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많은 우상들이나 이방신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신들이 생겨나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불완전함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고자 한 일에서 시작된 일들이다. 사람이 불완전하게 된 것은 바로 '죄' 때문인데 우상을 만들어내는 일은 자기 스스로가 이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과도 같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탐심도 우상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이 말씀에 대해 왜 탐심이 우상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왜 그런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 범죄하므로 잃어버린 것은 완전함이다. 우리가 가끔 우리 눈에 완전해 보이는 어떤 것들을 볼 때에 특히나 그것이 사람이라고 한다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보고 감탄하고 때로는 흠모하는 마음을 갖기도 한다. 그것이 성격적으로든 능력적으로든 외모적으로든 나보다 더 나은 어떤 존재를 보면 왠지모르게 그냥 끌리고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그와같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거나 그러한 사람을 나의 것으로 삼고자 하거나 하기도 한다. 나는 전에는 이게 무슨 잘못인가? 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냥 좋아한다는 감정이나 생각을 갖는 것만으로는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을 하나님보다 사랑하면 이는 죄이다. 그것이 왜 그러냐하면 이들을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조물이 아무리 예쁘고 사랑스럽다 할지라도 이들을 봄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해야지 사람 자체를 찬양하거나 흠모하면 이는 이들을 우상으로 삼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위치에 이들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온갖 동물들을 볼 때에 때로는 저들이 사람들보다 잘생기거나 예쁘다고 생각되는 적이 많다. 물론 지렁이나 뱀과 같이 보기에 징그럽고 싫은 동물들도 많다. 하지만 귀여운 토끼라든지 다리가 쪽 뻗은 사슴, 등이 반들반들 윤이 나는 멋진 말, 용맹스러운 눈을 가진 독수리....등등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동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서 동물들을 어떻게 저렇게 만드셨을까 감탄을 하곤 한다. 때로는 사람들이 어째서 이러한 동물들보다 못한가하는 생각도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가끔씩 동물들의 세상이 다만 약육강식의 세계만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보곤 한다.
그런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보다 뭔가 나으면 괜히 질투하거나 동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우리말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도 있듯이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나보다 잘되면 괜히 질투가 나고 싫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죗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남들이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나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며 이러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탐심이다.
남자들의 경우 아마도 돈이나 권력을 얻고 싶어하는 것이 가장 클 것이며 여성의 경우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이게 뭐 잘못된 일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사람이 항상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은 아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 수 있으려면 사람이 노력하여 그것을 얻어야만 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것이다. 또한 자신처럼 다른 사람들도 서로 서로 질투와 욕심이 뒤섞인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 안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보자고 용을 쓰며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남들보다 잘살아보겠다는 욕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혹은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전쟁도 불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일들을 벌이게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을 믿었더라면 남을 질투하거나 미워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못생긴 여자가 상대적으로 예쁜 여자를 보고 질투심을 느꼈다고 하자. 하지만 성경은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신다. 마음도 예쁘고 외모도 예쁘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외모가 불완전하게 된 것은 마음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 일로 마음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미모가 뛰어난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또한 외모의 경우 재림 시에 완전하게 바꾸어 주실 것이므로 신경 쓸 일이 없다. "하루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꽃들고 이렇게 예쁘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라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모든 것들이 한정되어 있게 된다. 하나님은 창조의 능력이 있으시므로 하나님을 믿는 한 물질이 부족해질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무한이 아니라 모든 것은 유한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생각도 뒤틀리게 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사람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로 사용되는 석유라는 물질을 예로 들자면 이 석유를 다 사용해 버리면 사람들이 살 수가 없기에 너도 나도 이 석유를 보유하려고 애를 쓴다. 사람들이 이 석유를 이 세상에 있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면 이것에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또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는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을 뿐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으니 어떻게 하든지 남들보다 자기가 이러한 에너지를 더 많이 보유하고자 애를 쓰는 것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피의 다이아몬드라는 제목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본래 귀금속에 그리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이 영상을 본 이후로는 다이아몬드를 사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게 되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을 불러오는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고 알 수 있다. 성경은 이러한 일들이 다만 다른 사람의 일인 것이 아니라 나의 작은 욕심도 점점 커지면 이와 같이 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와 같이 사람이 욕심을 갖는 이유는 모든 물질들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물질을 많이 보유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보다는 우위에 있게 되므로 가능하면 많은 물질을 소유하려고 애를 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모든 물질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될 것이기에 가능하면 많은 물질을 소유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창조의 능력이 있으시므로 만일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기에 눈에 보이는 물질에 나의 모든 것을 걸지 않게 되지 않을 것이다. 즉 물질이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
사탄의 경우 자신에게 모든 것들이 주어졌음에도 질투를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이 갖지 못한 단 한 가지 즉 하나님만이 다른 피조물들로부터 받으실 수 있는 경배의 대상되는 일이었다. 죄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고 이러한 욕망을 가진 일이 완전하게 창조함을 받았으나 불완전함에 이르게 된 이유이다.
따라서 다시 완전하게 되려면 이러한 정신을 버리면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창조주되심을 깨닫게 된다면 이러한 정신을 버릴 수 있게 된다.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 감탄하는 것까지는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하지만 그것을 꺾어서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죄이다. 이러한 탐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만이 받으실 영광을 자신이 받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죄는 창조주만이 받으실 수 있는 영광을 자신이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욕망을 우리도 가지고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욕망을 버리는 일만이 완전함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며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이것이 진리로 자유함을 얻는다는 말씀의 의미이다. 진리를 깨달으면 나의 죗된 본성을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를 따라 사는 일이 나의 죗된 본성을 따라 사는 일보다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기쁘고 좋은 일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결과로 내가 경험하게 된 일로 여태까지 죄의 본성대로 살았던 일과는 다른 차원의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또한 그토록 원하던 바였던 완전함에 속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죗된 본성으로는 완전함에 이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함에 이르지 못했으나 진리 안에 있을 때에 완전함에 속하게 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기에 죄를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이 단 한순간에 된다고 하여 그것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믿음을 유지하고 또 믿음을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죄의 유혹이 항상 나를 다시 삼키려고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육신이 죽기 전까지는 항상 선악의 싸움이 나의 안과 밖에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유지하는 한 그는 영적으로 완전함에 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