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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저는 암환자이면서 암환자이고 싶지 않은 그래서 모든것을 숨기고 싶기만 한 이제 37살 유방암환자입니다.

저는 2009년 4월 조직검사로 제가 유방암에 걸린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집안에 지병을 앓고 계시는 분이 한분도 없었기 때문에 항상 건강에 자신있었고, 조직검사를 의뢰해 놓고서도 의사샘에게 가슴을 보였다는 수치심만 생각하고 암일거라는 의심의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철부지 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조직검사후 일주일후 갑자기 친절해진 남편이 저녁에 저를 조용히 부르더라구요. 제 조직검사결과가 암이라고... 그때 그 기분은..이곳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너무나 잘 아시겠지요..

그당시 저에겐 6살 3살의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부산에 살고 있는데, 제 유방암진단을 내려준신 개인병원 샘께서 친절히 부산 종합병원에 pet ct를 의뢰해 주셨습니다.

pet ct를 찍고 결과를 보니 다행히 겨드랑이 임파선까지는 전이가 되지 않았답니다. 의사샘은 저보고 서울로 갈지 부산서 할지 결정하라고 하시더라구요.

남편은 처음에는 서울로 가자 해놓고 그 다음에는 애들이 어리니 부산서 치료를 받으면 어떻겠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산보다는 서울에서 치료를 받는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고, 그 다음날부터 서둘러 서울에 유명하다는 병원콜센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제 입으로 제가 암에 걸렸다고 얘기를 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지..저의 불쌍한 처지가 왜 하필 그분에게 와닿았는지 서울에 제일 유명한 유방외과샘께 3일만에 진료예약이 잡혔습니다.

그이후 남편은 저에게 앞으로 독한 치료가 남았으니 충분히 영양보충을 하라며 동네 유명하다는 고깃집을 돌며 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할것 없이 마구 사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할수록 어리석은 짓이였지요..

아무튼 어린 두 아이를 보살펴줄 가족이 없는 탓에 그 큰병원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온갖 검사를 다하고 의사샘께 조르고 졸라 10일만에 유방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지금 다시 유방절제 전으로 되돌릴수만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아무튼..그때는 그것이 최선인줄 알았고, 또 모든것이 속전속결로 이뤄지는 그 상황이 감사하고 저는 인생의 최고의 행운아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큰병원에 가면 유명한 선생님 수술일수록 한두달 기다려야 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외과수술을 마치고 나니 유방암3기 진단이 나왔습니다. 유방주변에 임파선에는 전이가 되었지만 다행히 겨드랑이쪽은 깨끗하다고 나왔고 다만 종양이 너무커서 3기란 진단이 나온거였지요.

아마..그때 남편이 사준 고기만 다 먹지 않았어도 2기일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후 종양내과에서 항암8번, 방사선25번의 처방이 떨어졌습니다.

항암 8번을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한주도 밀리지 않고 맞았습니다. 유방암 약은 다른 항암제보다 독해서 두번만에 온몸에 털이란 털은 다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젋은 나이에 가슴도 잃고 머리카락도 잃고 항상 거울속을 들여다보면 내가 아닌 내가 있었고 그런 모습에 하루에도 수십번 가족들이 보지 않는 곳에 숨어 눈물을 훔치고, 슬퍼할 가족들 친구들앞에서는 그 어떤 사람보다 밝고 명랑하게 제 자신을 숨기며 살았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사업을 병행하며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남편을 제가 항상 도와주고 있었기에 한번은 병원서 항암주사를 맞으면서 리포트를 같이 작성해주고 마치..혼자 영양제 맞듯 너무도 태연히 주사를 맞으니 주변에 있던 암환우 분들께서 도데체 무슨 암이길래 그렇게 멀쩡하냐며 신기해들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앞에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환자처럼 보이는것을 너무나 싫어하므로 병원갈때도 예쁘게 화장하고 예쁜옷입고 대기실에서도 남편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8번의 항암치료를 마쳤습니다.

그 후 종양사이즈가 너무 커서 기수가 높기때문에 2기(겨드랑이 전이 안된)이면 안할수도 있는 방사선 치료를 25번을 받으라는 처방이 내려졌는데 이때부터 주님의 인도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하필, 제가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때.. 제가 다니던 그 대학병원 방사선 기계가 말썽을 피우는 겁니다. 방사선 치료특성상 매일 치료를 받아야 효과가 있기때문에 종양내과 심께서는 원한다면 다른병원에서 방사선치료를 받아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저는 또 서울서 제일 유명하는 방사선과 샘들을 찾기 시작했고 그곳이 부산집과를 너무 멀어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며 요양할수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정말 우연한 계기로 경기도 모인근에 있는 S재활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병원에 가니 단지 요양만 하는것이 아니라 뉴스타트 프로그램을 하는곳이였고,  송소윤씨 (난소암을 뉴스타트를 통해 지료받은 분) 께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저를 기억하실듯...^^ 그렇듯.. 이상구 박사님은 안계셨지만 늘 티비모니터로 박사님 강의를 아침저녁으로 들었고(물론 선택사항) "걱정을 모두 덜어버리고서 스마일~스마일~ 스마일~~~~" 하는 노래도 매일 매일 불렀습니다.

저는 원래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결혼후 시댁이 천주교라 개종하고 천주교신자가 되었지만 사실 말만 신자일뿐이지 직장생활하며 신앙생활을 소홀히 한지라 20년 가까이된 냉담신자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항상 모니터 속의 이상구 박사님은 "암은 나을수 있다.."라고 하시며 계속,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겁니다.

물론 저는 나름 신앙인이였기에 거부감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박사님 말씀이 신기하기도 했고 일리가 있게 들리기도 하셨습니다.

그후 한달간의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저에게 또다시 클로미펜이라는 유방암 예방약 5년 복용이라는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그 약은 여성호르몬 억제제로서 2년쯤 먹었을때 몸에 부작용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몸 난소에 혹이 생기기도 일수요, 가슴 두근거림..기여코는 조금씩 탈모까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드시..전 다른건 다 참아도 환자라고 티내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성격탓에 탈모를 핑계로 약을 끊어 버렸습니다.

이건 사는 게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가슴 잃은것도 슬픈데 탈모까지 된다면 여자로써는 최악이였습니다. 사는 동안 인간답게 맘편하고 즐겁게 살고 싶은데 여자인 탓인지 보이는 것이 모두 절망이기 때문에 도저히 즐거운 맘이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암환자라는 것은 항상 맘이 힘들지 않습니까?

비록 치료를 다 받아도 소화가 안되면 내가 위암이면 어쩌지? 등이 아프면 폐암인가? 암튼..온갖 나쁜 상상이 다 되지요..

저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매일매일 호르몬억제제를 먹어도 암환자가 된이후 늘 불안을 달고 살았습니다..그런데 약조차 먹지 않으니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전에 왜 내가 암에 걸렸었는지 제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맘을 긍정적으로 갖으면 이게 뉴스타트지 하며 제 자신을 합리화 하고 매일매일을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커피도 마시고 수다떨며 맛난 음식 먹고(다만 육식은 자제) 즐겁게 즐겁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오고 무언가..탁 막히는 느낌이 드는 날들이 지속됐습니다..왠지..스스로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고 늘 하던 기초검사말고 pet ct검사라도 받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다시찾게된 동네병원..그곳 샘께서 호르몬제 안먹는다고 호통을 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그냥 혹시나 하는 맘에 pet ct를 찍게되었는데 그곳에서 흉막 전이 소견이 내려졌습니다.

흉막에 1cm안되는 전이 소견과 수술한 가슴 쪽으로 군데군데 전이소견을 보였습니다. 순간..두군거리는 맘을 진정시키며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다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늘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저는 그동안 겪었던 고통스러운 항암과 방사선치료를 재발하더라도 두번다시는 안할거라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래도 첫번째보단 충격이 덜했던것 같습니다. 아마 마음속으로 뉴스타트를 하면 되지 라는 배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후 제가 제일먼저 한것은 무조건 9시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물은 평상시 보다 조금 더 마시고, 제가 겁이 많은 탓에 혼자 산에 가는 걸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강변둔치 산책로를 매일 한시간씩 이상구박사님의 강의를 들으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참으로 이상한건 몸속에 암세포가 있다고 생각하니..요양병원서 들었던 강의보다 지금이순간 박사님의 말씀이 왜 이리 마음속에 절절이 와닿는지..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혼자 베실베실 웃다가 찬바람에 한시간동안 얼굴이 굳어버려 집에오면 얼굴에 팔자주름 잡히기도 일수였습니다.

아무튼..부산서 또다시 암세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부산에 계신 선생님께서 다시 서울병원으로 가라고 하셔서 서울병원에 진료예약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 마음이 급하진 안았습니다. 오히려 진료일을 늦추고 싶었습니다. 하루라도 더 집에서 뉴스타트를 하고 나면 맘이 편할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 규칙적으로  현미밥, 야채, 나물반찬, 물, 운동..긍정적 생각하기, 일찍 잠자리에 들기를  반복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 혼자 운동을 나가기 어려운 날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여자이고 엄마이기 때문에 혼자서 제 몸하나 돌보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여건입니다. 예전같은면 불평불만이였겠지만..이것조차 좋게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도 몸속에 암세포가 있다생각하니 불안하기는 했습니다. 그럴때마아 회복이야기도 틈틈히 들었습니다. 나도 나을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서울 병원에 가니 이건 암세포가 확실하다며 흉부쪽이므로 흉부CT검사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검사로 향후 방사선을 할지 항암을 할지 결정이 되겠지요..

CT검사 일정을 잡는데 왠지..최대한 늦게 찍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3년전 같았으면 다짜고짜 내일 당장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라도 그 이튿날이라도 당장 검사하자고 덤볐겠지만 한달의 여유를 두고 예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일찍자고 햇빛쬐고...

 특히나 신기한건  불안할 때마다 운동하니 점점 마음이 긍정적이 되었습니다.

잡생각이 날때는 책을 읽거나 성서도 읽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문득..드는 생각중에는.. '그래..나라고 뭐 특별해..다른사람들도 나을수 있다면 나도 나을수 있어..','그까짓 1cm.. 내몸뚱이가 이렇게 큰데 설마 그녀석들이 내 정상세포를 이길수 있겠어?..'. 또..'만약 암세포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남편을 어떻게 설득해서 치료를 거부하지..?' 등등..여러가지 생각이였습니다.

어느새 한달이 지나 병원에서 갖은 검사를 마치고 일주일 후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긴장된 맘으로 진료실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생각이 드는겁니다.

"주님..제 몸에 암세포가 없어지면 제일 좋겠지만  다 없어지지 않는데도 좋을것 같습니다. 이렇듯 몸에 암세포가 있다고 하니 더 열심히 살아지고 뉴스타트도 열심히 하는데 만약 암세포가 없다면 제가 또 나태해 지지 않겠습니까? 어떤 결과든 겸허히 받아들겠습니다..그래도 주님께서 낳게 해 주시겠다면 우리 남편앞에서 당당히 주님께서 저를 살리셨다 고백하겠습니다" 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의 남편은 무신론자이며 너무 아는것이 많은터라 과학이외의 것들을 믿지 못하는 똑똑한(?)사람이이기에..제가 이번을 계기로 주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고픈맘도 사실 있었습니다..ㅋ

그렇게 선생님 앞에 결과를 기다리고 앉았습니다.

그런데..선생님께서..CT결과..아무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종양의 흔적도 없다 하셨습니다.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일이 제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순간 그 짜릿함이란..

그러면서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부산에서 검사했던 pet ct를 다시 봐야겠다는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있던 종양이 없어지니..선생님께서는 그 답을 구해내지 못하시더라구요..

다만 저혼자 알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진료실밖 방문을 열고 나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도 밖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던 많은 환우분들은..애구..애꿎은 젊은 새댁도 암진단 받았구만..하셨겠지요..

그리고 나서 남편에게 당당히 얘기했습니다.."여보..주님이 나를 살리셨어..나에게도 기적이 있어났어!!!!" 하구요..

남편도 울더라구요..말은 못햇지만 전날 밤잠을 설칠정도로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그날 저녁 늦은 기차를 타고 집에오니 맛있는 시라국(사투리)을 끓여놨더라구요.

그러면서 저를 꼭 안아주며..'의사보다 더 나은 우리 마누라..'라고 말해주었답니다. 지금도 너무나 이모든 상황을 신기해 하는 남편...

너무 똑똑한(?) 사람이기에 저에게 이런말도 합니다..

"너랑 야채랑 참 궁합이 잘 맞나봐.."ㅋㅋ

아무래도 이 공로를 채식으로 돌리고 싶은 모양입니다.

오늘도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기운가득한 매일매일이 제삶에 찾아온것처럼 이곳을 집처럼 들고나시는 모든 환우님들에게도 이 기운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부산에서 진단 내려주신 샘은 이결과를 모르시는데 있던 암세포가 없어졌다하면 표정이 어떠실런지..

오죽하면 남편에게 "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너라도 건강해야지.."하셨다는데..이젠 제가 세식구 건강을  옆에서 평생 뒷바라지 할겁니다..

뉴스타트와 함께요..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이상구 박사님께 다시한번 감사말씀드립니다.

한번도 뵌적 없지만 두손꼭 잡고 꼭한번 안아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사랑합니다..박사님..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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