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
변질되었다면 회복은 당연히 가능한 것이다. 지구 역사가 6천년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70, 80, 혹은 100년에 불과하다. 긴 역사의
극히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한 나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 어차피
짧게 주어진 시간, 그것을 얼마나 조금 더 길 게 사는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값어치있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인생의 가치는 그 사람의 뇌세포에
간직된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다. 우리 몸의 세포 속에 있는
유전자는 우리가 가진 뜻에 확실하게 반응한다. 생각이 생명적이면
생명을 회복하는 모든 유전자가 깨어나 활발하게 움직인다. 생각이
사망적이면 사망의 방향으로 반응한다. 한 예로, 건강에 자신을 갖고 살
던 사람이 어느 날 불치병이란 진단을 받으면 그 순간부터 병상에 눕게되는
것을 우리의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사슴들의 무리에는
항상 군주격에 속하는 왕사슴이 있다. 체격도 크고 위엄이 넘치는 외모에
힘도 그 무리에서 최고이다. 혈액을 검사해보면 모든 다른 숫사슴보다
남성홀몬이 가장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젊은 수사슴들이 성장하면 본능적으로 왕초와 대결하여 그 자리를 빼앗고자한다. 젊은
혈기왕성한 사슴이 왕초에게 도전을 한다. 그 대결은 물고 뜯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두 뿔을 맞대고 누가 미느냐, 밀리느냐는 힘의
대결일 뿐이다. 다행스럽게 왕초가 이기면 아무런
변화는 없다. 그러나 왕초가 늙어 젊은 사슴에게 밀리면 즉시로 자신의
때는 지났다는 것을 자각하고 포기한다. 그 싸움이 끝난 후부터 왕초의
윤기있는 털은 빠지기 시작하고 얼마 안가서 병이 들거나 허약해져 죽어간다. 학자들은
싸움이 끝난 후 위엄을 잃고 허약해지는 한 때 왕초였던 사슴의 혈액을
검사해 보았다. 남성홀몬 분비가 급격히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더 이상 존재의 가치가 없어졌다는 생각으로 인해 모든
세포속의 유전자는 그 뜻에 반응하여 마땅히 생산해야할 홀몬과 생명에
필요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 유전자는 의미에 반응하고 필요에
반응한다. 나의 인생에 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뜻이며 내 삶의 존재가치를 잃으면 내 몸 속의
모든 유전자는 반응할 만한 필요도 의미도 찾지 못한다. 위의 두가지
예에서 우리는 내 자신의 삶의 의미를 갖는 것이 얼마나 내 생명에 중요한지
자각해야 한다.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의미를
발견케하는 힘은 곧 사랑이다. 모든 사실 속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이 사랑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소한 것에서부터 사랑의 마음을 갖고 표현해 보자. 즉시로
내 몸속에 나타나는 변화를 발견할 것이다. 그 변화를 계속적으로
맛보는 것이 유전자를 회복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먹고 자고 싸는 것 외에 뭐 있느냐"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우리가 인생의 가치를 사실에 그친다면
우리의 인생은 고기덩어리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가치는
그 한 줌의 고기덩어리의 값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자기의 인생에 관해 이런
위험한 평가를 내릴 때 우리 몸 속의 유전자는 아무런 생명적 활동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 의미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시한부 인생 판결을 받은 환자의 경우가 곧 그것이다. 그의
몸은 실제로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님에도 그는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에
정복당하고 만다.
모든 병의 원인이 유전자의 변질이라면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변질되었다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변질되기까지는
수년 혹은 10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정상 세포로 돌아오는데는
겨우 며칠, 혹은 몇 달밖에 안걸린다. 그런데 왜 우리 주변의 수많은
환자들이 그렇게까지 희망을 잃고 자신이 마치 이미 죽은 사람인냥 스스로
포기하는 걸까? 너무너무 안타깝다. 우리의 생명은 살기위해
창조되어있다. 우리 몸 속의 모든 기관과 세포를 연구하다보면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은 죽는 것이다. 살아 숨쉬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애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우리 몸의 생명력은
강하고 강하다.
왜 유전자가 변질되었을까 그 원인을
알면 회복이라는 것은 병드는 것 보다 10배 100배 더 쉽다. 그것이
우리 인체의 구조이며 운명이다. 아무리 나와같은 질병을 가진
사람이 수 천, 수 만명이 죽어갔다할지라도 그것은 통계학적 이론일
뿐이다. 아무리 통계학적 이론이 사실일지라도 100% 다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면 그 통계에서 벗어난 사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왜
불치병은 없다고 허위 주장을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따지는 사람도 그의 몸은 죽기보다는 사는 것이 더 쉽도록 형성된 동일한
몸을 가지고 있다. 단지 자각지 못할 뿐이며 알고자하지 않을
뿐이다. 스스로 사망적 생각과 사고에 집착하면
유전자는 그 의미에 반응한다. 그에 따라 오는 질병의
대표적인 예가 오늘날 수많은 형태로 나타나는 "자가면역병"이다. 그
병은 자신의 몸속에 있는 백혈구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여 망가뜨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 어떤 약을 먹어서, 아니면 어떤 치료제를 복용해서
치료할 것인가?
2002년 7월 18일자 의학전문지 Neuron에
소개된 한 논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선한 행동을 하면 뇌가
즐겁다. 사람이 서로간에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선한
행동"이 즐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세포는 선한
행동을 할 때 즐거운 느낌을 주는 엔돌핀이 생산되도록 설계되어있다. 그것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사람일수록
유전자가 정상에 가까운 사람이다. 선한 행동을 해도 엔돌핀이
나오지 않는 사람은 그 선한 행동에 잘못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자존심을 위한 선한 행동은 엔돌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늘날은 선한 행동에 대한 뜻이 왜곡되어 있다. 유전자가 변질되었다.
남을 속이고 유익을 취했을
때 엔돌핀이 나오고 기분이 좋다면 그의 세포속 유전자는 심각하게 변질되어
있다는 뜻이다. 거의 모든 질병의 원인이 유전자의
변질이라는 것이 20세기의 가장 큰 발견이다. 21세기에 사는 우리의
희망은 유전자를 바로잡는 것이다. 선한 행동을 할 때 기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건강은 세포와 유전자가 원래 설계대로
바로 잡힐 때 얻어지는 결과이다.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Time 2002. 5. 13일자 p.61) 쥐의 뇌에 미세한 전기자극을 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원격조정으로 오른쪽 수염의 촉각신경을 자극했을
때 오른쪽으로 가면 흥분을 느끼는 뇌신경을 자극하여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머리위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했고 송수신 장치와 안테나, 밧데리를
장착했다. 원격조정으로 학자들은 쥐의 머리위에
있는 카메라를 보면서 우측을 자극하고 그 반응으로 우측으로 가면 기분을 좋게
느끼게 해줬다. 얼마 안지나서 쥐는 한편의 자극이 있을 때 그 쪽으로 움직이면
기분이 좋다는 것을 경험했고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조정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뇌는 선한 행동을 하면 즐거움을
느끼도록 프로그램되어있다. 조정을 받는 쥐는 자신이 원격조정을
받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자기가 기분이 좋은 쪽으로 움직인다. 사람의
뇌와 몸은 선한 행동, 선한 생각, 선한 말을 할 때 즐거움을 느끼도록
처음부터 입력되어있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몸의 유전자가
변질되기 전의 상태는 그렇다.
유전자를 회복한다는 것은 마음과
육체의 근본적인 치료를 말한다. 유전자 과학에서 이미 입증된 바 유전자만
바로 잡히면 모든 병은 낫게 되어있다. 그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면
최고의 건강과 행복을 누리게 설계되어있다. 그러나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것은 누구나의 소원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갑자기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아름다운 점을 발견하고 사실에 그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감사한 점을 계속적으로 찾아내는 훈련을 해야한다. 유전자가 변질되었다면 다시 본래상태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의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는데는
사랑만큼 큰 힘이 없다. 사랑은 곧 진, 선, 미이다. 지금 눈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서 아름답고, 진실되고 선한 것을 찾아보자.
어색하다면 그만큼 내 유전자가 많이 변질되어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회복은 변질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암세포를 떼어내어
실험실에서 정상환경을 제공해주면 정상세포로 돌아온다. 항암치료없어도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정상세포로 되돌아오게 되어있다. 그것은 세포속의
유전자가 그렇게 되도록 처음부터 입력되어있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회복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유전자가 원하는대로 해주기만 하면 된다. 유전자가 변질되었다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유전자만 바로잡으면
불치의 병이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