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에 모든 국경을 개방할 것을 무엇보다도 핵심적으로 요구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노동의 자유로운 흐름은 결코 고려되지 않았다-한미FTA에서도 서비스 분야의 전문직 상호 인증은 비자 쿼터를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됐다고 한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적으로는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었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은 바로 이 이론의 보급을 위한 장이었고, 국제금융기금(IMF)과 새로 만들어진 세계무역기구(WTO)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주요 집행관이 되었다.
2001년 9월 11일 쌍둥이빌딩에 대한 오사마 빈 라덴의 영화같은 공습은 세계정치의 혼돈이 더욱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암시하는 것인 동시에, 정치적 제휴가 이제 하나의 전환점에 다다랐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쌍둥이빌딩에 대한 공습은 중도파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를 바라는 우파들로 하여금 미국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일방적 지배와, 1968년 세계혁명 이후에 (특히 인종과 섹슈얼리티 분야에서) 발생한 이 세계체제의 문화적 진화를 종식시키려는 시도를 결합시킨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파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어온, 1945년 이후에 정착된 지정학적 구조의 상당 부분을 붕괴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하지만 이와같은 시도들은 세계체제 내에서 이미 증가하고 있는 불안정성을 더욱 악화시켰을 따름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더욱 변혁적인 경로를 추구하고자 할 것이며, 이와 같은 시도는 흔히 겉으로는 중기적 조정의 형태를 띠고 나타날 것이다. 이들은 이행의 시기에 나타나는 격렬한 요동을 이용하여 기존 체제의 작동양식에 의미 심장한 변화를 발생시킴으로써, 이것이 분기의 두 방향 중 어느 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마지막 행위형태이며, 이 형태야말로 체제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세계사회포럼의 슬로건은 바로 이 세계체제가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고, 정치적 선택의 순간이 실제로 다가오고 있다는 이들의 감각을 잘 표현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다보스의 정신과 포르토 알레그레(세계사회포럼)의 정신 간의 투쟁이 다양한 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근대 세계체제의 지문화에 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프랑스혁명은 변화, 특히 정치적 변동을 ‘정상적인’ 현상으로 만들었다. 이 변화는 사물들 자체에 내재해 있는 속성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이 변화는 계몽주의 관념에서 중심을 이루었던 진보이론이 정치적으로 표출한 것이었다.
두 번째로, 프랑스혁명은 주권의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규정하였다. 그전까지 주권은 군주나 입법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었으나, 이제 주권은 민중(people)과 관련된 개념이 되었다.
19세기 초 보수주의자들은 민중이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관념 자체를 거부하고 진보운동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이 운동들은 진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제도들-군주제, 교회, 가족-을 변화에 대한 방패막이로서 찬양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반대편에는 보수주의적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일정 정도의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것만이 변화의 정도와 속도를 제한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
프랑스혁명 초기에 등장한 3대 이데올로기-보수주의, 자유주의, 급진주의-가운데 세계체제를 그나마 상당기간 동안 지배하는 데 성공한 것은 중도자유주의였다. 온건한 변화라는 이들의 프로그램은 거의 모든 곳에서 실행되었고, 이들은 보수주의와 급진주의 양자 모두를 설득하여 두 입장을 온건화시켰다.“
나는 중도자유주의가 수명을 다하고 있으니 새로 태어날 체제가 프랑스 혁명의 긍정적인 요소, 즉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자유롭고 주권자여야 한다는 명제가 더 널리 실행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역사적 체제들은 저마다 수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 세계체제, 곧 중도자유주의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현재 체제의 틀 내부에서는 해결 불가능한 어려움에 처해 있으며, 이런 위기에 진입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 위기는 25-50년 정도 지속될 것이다....
가장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은 이 세계체제의 모든 제도적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요동들이 사나워지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우리는 이를 이미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세계체제는 막강한 투기의 압력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투기는 주요 금융기관이나 중앙 은행과 같은 중앙통제기구들의 통제를 피해 자유롭게 활개치고 있다. 또한 그 규모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상대적으로 긴 시기에 걸쳐 높은 수준의 폭력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이러한 분출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전통적으로 도덕적 통제를 담당해 오던 국가와 종교단체 양자 모두 이제 자신들의 실제적 영향력이 상당히 약화되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한미FTA에 대해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교수, 의사 등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한미FTA가 단지 관세를 낮추는 것으로 이해해 찬성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투자자-국가소송제로 멕시코가 유해물질로 지역주민들의 암발생률이 높아지고 기형아 출산율이 높아져 쓰레기장 매립 허가를 취소했다가 사업주인 미국 회사 메탈클래드에 1600만달러를 지불하라는 판정을 받았고 미국 법조계에서도 나중에 이 제도의 위험성을 알게 되어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고 이번 한미FTA에서 미국은 주(州)법을 포괄적으로 유보했기 때문에 법 개정은 물론 할 필요가 없고 한국 기업이 한-미FTA를 들이대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면 자신들의 인식이 잘못됐음을 시인한다. 이런 경험으로 국민들에게 한-미FTA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국은 한-미 FTA의 목적을 명확히 밝혔다 (미 의회조사국 리포트 2006년 5월), 관세 장벽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비관세 장벽을 없애겠다는 것, 결국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바로 미국의 초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다”라고 정태인씨는 말했는데 월러스틴의 표현에 의하면 비자유 체제를 추구하는 이들을 위해서다.
“현존하는 우리의 세계체제를 계승하게 될 다음 체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투쟁에 존재하게 될 깊은 균열은 이 두가지 자유-다수의 자유와 소수의 자유-를 모두 확장하고자 하는 이들과 다수의 자유나 소수의 자유 둘 중 하나를 더 선호하는 것처럼 위장한 채 비자유 체제를 추구하는 이들 사이에 그어질 것이다.”란 월러스틴의 말에 한미FTA를 대입해보면 미국 초국적기업가 내지는 자본가라는 소수의 엄청난 자유를 위해 마치 다수 한국민의 경제적인 자유를 확장한 것처럼 위장하고 한국의 다수 국민을 비자유 체제에 묶어 두기 위해 사기를 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관세인하라는 작은 이득에 눈이 멀어 우리의 법과 제도 즉 우리 정부의 자율성을 팔아넘기는 엄청난 바보짓을 했다.
핵시대평화재단 데이비드 크리거 박사는 미국을 음주운전자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세계인들을 향해 미국의 친구이면 미국이 음주운전을 못 하도록 말리는 우정을 발휘해야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미국이 전 세계 인류의 목숨을 인질로 삼고 있는 핵정책에 있어서 음주운전을 못 하도록 운동하는 양심적인 미국의 평화단체를 후원해오고 있는데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그런 음주운전을 예방하려는 활동가들에게 조금 후원했다.
“현재의 세계체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산비용과 판매가격 간의 마진 폭을 감소시키기 위해 생산자들이 모든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세계적으로 생산비용이 증가하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다시 말해 왜 세계적 수준에서 평균이윤율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임금지출, 투입비용,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혜택(교육.건강.평생수입의 보장)의 재원인 세금이 지난 50년 동안 모두 꾸준하게 증가해왔다.
세계체제의 작동방식에 대해 오랫동안 품어오던 반감에다, 세계를 바꾸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반체제운동에 대한 실망이 덧붙여지면서, 마침내 이것은 1968년의 세계혁명으로 귀결되었다. 이것은 미국헤게모니 패권에 대한 거부였고 동시에 미국에 대한 적대자라고 생각되어 온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불만이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소련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서 실제로는 미국과 공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테마는 전통적인 반체제운동들이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약속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피억압 민중들은 현실은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며 이 작은 변화들이 모여 마침내 자식이나 그후 세대에는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그동안의 믿음을 버리게 되었고, 그 작은 변화들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이들은 더 이상 미래의 영광을 위해 현재의 불만을 감수하라는 목소리에 설득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1968년 세계혁명 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다양한 생산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이 체제를 안정시키는데 공헌해 온 요소, 곧 억압받는 자들의 낙관주의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같은 상실은 물론 최악의 순간, 다시 말해 이윤에 대한 압박을 심각하게 체감하는 시점에서 나타났다.
1968년의 문화적 충격은 지난 1848년 세계혁명 이후 세계체제 내에서 팽배해 온 중도자유주의의 자동적 지배에 심각한 균열을 만들었다. 우파와 좌파 모두 중도자유주의의 아바타 노릇으로부터 해방되어 제각각 보다 급진적인 가치를 천명, 재천명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세계체제는 이행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우파와 좌파 모두 자신들의 가치가 이 위기로부터 탄생하게 될 새로운 체제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증폭하는 혼돈상태를 이용하기로 결심하고 나섰다.
우파의 보수적 공세는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나타났는데, 중도파는 (전지구적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던) 발전주의를 폐기하고 대신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테마를 들고 나왔다. 글로벌리제이션은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에 모든 국경을 개방할 것을 무엇보다도 핵심적으로 요구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노동의 자유로운 흐름은 결코 고려되지 않았다-한미FTA에서도 서비스 분야의 전문직 상호 인증은 비자 쿼터를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됐다고 한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적으로는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었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은 바로 이 이론의 보급을 위한 장이었고, 국제금융기금(IMF)과 새로 만들어진 세계무역기구(WTO)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주요 집행관이 되었다.
2001년 9월 11일 쌍둥이빌딩에 대한 오사마 빈 라덴의 영화같은 공습은 세계정치의 혼돈이 더욱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암시하는 것인 동시에, 정치적 제휴가 이제 하나의 전환점에 다다랐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쌍둥이빌딩에 대한 공습은 중도파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를 바라는 우파들로 하여금 미국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일방적 지배와, 1968년 세계혁명 이후에 (특히 인종과 섹슈얼리티 분야에서) 발생한 이 세계체제의 문화적 진화를 종식시키려는 시도를 결합시킨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파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어온, 1945년 이후에 정착된 지정학적 구조의 상당 부분을 붕괴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하지만 이와같은 시도들은 세계체제 내에서 이미 증가하고 있는 불안정성을 더욱 악화시켰을 따름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더욱 변혁적인 경로를 추구하고자 할 것이며, 이와 같은 시도는 흔히 겉으로는 중기적 조정의 형태를 띠고 나타날 것이다. 이들은 이행의 시기에 나타나는 격렬한 요동을 이용하여 기존 체제의 작동양식에 의미 심장한 변화를 발생시킴으로써, 이것이 분기의 두 방향 중 어느 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마지막 행위형태이며, 이 형태야말로 체제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세계사회포럼의 슬로건은 바로 이 세계체제가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고, 정치적 선택의 순간이 실제로 다가오고 있다는 이들의 감각을 잘 표현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다보스의 정신과 포르토 알레그레(세계사회포럼)의 정신 간의 투쟁이 다양한 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근대 세계체제의 지문화에 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프랑스혁명은 변화, 특히 정치적 변동을 ‘정상적인’ 현상으로 만들었다. 이 변화는 사물들 자체에 내재해 있는 속성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이 변화는 계몽주의 관념에서 중심을 이루었던 진보이론이 정치적으로 표출한 것이었다.
두 번째로, 프랑스혁명은 주권의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규정하였다. 그전까지 주권은 군주나 입법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었으나, 이제 주권은 민중(people)과 관련된 개념이 되었다.
19세기 초 보수주의자들은 민중이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관념 자체를 거부하고 진보운동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이 운동들은 진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제도들-군주제, 교회, 가족-을 변화에 대한 방패막이로서 찬양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반대편에는 보수주의적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일정 정도의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것만이 변화의 정도와 속도를 제한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
프랑스혁명 초기에 등장한 3대 이데올로기-보수주의, 자유주의, 급진주의-가운데 세계체제를 그나마 상당기간 동안 지배하는 데 성공한 것은 중도자유주의였다. 온건한 변화라는 이들의 프로그램은 거의 모든 곳에서 실행되었고, 이들은 보수주의와 급진주의 양자 모두를 설득하여 두 입장을 온건화시켰다.“
나는 중도자유주의가 수명을 다하고 있으니 새로 태어날 체제가 프랑스 혁명의 긍정적인 요소, 즉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자유롭고 주권자여야 한다는 명제가 더 널리 실행하는 것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