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내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은 누군가 그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첫 길이 되어 준 사람
시의 길을 열어 준 사람
믿음의 길을 열어 준 사람
사랑의 눈을 뜨게 해 준 사람
저 깊은 심해에서 수면으로 끌어 수평선을 보여 준 사람
난 누구에게 어떤 길을 보여주고 있을까
비닐하우스 문을 연다
지금은 일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귤나무들
머리 위론 겨울바람이 비닐에 베이는 소리
작년 접목순들이 내 키만큼 자랐다
줄을 메어 눕히고 사방으로 길 내어주면
그 길 따라 다른 가지들 솟아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가겠지
누군가에게 길을 내어주는 사람
보이지 않는 것을 있는 것 처럼 보여주는 사람
이 봄 나의 기도는 보이지 않는 길을 열어 다시 힘차게 날을 수 있도록 어두운 밤을 지키는 일입니다
봄이 오면 그대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열고 싶습니다
낡은 신발을 끌고 저 끝까지 걸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