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오전에 묵상을 하며 느낀바를 적은 것입니다.
읽으시고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주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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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장
9: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은 의 곧 믿음에서 난 의에 이르렀으나
9:31 그러나, 의의 법을 따른 이스라엘은 의의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9:32 무슨 까닭이냐? 이는 그들이 믿음으로 그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처럼 구하였기 때문이라. 그들은 그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느니라.
9:33 이것은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실족하게 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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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의를 이루지 못한 것은
믿음으로 그것을 구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로 의를 구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의를 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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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은 쉬운데 참 어렵다.
우선 ‘믿음’이 없는 나로서는 ‘믿음’으로 그것을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의’에 이르는 길은 ‘행함’이다.
선을 행하면 사람들이 의롭다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나는 ‘행함’으로는 결코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낀다.
물론 행함으로 의에 이루는 것처럼 보이고 세상의 존경을 받으며 상을 받는 위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은 진리다.
내가 못한다고 남도 못할거라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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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10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3:12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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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신앙을 바라보는 관점에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돌이켜본다.
과거에 의아해하며 읽었던 성경의 장면들이 있다.
노아의 방주에서 술에취해 벌거벗은 채로 잠이든 노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 도망쳐 나온 롯이 자신의딸들과 성관계를 하여 아이를 낳는 것, 자신의 원수가 된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고 골리앗을 물리친 위대한 다윗이 밧세바라는 유부녀에게 이끌려 간음을 저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죄를 가리고자 그녀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신인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
이 모든 장면들이 ‘의인’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의 과오를 명명백백히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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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에 대한 참믿음이 들어오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진정한 ‘선’을 행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올바른 신앙이라 생각했다. 그런데...요즘에는 그게 정말 ‘진리’로서의 신앙인가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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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떤가.
찌질이 아브라함이라고 할만큼,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한채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하는 바보같은 사내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후사’을 약속했을 때도, 그는 자신의 힘으로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태어나게 게 했고, 다시금 하나님께서 ‘아들’을 약속했을 때,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심중에 ‘100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고, 사라는90세니 어찌 출산을 하겠는가?’생각했다. 그의 아내 사라 또한 속으로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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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서의 기자인 사도바울은 로마서 4장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게서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줄을 확신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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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믿음’일까?
죄인된 우리는 무수한 죄를 짓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간과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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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救贖)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3:25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간과)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3:26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
3:27 그런즉 자랑할 것이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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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수히 죄를 짓지만, 그것을 간과해주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다’여기심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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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다.
그럼 우리는 현실에서 어떻게 선을 행해야하는가가 늘 내 고민이자 스트레스다.
‘선’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신앙과 현실의 괴리는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는 그냥 오로지 ‘믿음’뿐이란 말인가?
진정한 선함이 ‘열매’라고 생각하는데...
믿음으로 말미암은 ‘열매’를 내게서 찾기 힘들 뿐더러 좋은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들에게서도 찾기 어렵다.
나는 행위에 목숨을 건 율법주의자일까?
나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남의 믿음을 알 수 없는 것일까?
괴롭고 괴롭다
이 비참함은 사도바울이 느낀 비참함(곤고함)은 아닌것 같다.
문득, 내가 생각하는 믿음의 ‘열매’가 다른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신앙인들의 생각,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내가 진리로 한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길 간절히 원하고 원한다.
기도한다.
글은 올리겠지만, 직접적인 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십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연락처를 센터 사무실에 알려주실 수가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