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다와 다르다)
福과 禍(화)는 言行에서 비롯되며 품성에 의한 선택으로 온다.
先人들은 사물이 복잡하게 뒤얶히거나 마음에 두 나(我 나아)가 충돌하는 상태를
葛藤(갈등)이라 하였다.
칡나무와 등나무는 덩굴성 식물로 다른 물체를 감아 오르며 살게 되어있다.
감아가는 방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충돌을 피하고 서로 살기 위한 相生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있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 또는 구성원이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삶이지만 그렇지 못할때가 많다.
人間事 不得不 충돌은 없었으면 좋겠으나 살다보면 일어나기 마련인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가의 방법이다.
충돌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에서 시작된다 즉 상대의 품성을 인정하지 않음이다.
이는 다툼과 미움과 증오심으로 나를 먼져 죽이고 그 후 상대를 친다.
틀리다가 아닌 “나와 너의 생각은 다르구나”의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상대를 인정하게 되어 존중과 배려로 나를, 너를, 또 모두를 살리는 놀라운 생명현상이 일어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실수는 하게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실수는 불가불이나
어떻게 풀어가냐에 따라 생과 사로 갈린다.
서로를 죽이는 고집과 불통은 자존심이며 “거짓 나”이다.
“진짜 나”는 먼저 무릎 꿇는 사람으로 먼저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린다.
거짓인 자존심을 지킬것이냐
“진짜 나”로 무릎을 꿇을것이냐!
미물(微物)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이랴!
선택은 자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강의 내용이 이상한 것은 이상한 것 입니다.
과거 강의 중에 fact와 truth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fact를 거짓? 정도로 표현한 기억이 저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fact는 그냥 fact이지 이것을 거짓이다.라고 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틀리다와 다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에서는 부분적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큰 덩어리 단위로 생각하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1. 모래알을 가지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반석의 단위로 생각하느냐
2. 지식의 나무관점에서 나누어서 생각하느냐, 아니면 생명의 나무 단위로 생각하느냐,
3. 무른 것만 먹을 수 있느냐, 아니면 단단한 것을 먹을 수 있느냐.
4. 고드란트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달란트 적인 사고 방식이냐
5. 헬라적 사고 방식이냐, 아니면 히브리적 사고방식이냐
6. 성경을 구절 단위로 직역을 하면서 읽느냐, 아니면 비유를 모든 것에 적용에서 느끼느냐
7. 등등
모두 거의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즉, 모든 것을 연결하여 생각하고 이해하고 느낄 때, 비로소 선을 이룬다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에서는 틀리다와 다르다의 의미로 말씀하지 않고 부분적이냐 그렇지 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에서는 함수라는 것이 있는데, f(x)를 어떤 문제의 답이라고 한다면...
f(x) = ax+bx +c 에서 변수를 얼마나 많이 집어 넣고 해답을 얻었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f(x) = c 값만 넣고 이것이 맞다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f(x) = a+b+c + d + e + ...... 거의 무한대로 변수를 넣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분이 더 하나님의 생각에 접근하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의 표현이, 여자가 그 여자가 아니고, 달란트가 그 달란트가 아니고, 동성애가 그 동성애가 아니고, 지옥이 그 지옥이 아니고, 사탄이 그 사탄이 아니고, 모든 것을 끊임없이 재 해석하고 느끼느냐가 바로 저희가 성경을 올바로 느끼기 위한 clue들이라고 봅니다.
선생님께서 파이토케이컬을 이것과 적용해서 이해하시고 느끼시면, 의학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를 더 잘 느끼시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