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심판과 구원의 확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안식일 교단의 주장이다)
“재림 전에 인간의 품성을 조사하는 소위 조사심판이 끝나면 의인과 악인이 결정되고,
의인들의 모든 죄가 하늘 기록책에서 도말되어 거룩한 자들로 구별됩니다.
그 조사심판이 마치기 전에 정결(품성이 완전)하게 되었다는 확인을 받고나서 마침내 성령이 인쳐주시는 인을 받습니다.
품성의 완전 -> 조사심판 -> 완전한 품성을 확인 받음-> 죄의 도말받음 -> 인치심 ->부활(재림) -> 승천
1844년부터 시작했다는 조사심판이 있다면
화잇은 성도들의 부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죽은 의인들은 (조사)심판 때에 생명의 부활에 합당한 자라는 선고를 받고서야 비로소 부활하게 될 것이다.(쟁투 482)
위의 화잇의 글이 옳다면,
아직도 그 누구도 구원을 확정하는 “인을 받고” 잠든 성도들이 이 세상에 한사람도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성도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성령으로 확증을 주시는 인을 받지 못하고,
성령이 주시는 구원의 확신도 없이 잠들(죽)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서기 31년에 십자가에서 외치셨을 때에
땅이 터지면서
많은 성도들이 부활하여였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승천하여 하늘 거룩한 성에 도착하였다.
마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마27: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그당시에 부활한 성도들은 1844년에 시작한다는조사심판과는 상관없이, 품성의 확인과정 없이 천국으로 승천하였다.
그들은 생존시(구약시대)에 분명히 성령으로 인을 받았고 그들의 죄가 도말되었음을 믿고 죽은 자들이다.
1844년의 조사심판과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구원이 확정 되었음을 믿었 때문에 부활한 것이다.
만약 그들의 죄가 믿음으로 도말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절대로 부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식일 교단이 가르치는 조사심판 교리에 따르면, 1844년에 시갇하여 재림직전까지 행하여지는
조사심판, 곧 품성의 확인을 받지 않은 자는 그 누구도 부활할 수 있는 자격과 하나님의 인을 받아
구원이 확정되지 전에는 그 누구도 부활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그렇다면 서기 33년에 일어난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부활할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요약하면,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성도들은 조사심판을 통과하여 인을 받지도 않았고
조사심판을 통하여 죄가 도말되지도 않았고, 구원이 확정되지 않았던 성도들이다.
사실상 조사심판이 시작하기도(1844년) 전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성도들이 조사심판이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구원이 확정되어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부활 승천하였다는 사실은
조사심판이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안식일 교회만의 교리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완벽한 증거이다.
사도 바울도 위의 조사심판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다.
고후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엡1:13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위의 엡1:13절의 말씀을 설명하면,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은혜로 모든 죄인을 구원하셨다는 “복음”을 듣게 하셨다. 그리고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고,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셔서 믿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하는 인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인을 쳐주시고 의롭게 하셨다. 그리고 매일매일 성령을 주시어 말씀을 더 깊이 깨닫게 하시어 주신 구원의 확신(믿음)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게 하여주신다. 그 결과 일곱 번(완전히) 넘어질지라도 (은혜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나는 인을 받은 의인으로서 다시 사단과 투쟁하며 믿음으로 힘을 받아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복음을 아는 것이 힘이요 인 쳐주셨을 믿는 것이 힘이기 때문이다.
만약 화잇의 조사심판의 주장대로, 조사결과 완전한 품성을 가진 자라고 확인되어야 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조사심판이 옳다면, 자가의 품성이 아직도 자격미달임을 인정하는 성도들이 “나는 인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확정 되었다”라고 믿게 하는 성령이 주시는 믿음, 곧 구원의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조사심판교리를 믿는 안식일 교인들이 가질 수 있는 구원의 확신은 자기의 품성은 완전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가르침은 재림교인들로 하여금 믿음을 주시려는 성령을 거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실 수 없고 성령을 받지 못한 교회는 철저히 라오디게아로 타락하여 영적 뜨거움이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바울은 “너희”, 곧 성도들을 향하여, (조사심판으로 그들의 죄가 도말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인치심을 받았다”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인 치심”으로 영생을 먼저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확정하여 주셔야만,
그 인 쳐주신 성령의 역사로, 나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되고
그 믿음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성화가 시작되어
흠이 없어지도록(엡1:4) 하여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울과 온 성경의 가르치는 은혜로 구원받는 그리스도의 길이다.
내가 아직도 인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롬4:5)
하나님이 나를 “인 쳐주심”은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주신 구원을 내가 믿음으로 받아드리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 갈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구원의 길이 곧 그리스도의 길이다.
이 그리스도의 길만이
인 받을 자격이 없는 나 같은 죄인이
오직 성령이 주신 믿음으로 성화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인치시고 구원하신 것은
그분의 은혜로, 무조건적 사랑으로 주시는 위대한 선물이다.
그 선물은
하나님이 나 같은 흠투성이 죄인의 흠을 없게 하시려는
성화라는 당신의 목표를 달성하시기 위하여 주시는 첫 선물이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삶,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된다.
이것이 바울의 인치심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화잇은 위의 바울처럼 가르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수정하여 성도들에게 선언할 것이다.
“너희들은 바울의 말처럼, 아직도 품성이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인쳐주셨음을 믿음으로 받는다는 글자 그대로의 가르침을 받아드리지 말라, 그 바울이 말한 것의 본뜻은 너희의 품성이 완성되면 조사심판에서 조사하여 죄를 도말한 후에 인을 쳐주실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인을 받고 싶으면 우선 성화에 전력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품성을 조사하여 한 점의 흠이라도 발견되면 절대로 인을 쳐주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사도 바울은 조사심판을 몰랐거나 잊어버렸거나 알고도 무시해버렸을까? 바울이 몰랐던 조사심판을 화잇이 깨달았다면 화잇은 사도 바울보다 차원이 높은, 성경 위에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사도 바울도 완전하지 못한 인간임을 시인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죄인의 괴수” “매일 죽어야 하는 죄인”(고전15:11) “온전히 이루지 못한 죄인”(빌3:12)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할 것이 없는 죄인”(고후12:5) “아직도 사단의 가시가 있는 죄인”(고후12:7) “아직도 속에 죄가 거하는 죄인”(롬7:17) “아직도 예수께 완전히 잡히지 못한 죄인”(빌3:12)에 불과한 초라하며 부족한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인을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임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던 살인자 사울이, 그리스도를 만났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성화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폭력적 살인자인 자기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분의 사랑의 품에 안기라고 호소하신 것이다. 사울은 그 성령의 호소를 선택하고 그분의 사랑의 품에 안겨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바울의 품성이 완전할 때까지 기다리시지 않았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도 “너희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가르쳤다.
그 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십자가에서 지신을 제물로 단번에 드린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는 “믿음으로” 그는 이미, “거룩하고 온전하게 된 자”(히10:10,14)요 “의롭고 거룩하고 영화롭게 된 자”(롬8:30)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하늘의 상속자”(롬8:17)요 또 “시온 산과 하늘 예루살렘에 도달한 자”(히12:22)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히12:22]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you have come to)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이런 바울의 글을 보면,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놀라운 믿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직도 이 땅위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너희는 하늘 시온 산과 하늘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고 믿고 담대히 기록하여 가르칠 수가 있을까! 정말로 그는 그가 “바라는 것의 실상”을 현실적으로 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가 기록한 대로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바로 이런 믿음을 가졌던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진정 성령이 오셔야만 가질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참 믿음이다.
이런 참 믿음은 그리스도 밖에서는 가질 수 없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황당한 환상에 불과하다.
필자도 이런 바울이 가졌던 그 미친 것 같은 황당한? 믿음을 간구하고 있다.
실제로 베스도는 바울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26:24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행26:25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이런 미친 취급을 받는 상황에 있었던 바울의 마음, 눈꼽만큼은 이해가 간다. 세상의 부요를 안겨주는 병원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간 아들을 향하여 나의 어머니는 미쳤다고 통곡하시며 내 아들 빼앗아 간 하나님을 저주하시고 앓아 누우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내게 믿음을 주셧다. 어머니도 이 아들이 만난 하나님을 만나실 것이라고, 7년 후에 그 어머니도 아들과 함께 미치시어 그토록 저주하시던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만약 나도 바울이 가진 그 만큼의 믿음을 가지게 되면 바울이 가졌던 그 기쁨과 감사와 감동이 넘치면서 어린 양이 이끄는 대로, 저절로 이 교만하고 까칠한 품성에 변화가 일어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성화는 사랑의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지는 것이다. 강조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인침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서 성화를 강조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 밖으로 밀려나가고 믿음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고? 조건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그 놀라운 성령의 감동으로 우러나서 이루어지는 성화가 아니라면 결국 나 자신의 육적 행함에 불과하고 그것은 사단이 조정하고 있는 죗된 동기로 노력하는 성화이기 때문이다.
롬14:23 ~믿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행위는 모두 다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품성이 완전하여져서 조사심판을 통과하여 죄의 도말이 되면 인을 쳐주신다는 조사심판의 가르침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 밖에서도, 성령이 없어도 충분히 육적으로, 지적으로 납득하고 동의할 수 있는 세상의 논리요 죄 많은 인간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만 믿음이 가능한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는 아니다,
인치심을 받는 때와 영생을 가지는 때
인치심을 조사심판이 끝난 때에 받는다는 조사심판 교라는 영생도 조사심판이 끝난 때에 받는다고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우리는 그 때에 (재림 때에) 보다 높은 속성(영생)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미래시제).(원고 36, 1906).(3기별, 427)
그러나 놀랍게도
시대의 소망에서는 영생의 시작점에 대한 화잇의 견해가 확 달라졌다.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소망 388)
그리스도를 그 진정한 품성 그대로 보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들은 영생을 얻는(가졌)다.(have everlasting life.(DA 388,1)
그렇다, 영생의 시작은 성령의 역사로 주시는 믿음으로 곧 성령으로부터 하나님의 인을 받은 때부터이다.
재림 때가 아니다. 마침내 화잇도 인치심을 받는 때가 재림의 때가 아니리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이며, 믿음으로 마음에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이
영생의 시작이 된다.(소망 388) - 분명히 조사심판 교리와는 상반된다.
그러나 너무나 이상한 것은
1888년 이후의에 기록한 화잇의 글에도 여전히 조사심판을 주장하는 오류가 삭제되지 않고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바울의 인, 화잇의 인을 계시록으로 검정하여 보자.
재림교회가 주장하는 다섯째 나팔의 “다섯 달(150년)의 기간이 674년 ~ 823년까지 또는 1299년~ 1449년까지라고 가르친다. 이 150년 동안 이슬람세력이 동로마제국을 괴롭혔고 멸망시켰다. 그러나 인 맞지 않은 사람들만 괴롭히도록 다음과 같이 허락받았다.
계9: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러나 이 기간은 1844년에 시작된다는 조사심판은 아직도 시작되지도 않은 때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는 품성에 한 점의 흠도 없게 되어 죄의 도말을 받고 하나님의 인을 받을 수 있는 검증을 받을 수 있는 1844년 이전이다. 그러나 계시록은 그 당시(1449년 니전에도 (바울이 가르치는)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사심판 교리와는 정반대이다. 만약 1844년그 당시에 인 맞은 사람은 없었다면, 성령께서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허락을 하실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안식일 교회는 십자가의 복음과 상반되는 조사심판을 주장하는 화잇의 글(대쟁투, 초기문집 등)과,
조사심판이 없이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성경적 복음대로 기록한 기록(시대의 소망)을
동시에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동시에 옳다고 믿고 받아들이고 있는 영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교단이다. - 라는 결곤에 도달하였습니다. 그외에도 여러 교리상의 오류를 발견하였습니다. 더 상세히 알고 싶으시면 뉴스타트 성경교실에 들어가셔서 80번 글부터 90번 글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