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박사님의 강의를 통해 성경의 심오한 진리와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알게 되어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3년전 박사님의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50년 동안 무명의 어둠속에서 빛을 발견한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평소 2명의 목사님 설교와 불교공부, 그리고 명상공부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여쭙니다.
1. 구원과 구속의 차이점
목사님들의 설교에는 구원은 믿음으로 인한 한번만 일어나는 일이고, 구속은 구원 후에 죄사함(성령)으로 여러번 일어 날 수 있다고 합니다.
믿음을 통한 구원은 천국의 1층천에 머물게 되지만, 구속은 2층천에, 더 나아가 그리스도 신부는 3층천에 머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말하면 믿음과 신앙의 레벨을 말씀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구원에도 레벨이 있는지요?
2. 결정론적 세계관
그리스의 성도, 그리스도의 친구, 그리스도의 신부가 각기 다르게 태초에 결정되어 부르심(사명)이 다르다고 하는데,,
인간 개개인은 태초에 쓰임이 결정되어진건가요??
결정되었다면 자유의지는 무엇인가요??
3. 불교의 공사상
개인적으로 석가모니는 공(없음, 무, 시스템밖)의 길을 가신 분이고,, 예수님은 색(있음, 유, 사랑, 신)의 길을 가신 분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박사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 나타난 구원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어떤 조건도, 어떤 조건도 없이
모든 인간에게 값없이 주어진 사랑, 곧 은혜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그 은혜를 더 하시는 사랑입니다.(롬5:20)
그 은혜는 선인과 악인에게 내리는 햇빛처럼, 비처럼 동등하게 내립니다.
그러나 조건적 사랑이 옳은 것으로 철저히 세뇌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 놀라운 은혜, 곧 무조건적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 은혜로 주신 구원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에는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님께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감동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구원에도 레벨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조건적 사랑'으로 가르치는 "목사"들로부터 받으신
'조건적 영향'으로 말미암아,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확신과 감동이
님의 마음속에서 점차적으로 약화되시고 계심을 나타내는 현상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무조건적 사랑(은혜)의 하나님에게는 강남, 강북도 없고, '임대'와 '자이'도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욕심과 자존심으로 타락한 죄인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세속화된 가르침으로 생각이 됩니다.
두번째 질문, 성도, 친구, 신부라는 단어들은
그리스도와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성경이 사용하는 단어들입니다.
위의 단어들 이외에도
'아들' , '자녀'라는 단어도 있구요, 우리는 하나님의 양이라는 말도 있지요.
이런 단어들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을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우리 인간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비유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지
그런 단어들이 우리 인간들을 구분지어 각각 다른 역할 분담을 하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뜻은
추호도 없습니다.(부디, 제발 - 그 거룩한 천국을, 세속적인 곳으로 배우시지 마시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마치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새신랑이 신부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시며
우리를 마치 친구처럼 하나님 자신과 동등하게도 상대하여 주시며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어떤 사랑보다도 더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신다는
그 사랑을 더 강조하는 목적으로 여러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구원과 구속은 다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에
하나님이 죄인 대신 값을 지불하고 사신다는 뜻을 가진 '대속'이라는 단어가 있지요
따라서 이 구원과 대속이라는 두 단어의 의미를 합하면 '구속'이 됩니다.
구원 속에 대속, 구속이 다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단어들을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사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해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공'에 대하여서는, 석가 선생님은
'공'을 무(없음)으로 보지 않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석가의 '공'은 성불, 또는 해탈을 경험하지 못한 사바세계의 중생들에게는
'없음'으로 보이는 것이지만
해탈을 경험하고 성불하여 마음의 강을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면
사바세계에서는 '없음'으로만 보였던 '공'이
실제로는 '없음'이 아니라
참으로 '있는 것', 곧 '유'임을 깨닫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유'는 그 양을 측정할 수 없는,
무한한 빛 - '무량광'이며, 무한한 생명 - 무량 수(수명),이며
그 '공'이 실재로 일상에 나타나는 모습은
놀랍게도 무조건적 사랑, 곧 대자대비의 실천에서
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색')이라고 생각했던
부, 권력, 명예, 자랑 등등이 실제로는 '무'(색즉시공)임을 깨닫게 된다고
반야심경이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자 선생님도 역시 '공'을 지고의 사랑, 곧 하나님(상제)의 선하심, 곧 신의 사랑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시면서 '상선약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고의 사랑은 물과 같다라는 뜻이지요.
물은 아무 조건도 없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 모든 것을 적셔주어 생명이 싹트게 하고
절대로 다투지 않고 피하여 흐르며
결국에는 가장 낮은 곳이 처하며
모든 것을 이롭게 한다고 기록했지요 -
결국 '공'이란 '무'가 아니라
'참으로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의 유'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노자의 최고의 선을 성경적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십자가의 사랑,
곧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이 실천적으로 십자가에서 나타나 인류를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사랑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공'의 가장 참되고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석가 선생님도, 노자 선생님도, 그리고 님께서도
지고의 진리를 추구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저도 님과 동일한 목표를 두고 십자가의 사랑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은 사랑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며 빛으로 더 이상 채울곳이 없도록 가득한 것입니다.
더이상 인간이 채울 수 없는 사랑과 빛과 진리와 생명은
오직 십자가로부터 받아 채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보다 더 우리들의 빈 가슴을 가득하게 채워주는 '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가장 위대한 사랑, 그 '공'을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찾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공'은, 사랑은, 빛은, 생명은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입니다.
종교와 진리는 동일한 것이 되어야 옳지만
종교들은 이미 세속에 물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