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보다 손위인 예수의 형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당신을 그들보다 우월하게 생각한다고 비난하고,
또 예수께서 저희의 교사들과 제사장과 나라의 관리들보다 당신을 높인다고 책망하였다.
그들은 가끔 예수를 위협하고, 협박하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성경을 자신의 안내자로 삼음으로 이겨내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형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친절하게 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시기하고 아주 단호한 불신과 멸시를 나타내었다.
그들은 예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님 안에서 큰 대조(對照)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수는 창조주이면서도 무력한 아이였다.
우주와 지구가 창조주이신 예수의 소유였으나
빈곤이 그분의 생애의 매 발걸음의 특징이 되었다.
예수는 세상의 교만과 주제넘음과는 아주 판이한 품성과 개성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는 세속적인 위대함을 얻기 위해 분투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가장 비천한 지위에서도 만족해 하셨다.
이것이 예수의 형들을 노하게 하였다.
예수가 시련과 손실 가운데서도 언제나 평온하신 것을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고후 8:9)이었음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의 형들은 예수의 사명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께서 형들로부터 오해를 받았던 것은 예수가 그들과 같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표준은 그들의 표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에게서 돌아섰기에
그들의 생애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없었다.
그들이 지켰던 종교의 형식은 품성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마 23:23)다.
예수님의 모본은 그들을 항상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분이 세상에서 오직 한 가지 미워하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죄였다.
그분은 악행을 목도할 때마다 숨길 수 없는 고통을 느끼셨다.
외형적인 성결로 죄에 대한 사랑을 숨기는 형식주의자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성을 으뜸으로 삼는 예수사이의 대조는 명백하였다.
예수님의 생애가 악을 책망했기 때문에 그분은 가정 안팎에서 반대를 받으셨다.
그분의 이기심 없는 결백성은 오히려 조소 섞인 평을 받았다.
그분의 인내와 친절은 소심(小心)으로 불렸다.
인간이 당하는 온갖 쓰디쓴 슬픔 중에 그리스도께서 맛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유년 시절에도 예수는 조롱하는 표정들과 악의에 찬 속삭임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셨다.
만일 예수가 한마디의 조급한 말로나 표정으로 응수하였더라면,
또는 단 한 번의 그릇된 행위를 함으로 형들에게 양보했더라면
예수는 완전한 모본이 되지 못하셨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속을 위한 계획도 성취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예수가 죄에 대한 핑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만 하셨어도
사단은 승리하고 세상은 영원히 잃어버림을 당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마귀는 예수의 생애를 가능한 한 괴롭게 만들어서
예수를 죄에 빠뜨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시험을 당하실 때마다 예수의 한 가지 대답은 “기록하였으되”라는 말씀이었다.
예수는 형들의 잘못된 행동을 좀처럼 책망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말해주셨다.
예수는 종종 어떤 금지된 행동에 형들과 동참하기를 거절하심으로
비겁한 자라는 비난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대답은
기록하였으되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욥 28:28)였다.
예수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기때문에 예수와 교제하려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나
많은 사람은 그분의 흠 없는 생애로 말미암아 견책을 받으므로 그분을 피하였다.
예수의 친구들은 예수에게 그들이 하는 것처럼 행하도록 권하였다.
예수는 명랑하고 쾌활하셨으므로
친구들은 예수와 함께 있기를 좋아하였고 예수의 제의를 환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친구들은 예수의 치밀함을 보고 조급하여 말하기를 도량이 없고 완고하다고 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기록하였으되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