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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02:03

나는 행복한 사람

조회 수 2628 추천 수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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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으로 귀촌한 것이 칠년 전이다.

30년 가까이 서울에서 살면서 한국의 도시 사람들 대다수가 걸린 빨리빨리 병이 걸려있을 때였다.

 

하긴, 살아가면서 빨리빨리 해서 좋은 것도 많다.

다림질은 빨리하는 것이 좋고, 잠은 빨리 자고 빨리 일어나는 것이 좋고, 쇠뿔도 단김에 빼는 것이 좋고... 등등등...

 

하지만 콩밥은 빨리 먹으면 배탈 나기 십상이요.

서두르는 놈 전대 놓고 가고, 성급한 놈이 술값 먼저 내고, 차가 과속하면 사고 나고, 공사가 과속하면 부실공사가 된다.

술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데는 한국 사람이 최고다.

그런데 그것도 느리다고 폭탄주를 만들어 마신다.

 

빨리빨리 병을 빗대는 속담도 있는데 “이 도령 글방의 방구들”이란 말이 있다.

숨 막히게 예쁜 춘향이를 보고 반한 이 도령이 자기 글방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방자를 불러 열다섯 번이나 시켜 해가 얼마나 기울었냐고 물어본다.

 

처마 밑에 걸렸습데다, 장독대 위에 걸렸습데다 하면 애가 탄 이 도령이 “이놈의 해가 오늘따라 앉은뱅이가 됐더냐,

왜 이다지 느리게 가느냐."면서 방바닥을 탁! 쳤더니 방구들이 확 뒤집혔다.

그래서 “이 도령 글방의 방구들”이 사랑마저도 단김에 빼려는 성급함을 빗대기에 이른 것이다.

 

제천에 와서 살면서 처음에는 참 답답했다.

동네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소주잔이라도 나누려고 약속을 할라치면 “그래요, 점심때 만나유.”

“지가 저녁답에 올라갈게 유.”라고 한다.

늘 몇 시 정각에 만나자고 약속하던 나는 뻘쭘해진다.

지금은 내가 그들처럼 되었다.

이게 참 여유롭고 사람이 사는 맛이 제대로 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쫄깃하고 사람사는 향기 짙은 생활을 하면서 친해진 친구들이 있다.

도시에서 20~30년 넘게 살다가 귀촌한 사람들이다.

귀촌하여 적어도 4~5년은 넘게 살면서 시골생활의 즐거움을 제대로 맛본 사람들이다.

이젠 도시에 가서 살라고 한다면 기겁을 하며 손사레를 칠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회원 수십 명의 콩깍지 만한 아주 작은 카페를 만들어 운영을 하는데 참 정겹다.

이들 중 가까이 사는 아홉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집에서 밥을 낸다.

가계에 부담이 안 갈 정도로 정성껏 차려내면 되는데 대부분 집에서 키운 농작물로 만든 웰빙 음식들이다.

이들 하나 하나 마음자리들도 찬물처럼 맑다. 

 

이들이 요즈음 내가 외로울 것이라며 내게 쏟아주는 정성이 참 살갑다 못해 징그럽(?)다.

낮에는 불러내서 밥 사주고, 술 사주고, 떡도 사고 같이 놀아도 준다.

촌구석에서 심심하게 살아보려고 겁도 없이 차를 없앤 나를 집으로 태우러 오고 데려다 준다.

또는 자기들 집에서 밥이며, 반찬이며, 국을 끓여오는 것도 모자라 그릇이랑 수저까지 가지고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밥도 먹어주고 놀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돌아간다.

오늘도 정선에 자리잡은 친구가 불러 목사님 따님 예은이 차를 빌려 타고 아귀찜을 먹고 놀다가 왔다.    

지난 2월 장례를 치루느라 황망할 때, 개 보름 쇠듯 지나갈 내 환갑도 이 양반들이 번듯하게 차려줬다.

무엇으로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어느 재벌그룹의 신입사원 모집광고가 신선한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서울역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걸어서 가본 사람.

차비를 몽땅 친구에게 주고 정작 본인은 걸어가 본 사람.

학교를 가다말고 무작정 여행을 가본 사람.

비오는 수요일에 장미꽃을 사본 사람… 을 채용하겠다는 광고였다.

 

이 재벌그룹 신입사원 입사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취직했던 사람들이 몽땅 이쪽으로 귀촌한 갑다.

그래서 내 친구가 되어 인정을 쏟으며 사는 갑다.

영월, 제천, 정선, 단양의 물이 좋아서 일까?

좌우당간 늙마에 이런 친구들을 만난 나는 무지하게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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