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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명'의 정확한 정의를 알아야한다.

인류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모르면서, 오해하며 살아오고 있다. 물이 생명이라든가 산소가 생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이 정말 생명인가? 산소가 과연 생명인가? 아니다. 이런 것들은 생명을 도와주는 물질에 불과하다. 생명은 물질이 아니다. 생명은 에너지이다. 그래서 생명을 생명력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력이 넘친다" 느니, "생명이 없다"라는 말을 쓴다.

우리는 모기 한 마리를 죽이는 것을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고 흔히 말한다. 모기가 생명인가?, 아니다 모기는 모기라고 불리우는 생명체의 일종에 불과하다. 생명은 생명체 속으로 들어와서 그 생명체로 하여금 생명현상을 일으키며 살아 가도록하는 에너지, 곧 생명력이다. 그러므로 모기가 죽었다는 뜻은 모기라는 생명체가 파괴되어 생명을 받을 수가 없게 되어 생명현상이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생명체 속으로 들어오던 생명은 죽지 않은 것이다. 생명은 죽일 수없는 영원한 에너지인 것이다.

우리는 '생명', '생명체', 그리고 '생명현상'을 확실히 따로 각각 구분하여 생각할 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생명'의 올바른 정의를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음의 질병이든 몸의 질병이든 모든 질병은 생명체 속에 일어나는 반생명적인 현상이다. 모든 사망적인 반생명적인 현상은 '생명'만으로 생명적으로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다.

'생명'의 정확한 정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질병의 참된 치유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마음)치유와 육체(몸)의 치유가 생명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마치 서로 다른 영역인 것처럼 서로 분리되어버린 것이다.


뉴스타트는 '생명'을 생활 속에서 체험하여 알게 하는 삶이다, 또 생명을 체험하여 알면 영적치유, 곧 마음의 치유와 몸의 치유가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니라 동일한 영역인 것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영적치유를 이루는 길과 육체의 치유를 이루는 길이 놀랍게도 동일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질병의 의학적 '치료'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적 '치유'를 알게 하는 삶이 뉴스타트이다.


생명과 자연치유력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생명을 올바로 이해하면 생명과 치유의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뉴스타트는 유전자의 반생명적 변질로 발생된 질병을 유전자의 생명적 회복을 이루게 하여 치유에 도달하는 것을목표로 하고 있다. 이 유전자의 완전한 생명적 회복은 현재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룰 수가 없다. 그렇다면 뉴스타트는 어떻게 이 변질된 유전자들의 회복을 이루려고 하는가? 우선 이 우주에 반생명적으로 변질된 유전자를 생명적으로 회복시키는 에너지가 존재해야만 인간이 회복시키지 못하는 유전자의 변질을 회복시킬 수 있는 소위 "자연치유"의 가능성이 있게 된다. 이러한 유전자의 생명적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를 우선 "자연치유력"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 자연 치유력이 생명력일까? 따라서 뉴스타트는 이 자연치유력으로 치유를 이루는 생명적인 생활습관으로 살아가는 새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과연 자연 치유력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유전자에 일어난 반생명적인 현상을 생명적으로 회복시키는 에너지인 생명력이 곧  자연치유력이며 그리고 이 자연치유력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어야 뉴스타트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주지능(우주의식)  초인간적 지능

인간의 몸속에 병균이 침투하면 본인은 그 병균이 침투한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무의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유전자 작동이 이루어지면서 면역체계가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첫째, 혈관 속에 있는 T-임파구와 B-임파구들을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이동유전자들을 비활성화 된 상태로부터 활성화시켜서 정확히 순서대로 작동시키셔서 혈관 밖에 병균이 들어 온 곳으로 이동시키시고, 둘째, 병균이 있는 지점에 도착한 T-임파구들은 그 T-임파구들 속의 특정 유전자를 작동시켜 항체생산 촉진물질들을 생산하여 B-임파구에게로 전달하여 주어B-임파구로 하여금 항체를 생산하게 한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것은 병균에 침투당한 장본인은 자기의 몸속에서 이러한 복잡한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모르고 있다. 그리고 어떠한 종류의 병균인지도 전혀 모르지만, 그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는 수 천 종류가 넘는 병균들 중에서 그 병균에게만 정확하게 맞는 맞춤형 항체가 B-임파구로부터 생산이 되도록, 그 B-임파구 속의 항체생산 유전자들이 작동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의식이나 지식이나 능력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그리고 너무나 복잡하며 너무나 지능적인 어떤 제 3의 의식이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활동하여 생명체들의 생명현상을 유지시키는 유전자 작동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고도의 초인간적인 차원의 지능적인 의식을 무신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우주의식, 혹은 우주지능이라고 부른다.


우주지능은 에너지인가?

그러나 이러한 우주지능, 곧 '지능'만으로는 유전자가 작동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유전자들은 핵산(DNA)이라는 화학물질로 형성되어 있고 이 화학물질들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로부터 공급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가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는 핵산의 구조에 변화를 이러나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유전자에는 그들을 켜고 커는 스윗치가 있다. 이러한 각종의 여러 다른 유전자들의 스윗치들을 조화롭게 진동시키어 각종 기능들을 가진 유전자들을 지능적으로 활성화시키려면 에너지 이외에 또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지능이다. 현재 인간이 가진 지능보다는 월등한 지능이 필요하다. 생명의 유지에는 현재의 인간적인 지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에너지가 초인간적인 지능으로 작동되는 것이 생명유지에 필요하다. 따라서 생명유지에는 초인간적인 지능신비로운 에너지의 존재가 동시에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는 생명체의 모든 구조와 작동방법을 알고 있는 존재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과 환경에 대처할 수 있고, 또 타이밍까지도 정확하게 측정하여 조절하는 능력을 갖춘 존재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초능력적인 존재를 우주적지능이라고 부른다면, 그리고 이 우주지능이 핵산으로 구성된 유전자를 생명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이 우주지능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즉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동시에 모든 것을 작동할 수 있는 능력, 곧 에너지를 가진 존재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전지전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야한다. 이러한 존재를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무신론적 과학자들이 부르는 이 우주지능이라는 것은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생명체와 그 생명체들의 초인적인 지능을 요구하는 신비스러울 만큼 복잡한 운영방법을 알고 계신 분이라면 그 하나님은 그 생명체를 창조하신 존재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무신론적 우주지능이나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충분히 일치하는 개념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주만이생명체의 상세한 구조와 작동원리를 알고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에너지 - 생명

생명체의 구조는 인간이 창조할 수 없는 고차원적 구조이다. 인간과학자들은 아직도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단 한개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이렇게 초인간적 차원의 구조, 곧 우주적차원, 또는 창조주의 차원의 구조인 생명체는 그 구조를 작동시키는 초인간적인 지능과 인간이 만들어 낼 수없는 초인간적인 신비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기계적인 무생명체들에 불과한 전기제품들은 기계적인 전기에너지 정도의 저차원적인 에너지만 있으면 충분히 작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인간이 창조할 수 없는 창조주차원의 생명체라는 특수하고 복잡한 구조를 작동시키려면 전기에너지 정도로는 불가능하다. 전기에너지는 인간이 발전할 수도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생명체를 자동시키는 이 에너지는 인간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생산해낼 수도 없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으로는 측정할 수 있는 차원의 에너지가 아니다. 그리고 창조주가 아니면 생산해낼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를 생명에너지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이 생명에너지를 흔히 생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차원이 아닌 창조주 차원의 에너지, 곧 생명에너지라야만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구조, 곧 창조주만이 만들 수 있는 구조인 생명체를 작동시킬 수 있다.

생명체가 작동하며 살아있기 위해서는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세포들 속에 존재하는 각종 유전자들을 조절하며 작동시키는 지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또 자동차의 엔진 속에서 휘발유를 연소시킬 때에 전기 스파크가 필요한 것처럼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 속에서 당분을 연소시키는 에너지도 전기에너지 차원을 훨씬 능가하는 생명에너지(스파크)인 것이다. 바로 이 생명에너지가 곧 생명력이며 이 생명력이 인간에게 곧 “생명”이 되는 것이다.


생명과 생명현상을 구별해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명에너지와 단백질구조에 불과한 생명체와는 분명히 구별해서 이해하여야 한다. 이 '생명력'이 '생명체'라는 구조물 속으로 들어가서 작용하여 일어나는 현상, 곤 반응을 '생명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생명현상, 그 자체가 생명이 아닌 것이다. 현재, 이 세상에서는 생명체나 생명현상, 그 자체까지도 한꺼번에 생명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에 ‘생명’의 정확한 정의가 없다. 따라서 과학자들에게는 생명의 그 명확한 정체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적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가장 보편적인 생명에 대한 과학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Life is a set of complex electro-chemical reaction" (생명은 어떤 복합적인 전기적 화학적 반응이다. 이 말을 더 줄이면 ”Life is Reaction,“ 즉 생명은 반응이다.) - 즉, 생명체라는 구조물을 작동하게 하는 생명에너지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 속에서 일어나는 전기, 화학적 반응, 그 자체를 생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복잡한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 반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하는데, 이 에너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왜 무신론적 과학자들은 에너지 차원에서 생명에너지, 곧 생명을 정의할 수가 없을까?


전기제품과 생명제품

전기가 역할을 하여 작동하게 하는 구조물을 ‘전기제품’이라고 부르듯이 세포는 생명이라는 에너지가 들어가서 작동시키는 구조물이므로 생명에너지제품, 곧 ‘생기(생명)제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생기제품을 곧 생명체라고 부른다. 전기제품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전기제품에는 전기를 계속 끊임없이 공급해야만 전기현상이 유지되고 작동상태가 계속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생명제품인 생명체는 생명에너지를 끊임없이 계속 공급받아야만 생명현상이 유지되어 살아있을 수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생명체라는 구조물 속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지능으로 도저히 낱낱이 밝혀낼 수도 없이 엄청나게 복잡한 초 지능적 반응을 일으키어 생명현상을 유지시킬 수 있는 에너지는 생명에너지일 수밖에 없다. 이 생명에너지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초인간적 에너지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생명에너지는 어떤 종류의 에너지이며 그 본질은 무엇일까?, 그리고 생명체 속에서 그렇게 복잡한 생명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것은 세포 자체 내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전기제품인 텔레비전 자신이 스스로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전기에너지는 발전소에서 공급된다. 그렇다면 생명에너지의 발전소는 어디일까?

지금까지도 생명체와 생명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생명과 생명현상이 동일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견해는 마치 전기(전파)와 텔레비전세트가 동일하다고 보는 것과 다름없는 너무나 비과학적인 견해이다.

생명을 전기-화학적 반응 그 자체로 보는 이러한 견해는 생명체에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생명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또 그런 에너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은 마치 텔레비전이 전기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전기의 존재를 부인하고 또 더 나아가서 발전소가 존재한다는 사실까지도 부인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생기(생명력)의 본질은 무엇일까?

전기가 끊어지면 전기제품인 텔레비젼이 꺼진다. 생기제품인 인간에게 생기가 부족하게 공급되면 "기가 죽었다"고 말하고, 생기의 공급이 충분하면 "기가 차다" 또는 "원기왕성하다" 라고 말한다. 흥미 있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더 흥미 있는 표현은, 만약 생기가 막힐 때에는 "기가 막힌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기가 완전히 막히여 기의 공급이 'D어지면 생기제품이 잠간 꺼지는 것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곧 기절한다. 여기서 정신을 잃는다는 말도 역시 생명(생기)을 잃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생기의 공급을 막는 어떤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절한다는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생기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 생기의 공급을 막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 생기의 공급을 막는 것은 무었일까?

인간은 극악한 상황에서 기절할 수 있다. 즉 악이 생기를 막는다고 말할 수 있다. 악이 막는 것은 선이다. 그러므로 선이 생기의 본질이다.

또 너무나 신뢰하던 친구로부터 사기를 당한 경우, 곧 거짓이 생기를 막아 기절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거짓에 의하여 막히는 진실이 생기의 본질이다.

또 극도의 더러움, 아니꼬움이 기절하게 할 수도 있다. 더러움이 막는 것은 미(아름다움)이다.

결론적으로 진, 선, 미는 우리의 유전전자들을 작동시키어 엔도르핀 등의 행복물질들을 생산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진선미는 뜻 중에서 가장 생명적인 뜻이다. 그리고 진선미는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할 때에 진선미가 넘치기 때문에 생기가 넘친다.


생기는 절대적 사랑, 선택의 자유를 주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생기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분노와 증오심은 생기를 막고 그 반대로 살기를 발하게 한다. 이 살기는 생명력과는 정반대로 유전자에 사망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과 희망을 가지면 생기가 왕성해지고 의심하고 절망하면 생기가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생기의 본질은 진,선,미이며 믿음, 소망, 사랑을 통하여 받아드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진, 선, 미의 극치는 극치의 생기이며 이 극치의 생기는 극치의 사랑으로부터 주어진다. 사랑 중에 지고의 극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극치의 사랑이 바로 십자가에서 나타난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절대적 사랑이다. 절대적 사랑은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는 사랑이다.


생기와 창조

전기제품은 만들어진 것, 곧 창조된 것이다. 전기제품의 탄생은 전기의 존재가 선결조건이다. 전기가 없는데 어떻게 전기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전기가 존재하면 전기제품들은 반드시 창조되어야만 전기의 존재의미가 존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생기제품인 생명체들이 창조된 이유도 생기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기제품인 인간이 만들어져야만 생기의 존재의미가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전기나 생기는 존재하는데 그 전기나 생기가 활동할 수 있고 그 존재를 나타낼 수 있는 제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기나 생기의 존재자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생기의 존재는 창조의 필연성을 이미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기는 창조력인 것이다.

그리고 창조하는 에너지는 사랑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을 줄 대상이 필요하다. 만약 사랑이 그 사랑을 줄 때상이 없다면 그 사랑은 존재해야될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절대적 사랑은 창조력이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 속에 창조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글자인 염기서열로서 초인간적인 지능으로 창조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생명유지프로그램으로서의 유전자가 입력되어 있다면 인간은 초인간적인 존재에 의하여 창조된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창조주는 왜 창조했을까? 그 이유는 창조주인 하나님이 절대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주어야만 사라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랑은 줄 때에 가장 행복하다. 이러한 절대적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은 사랑을 줄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하여 절대적인 선택의 자유를 주셔야 했다. 그리고 선택의 자유를 준 결과 인간은 이 절대적 사랑을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부함으로써 생명을 거부하게 될 가능성을 하나님은 미리 예견하실 수도 있었다. 그결과 인간에게 사망현상이 일어날 것도 예견하신 것이다.

자기의 절대적 사랑, 곧 생명을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더 주시고 싶어 하시는 조건 없는 사랑이신 분만이 인간의 배반을 예견하시면서도 미리 용서하시고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는 창조주 스스로 이미 창세전에 인간의 죄의 값을 대신 갚으시는 분이신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그러므로 절대적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창조력인 것이다.


엡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조력이 자연 치유력이다

질병이 발생했을 때에 인간은 그 질병으로 말미암은 여러 불편하고 괴로운 증세들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치료"는 해줄 수가 있으나 그 질병 자체를 완전히 "치유"해줄 수는 없다. 치유는 사망적으로 변질되고 망가진 인간의 몸을 다시 생명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적인 회복으로서의 치유는 새로운 재창조를 요구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 자신들의 지식이나 기술로는 창조주가 창조한 몸을 회복시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치유는 창조주의 창조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창조력이 곧 자연치유력이며 생명(생기)인 것이다.


               절대적 사랑

                   ↙

           창조력 자연치유력


진정한 참 치유는 재창조의 과정과 동일하므로 창조주만이 자기의 피조물을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치유되는 것을 자연 치유이며 참 치유라고 한다. 이러한 재창조로서의 참치유, 곧 자연치유를 위해서는 창조주 차원의 에너지와 지능(지혜)이 필요하다. 바로 그 신비로운 에너지와 초인간적인 지능, 곧 생명에너지, 다시 말하여 생기가 자연치유력인 것이다.

뉴스타트는 창조주만이 그분의 생기(자연치유력)로 치유하실 수 있음을 피조물인 병든 인간이 체험하게 하는 새로운 삶인 것이다. 질병의 회복을 실질적으로 새로운 삶을 통하여 체험하게 되면 마침내 인간들은 창조주와 피조물로서의 인간과의 관계를 확실히 올바로 정립하여 알게 하게는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뉴스타트는 질병의 "치유"를 한계점이 이미 들어 나버린 인간의 기술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연계의 "치유력"으로 치유를 받아가는 삶 그 자체이다. 이 자연계의 치유력은 곧 창조주의 능력이다. 이 책은 자연계이 치유력의 존재와 이 치유력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만이 아닌 과학적인 차원으로 점점 더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증명해 나갈 것이다.

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치유력인가? 그 이유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창조주에 의하여 창조된 모든 생명체로서의 피조물들은 창조주만이 그 창조력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피조물이 파괴되거나 변질되었을 때에 회복시킬 수 있는 힘(능력)도 역시 창조력인 것이다. 따라서 창조력은 인간을 회복시키는 힘이기 때문에 인간의 변질을 치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자연치유력은 곧 창조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진정한 치유를 통하여 창조력을 체험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궁극적으로는 창조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재창조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뉴스타트는 바로 이 창조력으로 치유를 받음으로 창조(재창조)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본주의적 치유관

만약 인간이 창조와 창조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결국 인간은 창조주가 아닌 인간 스스로 인간을 "치유"해야 하며 또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그 창조주만이 인간을  치유하실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대 다수의 사람들이 창조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의 질병을 인간이 치유해야 하며 또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적인 치유관이다.

뉴스타트는 인간은 치유는 할 수없고 증세의 치료밖에는 할 수가 없음을 시인하고 모든 질병의 치유를 창조주께 돌려드리는 신본주의적 치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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